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공공운수노조

국제노동기구(ILO)가 우리나라 정부에 공공기관 운영과 관련한 각종 지침을 만들 때 노조의 참여를 보장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지난 2021년 우리나라가 비준한 ILO 기본협약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장)·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 비준 뒤 처음 내려지는 관련 권고다. ILO가 노동자 손을 들어주면서 정부가 지침으로 공공기관에 직무급제 임금피크제를 밀어붙이는 관행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ILO “정부 지침, 단체교섭에 개입하지 말라”

19일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348차 ILO 이사회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난 17일 저녁(한국시각)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ILO 결사의 자유위원회 보고서를 채택했다. 보고서에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우리나라 정부에 98호 협약과 관련해 권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결사의 자유위원회는 “한국 정부는 공공기관의 단체교섭 지침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 노조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며 “한국 정부는 관련 조치를 하고 ILO에 계속 알려줄 것을 요구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권고는 지난해 6월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 국제공공노련(PSI)이 우리나라 정부가 98호 협약을 위반했다며 제소한 데 따른 것이다. 민주노총 등은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운용지침’이나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에 관한 지침’이 공공기관 노사 단체교섭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며 우리나라 정부를 ILO에 제소했다. 98호 협약은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는 조항으로 노조 활동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자율적인 단체교섭을 장려하는 동시에 노조에 대한 간섭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기재부의 지침으로 단체교섭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공공기관 노동계는 주장한다.

가령 코레일네트웍스는 모회사인 한국철도공사와 맺은 업무 위탁계약에서 시중노임단가를 100% 반영한 인건비 인상에 대해 합의했다. 하지만 공공기관 예산 편성지침 때문에 인건비 인상에 제약을 받아 계약내용을 이행하지 못했다. 결국 임금인상은 기재부가 내린 지침의 범위 안에서 이뤄졌다. 민주노총 등은 직무급제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기관이 불이익을 받는 점도 문제삼았다.

ILO는 노동자 참여 없이 공공기관의 고용조건을 평가하는 경영평가 지표를 지침이나 권고로 만드는 것을 자제할 것을 권고하며 “중앙정부 차원의 지침이 단체교섭에 실질적으로 개입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지침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공공기관 노조가 실효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협의 체계를 갖추고 한국 정부가 이를 알려줄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기본협약 비준 뒤 첫 권고, 무게감 커

ILO가 공공기관 노사관계나 정부의 지침·가이드라인에 대해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2016년에 이어 벌써 세 번째 권고다. 하지만 이번 권고는 ILO 기본협약 비준으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 상황에서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해당 협약의 이행 여부에 대한 ILO와 국내외 노동계 감시나 보고가 더욱 치밀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올해 9월 말까지 국내법과 관행이 비준한 협약에 어떻게 부합하는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노사단체는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나 협약 이행상황에 대해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권고를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국내는 물론 국제 노동계에서 적지 않은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2년에도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 예산편성지침이나 공공기관 경영평가 편람이 노조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내려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한국 정부를 ILO에 제소했다. 2016년에는 양대 노총이 박근혜 정부가 확대하려 했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와 일반해고·취업규칙 관련 양대 지침 발표에 맞서 ILO에 한국 정부를 제소한 바 있다. 이들 사례에서도 ILO는 노사 간 자율적 합의, 단체교섭에 따라 노동조건이 결정돼야 한다는 취지의 권고를 내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