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진미 영화평론가

* 이 글은 <드림팰리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드림팰리스>는 산재보상 투쟁과 아파트 할인분양이라는 두 개의 싸움을 겹쳐 놓은 리얼리즘 극영화다. 왜 저 둘을 겹쳐 놓은 걸까. 공통점이 있다. 큰 기업을 상대로 피해자들이 싸움을 이어가지만, 기업은 보이지 않고 개인들 사이에 심각한 균열과 오해가 남는다. 신인 감독 가성문은 두 싸움을 정교한 솜씨와 예리한 문제의식으로 엮어 낸다. 특히 서사와 감정의 흐름을 쥐고 흔드는 힘이 탁월하다. 이는 투쟁의 과정에서 인물들 사이에 스미는 균열과 오해를 속 깊이 파고든 덕분이리라. <드림팰리스>는 2019년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 대상 수상작으로, 올해 5월31일에 개봉했다. 제20회 로마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김선영의 다층적인 연기가 극을 이끄는 가운데,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윤지의 버석한 얼굴을 볼 수 있다.

1. 피해자이자 공모자이자 배신자이자 가해자

영화가 시작되면 혜정(김선영)이 차에 붙은 ‘단결 투쟁’ 글자를 떼어 내고 “경로를 이탈하여 재검색합니다”라는 내비게이션 목소리를 따라 어디론가 간다. 도착해 올려다보는 곳은 신축아파트 ‘드림팰리스’다. 내 집을 마련했으니 벽에 못도 박고, 가족사진을 건다. 그런데 이런! 녹물이 나온다. 혜정은 분양사무소에 가서 따진다. 미분양이라서 하자보수를 할 수가 없단다. 입주민 회의에 가서 떡을 돌리며 하자를 말했더니, 이 사람들은 ‘하자보수’보다 ‘집값 방어’에 진심이다. “우리가 2년간 싸워 온 덕에, 새 입주민에게 떡을 얻어먹는다”는 대표의 말이 기묘하다. 이쯤 되니 처음엔 “사기당한 것 같다”고 따지던 혜정도 모드를 달리한다. 전단지를 돌려 새 입주민을 모아야겠다는 것. 물론 인센티브라는 꾀임이 있었지만, 혜정은 미분양을 빨리 해소해야 하자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섰을 터다. 그 결과 혜정은 피해자이자 한편으론 건설사의 공모자가 된다.

혜정이 ‘드림팰리스’로 오게 된 건 남편의 산재보상금 덕분이다. 혜정은 유가족들과 함께 2년간 회사 앞 천막 농성장에서 싸웠지만, 얼마 전 사측과 합의했다. 혜정은 더는 ‘천막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괴롭다. 피해자지만 먼저 합의한 배신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도 피해자들 사이에 균열이 있었다. 혜정의 남편과 수인(이윤지)의 남편만 원청업체 직원이었고 중년의 가장이었다. 나머지 희생자들은 하청업체 청년들이었다. 이런 유가족들 사이의 이질성을 사측이 놓칠 리 없다. 사측은 유가족들에게 혜정의 남편과 수인의 남편에게 사고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몰아갔다. 혜정은 남편의 책임을 인정하는 듯한 유가족들의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사측과 합의해 버렸다. 사측의 이간질이 승리한 것이다. 그리고 혜정은, 사측의 집요한 회유에 흔들리는 수인을 결국 합의로 이끄는 유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니 수인을 붙잡아 달라 부탁하러 혜정을 찾은 유가족 대표는 얼마나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인지. 혜정은 2년간 담아 뒀던 모진 말을 유가족 대표에게 쏟아낸다. 얼마 후 유가족 대표의 자살은 혜정을 미필적 가해자로 만든다. 한편 혜정은 어느새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서 건설사의 할인분양으로 엄청난 뒷돈을 챙기는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2. 싸움을 피해 간 곳에서 진짜 싸움을 만나다

<드림팰리스>
<드림팰리스>

<드림팰리스>의 역설은 산재보상이라는 가장 치열할 것 같은 노동자 싸움을 피해서, 가장 안락할 것 같은 중산층 삶의 터전을 찾아온 혜정이 더 격렬한 싸움에 휘말린다는 점이다. 영화는 실제 사건에서 모티브를 따 왔다. 2014년 인천에서 2년간 미분양이었던 4억원짜리 아파트를 건설사가 3억원에 할인분양에 나서자, 입주민들이 새 이웃의 이사를 격렬하게 막아서다가 분신으로 이어진 사건이 있었다. 영화는 산재유족들의 천막농성을 차분하게 그리는 반면, 아파트 바리케이트 싸움을 극렬하게 그린다. 하기야 임금을 둘러싼 노동쟁의는 생존을 건 투쟁이고, 자산을 둘러싼 부동산 분쟁은 탐욕에 의한 싸움이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아파트 가격 30% 할인으로, 앉아서 자산가치를 강탈당하거나 부채를 떠안는다면, 그 역시 당사자들에겐 생존이 걸린 싸움일 수 있다.

영화에서 가장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은, 사고를 낸 이삿짐차를 입주민들이 에워싸고 차를 두들기며 승객을 끌어내리려는 장면일 것이다. 거기서 마주치는 혜정과 수인. 그리고 “내 아들이에요!”라는 울부짖음. 혹자는 이런 마주침이 작위적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들의 감정의 궤적을 따라가 보면 전혀 무리가 아니다. 혜정은 왜 강경 입주민으로 돌아서게 됐을까. 그것은 오해받고 오해하는 상황에 진저리가 났기 때문이다.

3. 균열과 오해

혜정이 수인에게 한 행위는 선의에 의한 것이다. 수인의 아이들을 돌본 건 돕고 싶고, 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서였다. ‘드림팰리스’로 이끈 것도 그깟 인센티브 때문이 아니었다. 보탬을 주고 싶고, 이웃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참혹한 오해가 가로놓인다. 입주민 반대 집회는 혜정 탓이 아니고,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작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혜정이 받은 인센티브는 소액이고, 수인이 받은 할인은 거액이지만, 수인은 그런 계산이 불가능하다. 수인은 순교자적이고 결벽적인 사람이라서, 조금의 불순함도 용납이 안 된다. 자신에 대해서든 남에 대해서든. 그는 자신과 혜정이 유가족 대표를 자살로 내몰았다고 자책하면서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는다.

혜정은 그런 오해를 돌릴 수 없음에 절망한 상태다. 그런데 주차장에서 테러를 당하고, 테러 가해자로 입주민 대표를 지목했다가 아님이 밝혀지자, 자신이 입주민 대표를 오해했다고 깨닫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입주민 대표의 편에 서고자 한 것으로 읽힌다. 더는 건설사의 끄나풀이라는 오해를 받는 것도 질렸기 때문에, 차라리 강경 입주민이 되고자 한 것이리라. 수인의 집에 찾아가 “내가 잘할게”라 간청하던 장면에서 보듯이, 혜정 역시 좋은 인간관계를 갈구하였다. 아들과 수인에게 배척당하고 모두에게 오해받는 혜정으로서는 강경 입주민으로 활동하는 것이 이웃을 얻고 친교를 맺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수인과 아들을 가장 끔찍한 상황에서 대면하는 막다른 길이 될 줄이야!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은 절망 속에서도 거미줄 같은 희망이 이어지는 여운을 남긴다. 산재 유가족들의 농성은 그나마 좋게 마무리되고, 혜정도 남편의 죽음에 대한 응어리를 가장 껄끄러운 상대와 풀게 된다. 유가족 대표의 아들이 주차장 테러의 장본인임을 암시하면서도, 수많은 균열과 오해를 거쳐 ‘화해 아닌 화해’에 이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가치 있다. 수인과는 끝끝내 대면할 수 없지만, 이사 온 이웃이 떡을 돌리는 장면은 혜정을 향한 위로처럼 보인다. 혼자 남았지만 세 가족이 산다고 말하는 혜정의 얼굴 위로 “그렇게 싸우며 살아 냈기에 이 떡을 얻어먹는 것 아니겠냐”던 입주민 대표의 너스레와, “그래도 다 살아져~”라던 혜정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하울링처럼 겹친다.

영화평론가 (chingm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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