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과 명예교수

복지정책은 시장 작용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면 복지 수요가 줄기 때문이다. 저소득 노동자를 위한 주거정책도 마찬가지다. 우선 주택시장을 정상화해 주택복지 수요를 줄이고 그래도 시장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정책으로 지원하면 된다.

주택시장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가수요다. 주택 소유에서 불로소득이 발생하는 주택시장은 언제라도 투기판이 될 수 있다. 일단 시장이 투기 국면에 접어들면, 당장 주택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내 집 마련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무리하게 집을 구매하려고 든다. 신조어 ‘영끌’이 이를 대변한다. 투기 수요와 영끌 수요로 이뤄지는 가수요는 집값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면서 추가 가수요를 유발한다. 우리가 최근 몇 년간 봐 온 바로 그 현상이다.

우리나라 주택가격은 소득에 비해 너무 높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직장인이 연평균 수입으로 집을 사려면 30년이 걸린다. 반면 베를린의 경우 13년, 런던 15년, 파리 19년으로 서울의 절반 수준이다.

불로소득 불가능한 주택시장 만들어야

우리나라 부동산 제도는 불로소득을 허용한다. 하지만 교과서적인 완전경쟁시장에서는 불로소득 자체가 있을 수 없다. 교과서 시장에서는 정보가 완전하기 때문에 미래의 모든 손익이 현재의 매매가격에 반영되고, 이런 가격을 지불하고 취득한 상품에서는 당연히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는다.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사회라면 교과서처럼 불로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주택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부동산은 토지와 건물로 이뤄지는데, 건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불로소득은 토지에서 생긴다. 그러므로 토지에서 불로소득이 생기지 않도록 하면 현실의 시장도 완전경쟁시장처럼 작동한다. 가수요가 사라지고 따라서 투기도 없고, 주택가격은 적정선에서 유지된다. 토지를 공공재로 보면 가능하다.

‘지대-이자 차액세’ 걷으면 투기 사라지고 주택시장 안정

토지를 비롯한 부동산이 사유재산으로 정착된 현실에서 ‘사유재산 침해’라는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이런 논란을 잠재우는 최선의 수단으로, 생소한 용어이지만 ‘지대-이자 차액세’가 있다. 매년 토지의 임대가치, 즉 지대를 징수하되 매입지가에 대한 이자를 공제한 나머지만 징수하는 토지보유세 개념이다. 이 세금을 징수하면 토지의 매매가격이 매입지가 수준에서 유지되므로 재산권 침해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 아무도 손해 보지 않는 가운데 부동산 투기가 즉시 사라진다.

이런 주택시장에서는 주택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므로 저소득 노동자가 집을 마련하기 쉬워진다. 주택을 사든 임차하든 경제적으로 차이가 없어 주택이 지금처럼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으로 정상화된다. 그래도 시장을 통해서는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계층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들을 위해서는 공공부문에서 질 좋은 영구임대주택 또는 환매조건부 분양주택을 많이 지어 시세보다 싸게 공급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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