최근 참가한 국제학술회의에서 ‘돌봄 일’(care work)이 사회적 재생산(social reproduction)의 핵심 영역 가운데 하나라는 주장을 접했다. 한 사회가 제대로 굴러가고 대를 이어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경제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돌봄 일’은 노동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돌봄 일의 영역은 폭넓다. 보건의료의 영역에서 청소와 가사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사회 구조와 기술 변화에 맞물려 그 범위가 점차 확장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래 노동시장의 대세가 되고 있는 돌봄 종사자를 최저임금 이하로 부려 먹고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과 사회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논의가 한국 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보건의료의 중심축으로 등장하고 있는 요양사의 임금과 처우를 개선해 돌봄을 ‘좋은 일자리’(decent jobs)로 전환시켜 여기에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려는 논의는 사실상 전무하다. 대신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들의 노동자를 최저임금 이하의 저임금으로 데려오려는 것을 정책이라고 사회 일각에서 떠들어 대고 있다.

이에 더해 육아와 가사를 병행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업무·근무시간을 줄이고 소득을 보장해 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촉진할 여건을 마련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도시국가에 불과한 홍콩과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어 동남아 여성노동자를 월 300달러면 가정부로 수입할 수 있다는 천박한 목소리가 정부여당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재벌과 부자들의 주머니에 돈이 남아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육아와 가사 부담을 덜어 줄 사회적 제도를 마련하고 거기에 필요한 사회적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정치적 논의는 없다. 반대로 “개별 가구가 월 300달러만 부담하면 한국에 와서 돈 벌고 싶어 하는 동남아 여자를 수입하여 가정부로 부려 먹을 수 있다”는 조선시대 노비사회의 양반귀족이 하는 소리 같은 주장이 커지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이주노동(migration of labour)은 수백 년 전 자본주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던 ‘대서양 노예무역’(Atlantic slave trade)의 연장선이라는 주장이 있다. 노예무역과 노예제도가 실제로는 폐지되지 않고 이주노동이라는 모습으로 그 껍데기를 바꾼 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좋아 ‘노동력 수입’이지, 이게 제도의 목적이나 작동 원리에서 본질적으로는 대서양 노예무역과 별 차이 없다는 이야기다.

‘동남아 가정부’를 수입할 경우, 채용한 가구가 먹여 주고 재워 주면서 기본 생계를 책임지니 월 300달러도 작은 돈이 아니라는 주장에서, 마당쇠와 곱단이를 먹여 주고 재워 주며 몇 푼 품삯까지 주는데 종으로 부리는 게 뭐가 문제냐고 떠벌이는 조선시대 양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가사노동자’(domestic workers)를 “민간 가구에서 혹은 민간 가구를 위해 일을 하는 노동자”라고 규정한다. 가사노동자는 “직접으로 혹은 간접으로 돌봄서비스(care services)를 제공하는데, 이들은 돌봄경제(care economy)의 핵심 구성원”이라는 게 ILO의 입장이다.

집 청소, 요리, 세탁, 다리미질, 육아, 노인이나 환자 돌봄, 정원 관리, 집 경비, 가족을 위한 운전, 애완동물 돌봄 등의 일을 하는 가사노동자는 전일제(full-time)나 단시간제(part-time)로 일한다. 이들은 민간의 개별 가구에 채용되거나 아니면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고용된다. 사용자의 가구에 거주하기도 하고(live-in worker), 따로 거처를 구해 출퇴근하기도 한다(live-out).

전 세계적으로 7천560만명의 가사노동자가 일하는 것으로 ILO는 파악하고 있다. 가사노동자의 76.2%가 여성이다. 가사노동자가 ‘필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도 권리와 보호에서 소외되고 있다. 가사노동자의 81%가 비공식경제에 속해 있다. 가사노동자 대부분이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 그리고 사회보호 관련 법·제도를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고, 성폭력을 비롯한 각종 폭력과 괴롭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임금은 노동자 평균의 56% 수준이고, 근무시간은 대단히 길다.

‘가사노동자를 위한 좋은 일자리’ 협약 189호 채택 십 주년을 맞아 2021년 ILO가 발행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7천560만명의 가사노동자 가운데 1천420만명만 관련 법·제도를 효과적으로 적용받고 있다(18.8%). 2천70만명은 법·제도의 영역에 들어와 있으나 제대로 된 보호가 미비하고(27.4%), 절반이 넘는 4천70만명은 법제도 적용 범위 밖에 내동댕이쳐져 있다(53.8%).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ILO는 회원국 정부가 협약 189호를 비준함으로써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법을 적용하고, 모성보호와 현금지원을 포함한 사회보장 혜택을 차별 없이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폭력과 괴롬힘을 예방하고 발생시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가사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자기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요구한다. 특히 가사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근로감독관을 집중 배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 노동시장은 아수라장이다. 특히 하층 노동시장은 더욱 그렇다. 이런 상태를 정비하지 않고 노동시장 하층에 돌봄을 명목으로 동남아 여성을 싼값에 수입하려는 정책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착취체제로 전락한 한국의 노동시장 질서를 크게 어지럽힐 것이다. 이주노동을 더 많이 받아들이려면 제도 정비가 시급한데, 그 가운데 하나가 협약 189호 비준이다. 협약 189호는 2011년 6월 열린 100차 국제노동대회에서 채택된 이래 지금까지 ILO 187개 회원국 중 36개국이 비준했다.

윤효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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