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지난 19일 뉴욕타임즈는 2000년 초 미국에서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의 임금격차는 1950년만큼 컸지만, 지난 5년 동안 임금을 둘러싼 인종 불평등이 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전히 흑백 임금격차는 엄청나지만 최근 들어 그 간격이 다소 줄었기 때문이다. 100명을 세웠을 때 50명째 임금을 뜻하는 중간임금에서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의 격차는 21%에 불과했다. 물론 흑인 노동자가 그만큼 적게 받고 있다.

“인종 임금격차는 감소 중(The Racial Wage Gap is Shrinking)”는 제목의 기사를 쓴 데이비드 레온하트는 그 이유를 세 가지로 들었다. 첫째, 노동시장에서 실업률이 대단히 낮다. 지난 10년 동안 실업률은 계속 떨어졌고, 최근 들어 196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잉여인력이 사라지면서 싼값에 쓸 수 있는 노동력이 부족해진 것이다. 그래서 노동력의 가격이 올라갔고, 기업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값싼 노동자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사용자의 선택권이 그만큼 좁아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역사적으로 취약계층에 속했던 노동자, 특히 흑인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 결과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 사이의 임금격차가 줄어들었다.

미국의 지배 엘리트는 실업률을 높여서 잉여 노동력을 늘리는 전술을 취해왔다. 연방준비은행의 이자율 인상이 그것이다. 이자율 인상은 노동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특히 흑인 노동자 같은 취약 노동자층에 더 위협적이다. 이자율 인상으로 기업의 금융 비용이 증대하면서 인건비를 삭감하고 고용을 줄이려는 경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또한 대출이자를 비롯한 생계비용이 증가함으로써 노동자를 생존 투쟁으로 내몬다. 하지만 지금은 기록적으로 낮은 실업률이 노동시장에서 인상된 이자율의 부정적 효과를 억누르고 있다.

둘째, 최저임금 인상 투쟁이 흑백 노동자의 임금격차를 줄였다. 10년 전 뉴욕에서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시작했다. 진보적 정치인과 대형 노조가 이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 운동은 ‘15달러 투쟁’(the Fight for $15)으로 불리게 된다.

이 투쟁에도 불구하고 연방 의회는 최저임금을 올리지 않았다. 여전히 연방 최저임금은 2009년과 같은 7달러25센트에 불과하다. 10년 동안 올라간 물가를 고려할 때 최저임금의 가치는 엄청나게 떨어졌다. 하지만, 15달러 투쟁은 상대적으로 친노동 정당이 권력을 장악한 주와 시의 정책을 변화시켰다.

미국 전역에서 최저임금이 7달러25센트를 넘어야 한다는 캠페인이 전개되었고, 상대적으로 반노동 성향인 공화당 지지자들도 힘을 보탰다. 지난 20년 동안 애리조나, 콜로라도, 플로리다, 미주리 등 보수적인 지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여러 주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졌고, 그 수준은 물가인상율을 감안했을 때 그리 나쁘지 않다.

미국 노동시장 최하층의 노동자가 최저임금 인상의 주요 수혜자가 되었고, 저임 노동자층에 밀집해 있는 흑인 노동자의 실질 임금이 올라갔다. 그 결과 최근 5년 동안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의 임금격차가 줄어들게 되었다.

셋째, 2020년 5월25일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경찰의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의 결과로 발생한 ‘흑인의 목숨이 문제다’(Black Lives Matter) 사태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한다. 사건 이후 많은 기업들이 직원의 인종을 다양화하기 위한 조치했다. 이사회에서도 흑인 수를 늘려 왔다. 2020년 기업 이사회 성원의 9%만 흑인이었는데, 2022년에는 12%로 늘었다. 미국 전체 인구에서 흑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4%다.

미국의 친노동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지난 5월에도 미국의 일자리는 33만9천개가 늘었다. 이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주더라도 노동력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뜻한다. 따라서 당분간 노동자들의 임금, 특히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면서 흑백 노동자의 임금격차 완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1980년대 이래 지난 40년 동안 흑백 인종 간의 임금격차가 줄곧 커져 왔음을 감안한다면, 지난 5년 동안의 임금격차 완화는 인종적 불평등 개선에 작지만 의미 있는 청신호를 보내고 있다.

미국에서 노동자 내부의 임금격차가 최근 들어 줄어든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인종적 불평등의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을까. 인종적 임금격차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인종적 자산 격차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그 격차는 사상 최대 규모로 악화된 상태다. 인종적 불평등의 기저에는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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