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노동자들의 축제인 5월1일이 안타까움과 분노의 날로 변했다.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가 경찰의 탄압과 단속에 항거하며 분신했고 끝내 우리 곁을 떠났다. 노동자가 생명을 내걸 정도로 윤석열 정부의 노조탄압은 도를 넘었고 노조 불법화는 노골적이다. 경찰을 앞세운 정부는 지난 1월부터 지금까지 건설노조만 19차례 압수수색했다. 천명이 넘는 조합원을 소환조사했으며 19명(석방자 3명 제외)을 구속시켰다. 그럼에도 건설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은 진행형이다. 경찰의 단속이 끝나면 고용노동부나 국토교통부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정부의 이어달리기 단속,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 단속이 그칠 줄 모르고 있다.

이런 가운데 5월 말에 기어코 또 다른 사달이 났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경찰의 무자비한 인권유린 탄압이 발생한 것이다. 당시 상황은 이렇다.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은 1년 넘게 파업하고 있는 금속노련 산하 포스코 하청 노조 집회에 참석했다. 경찰이 집회를 강제로 해산시키려고 하자 김 위원장은 항의 표시로 마시던 생수병의 물을 경찰에 뿌렸다. 그러자 곧바로 여러 명의 경찰이 김 위원장을 둘러싸 아스팔트에 쓰러뜨렸고, 김 위원장의 목을 무릎으로 강하게 누르며 아스팔트에 짓이겼다. 경찰의 강제진압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경찰은 쓰러져 대항하지 못하는 김 위원장을 마치 강력범이나 흉악범 대하듯 강제로 뒷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그리고 형법상 공무집행방해·일반교통방해 혐의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생수병의 물을 경찰에 뿌린 행위가 공무집행방해로 둔갑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법원은 김 위원장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김 위원장을 흉악범 취급한 경찰의 명백한 잘못이며 과잉진압이다.

경찰의 강제진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게도 일어났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 곤봉을 앞세워 폭력적이고 불법적으로 김 처장을 제압했다. 당시 김 처장은 400일 넘게 노조의 교섭 요구를 무시한 사측에 항의하며 7미터 높이의 망루에서 고공농성을 펼쳤다. 경찰은 김 처장을 진압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진압 전에 전남경찰청의 공안부장이 네 차례 회의를 했고 미온적으로 대처하던 광양경찰서장을 꾸짖었다고 한다. 언론의 주목을 받자 사측은 노조와 교섭하기로 했다. 평화롭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5월31일 모두의 예상을 깨고 새벽 5시께 경찰은 스카이차 2대에 여러 명의 진압경찰을 태워 망루 근처로 접근시켰다. 김 처장이 저항하자 경찰들은 곤봉으로 김 처장의 머리와 몸을 직접 가격했다. 곤봉에 맞은 김 처장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고 금세 머리에서 피가 났다. 얼굴이 피로 뒤범벅됐다. 경찰에 제압당해 망루에서 내려온 김 처장은 곧바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돼 머리를 꿰맸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온전치 않은 김 처장을 상대로 경찰은 무리하게 조사를 강행했고, 바로 특수공무집행방해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 처장의 구속은 5G급으로 빠르게 이뤄졌다. 오전에 구속영장이 청구되고 오후에 구속이 결정됐다. 법원은 도주 우려가 있어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결정했다. 당시 김 처장은 머리가 찢어져 꿰맸고, 다리를 다쳐 거동이 어려워 계속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진행 중인 최저임금위원회의 노동자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도주 우려도, 증거 인멸 가능성도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법원의 판결이 납득되지 않는다. 현재 김 처장은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포스코 하청 노조의 교섭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미안함과 경찰의 강경진압에 대한 항의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경찰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집회나 시위에 대해 인권을 유린하면서 강제진압하는 이유는 특진 때문이다. 이미 윤희근 경찰청장은 노조 집회에 성과를 낸 경찰관에게 일계급 특진을 약속했다. 올해 전체 특진 대상자 510명 중 10%에 해당하는 50명을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잡는 경찰관으로 배정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5월 말 민주노총이 서울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자 집회 관리에 공적을 세운 경찰관 13명의 특진을 내걸었다. 특진 대상과 인원도 경감 3명, 경위 5명, 경사 3명, 경장 2명 등으로 분명히 밝혔다. 노조에 강경대응한 경찰의 특진사례는 이미 있다. 지난해 12월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집단 운송거부 당시 집회 관리와 운송방해 행위 적발에 공을 세운 부산지역 경찰관 3명이 특진했다. 운송을 방해한 화물연대 조합원을 검거한 것이 특진 이유이다. 보통 지역특진의 경우 해당 지역 경찰청장이 격려하는데 이번에는 윤 청장이 직접 부산까지 방문하여 특진자를 격려했다. 경찰청의 최고 수장이 일선 경찰관들에게 노조를 잡아 특진하라고 동기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런 상황에서 광양의 집회·농성진압은 특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것이다. 거기에 경찰 수뇌부가 주목하고 있어 특진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1년 넘게 같은 장소에서 파업했는데 그동안 무관심하고 아무 대처하지 않던 경찰이 하루아침에 돌변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런 특진이 없었다면 생수병의 물을 뿌렸다고 흉악범처럼 진압하고, 안전가드가 없어 떨어질 위험이 있는 7미터 높이 망루에서 노동자를 곤봉으로 제압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5년 백남기 농민은 경찰이 쏜 물대포에 쓰러져 사망했다. 이후 경찰은 통렬한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했다. 그 일환으로 인권영향평가도 시행했다. 그랬던 경찰이 윤석열 정권 1년 만에 1970~80년대 공안경찰로 변했다. 인권유린, 강제진압과 해산, 곤봉으로 때리기, 무차별적인 구속영장 청구는 현재 경찰의 민낯을 보여준다. 국민의 생명·인권·자유·안전을 지키겠다는 경찰의 약속은 특진 앞에 휴지조각이 됐다. 어쩌면 일선 경찰관처럼 경찰 수뇌부도 더 높은 곳에서 주는 특진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하루빨리 인권경찰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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