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욱 철도노조 정책팀장

부채비율 2천프로가 넘는 공공기관이 등장한다. 국토교통부가 경쟁체제를 위해 2013년 출범시킨 ㈜SR이 주인공이다. ㈜SR은 철도 노선 중 가장 알짜노선인 수서역에서 경부고속선과 호남고속선만을 운행하는 공공기관이다.

㈜SR 지분의 41%는 코레일이, 나머지 59%는 사학연금·기업은행·산업은행이 각각 보유하고 있다. ㈜SR 설립 당시 코레일을 제외한 나머지 투자자들을 유치하기 위해 연 복리 5.6%의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고, 풋옵션 만기가 도래하는 6월 이들 투자자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당시 계약대로 59%의 지분은 코레일이 인수하게 되는데, 이 주식이 우선상환주로 전환돼 국제회계기준에 따라 회계상 ㈜SR의 부채로 처리된다. 이럴 경우 ㈜SR의 부채비율은 2천%를 넘게 된다.

㈜SR은 부채비율 150%를 초과하면 철도사업면허조건을 유지할 수 없다. 국토부는 ㈜SR의 부채비율을 150% 미만으로 낮추기 위해 국토부가 보유한 공공기관의 주식 수천억원 규모를 ㈜SR에 현물출자해 자본을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출자를 위한 근거 법률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5월9일 기재부는 부랴부랴 국유재산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5월30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SR의 부채비율은 2019년 이후 줄곧 200%를 상회했다. 당시 국토부는 ㈜SR이 철도사업면허조건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SR이 철도공사로부터 임대한 22편성의 고속철도 차량의 리스부채를 부채비율 산정에서 제외시켜 줬다. 국제회계기준을 위반했다는 비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공공기관 구조조정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해 6월 기재부는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면서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재무상황을 평가하고 코레일을 비롯한 한국전력·발전자회사 등 14곳을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했다. 올해 1분기에만 1조4천억원에 이르는 공공기관 자산을 매각했고, 공공기관 정원은 1만명 이상 감축했다. 정부는 ㈜SR에 대해서 만큼은 왜 같은 기조를 적용하지 않고 ‘리스부채 제외’ ‘출자’ 등의 특혜를 제공하는 것일까?

㈜SR은 2013년 철도 민영화 논란 속에서 출범했다. 당시 국토부는 고속철도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철도산업의 부채를 낮추고, 시장논리를 통해 서비스 향상은 물론 열차운임 인하도 가능하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호언장담한 얘기 중 그 무엇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SRT가 KTX보다 운임이 10% 낮은 이유는 경쟁의 효과가 아니라 SRT 운행 이전 이미 정부가 철도산업위원회를 통해 정책적으로 결정한 결과일 뿐이다. 지난해 말 국토부가 발표한 것처럼 오히려 고속철도가 분리됨에 따라 매년 400억원 이상의 중복비용이 발생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 ㈜SR에 대한 정부 출자는 고속철도의 ‘경쟁체제 도입이 효율적’이라는 그릇된 신념 속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이자 정책 실패의 방증이다. 그런데도 지속적인 특혜를 부여하면서까지 ㈜SR을 유지시키는, 고속철도 분리 정책을 고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어이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국토부 관료의 고집 때문은 아닐까? 고속철도 경쟁체제라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순간 경쟁체제 도입을 기획한 전·현직 국토부 관료, 경쟁체제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근거를 마련한 한국교통연구원까지 이어지는 끈끈한 카르텔이 붕괴되기 때문이 아닐까? 반대로 얘기하면 저들만의 카르텔 유지를 위해 철도의 공공성과 효율성 포기는 물론 중복비용으로 인한 혈세낭비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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