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남짓한 시간이 남은 현 정부가 2002년에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남북관계, 교육, 경제활성화 등 어느 것 하나 생략할 수 없는 과제가 산적해 있으나, 이제는 정부가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과의 대치관계를 정상화하고, 나아가 노사정이 사회적 협의를 통하여 한국의 사회적 통합과 발전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라고 여겨진다. 특히, 이 문제는 그간남북관계나 경제활성화 등에 비해서 정책 우선 순위에서 뒤쳐져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와중에 탄생하여 위기를 수습하고 이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임기를 마치게 되는데, 위기극복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와 고용조건의 악화는 노동자·서민·중산층의 사회적 불만을 야기하였고 이는 정부의 자체 지지기반의 협소화로 이어졌다. 반면에 전향적 대북 정책과 사회복지 정책의 확대는 정치적 보수계층 및 전문직업집단을 포함한 중·상류층의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거리를 더욱 확대시켰다.

현 정부가 평화, 인권, 민주주의의 신장이라는 면에서 국제사회에서 누리는 높은 평가와 경제회생이라는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인기 없는 정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이상과 같은 구조에서 야기된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시대에 시장주의적 경제논리가 여타 관점을 압도해왔지만 이제 아이엠에프 관리체제를 벗어나 한국사회가 다시 정상화의 궤도로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균형을 되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한 경제·사회정책의 수립과 집행 과정에서 그 동안 소외되었던 노동계의 적극적 참여와 협의를 끌어낼 수 있다면 이는 균형된 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진전이다.

현재 민주노총은 노사정 협의기구인 노사정위원회를 거부하고 있으며 정부의 여타 대노동 창구 역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민주노총의 지도부인 단병호 위원장, 문성현 금속연맹 위원장 등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는 노동계와의 대화를 어렵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며 이는 세계적 인권과 민주주의 지도자로서 김대통령의 위상에도 적지 않은 흠집을 내고 있다.

노동문제는 시장논리나 치안논리로만 접근해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선의의정치적 해결이 필요하다. 물론 이는 정부의 일방적 책임이나 조처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노동계 역시 변화된 기업환경, 정치환경을 인정하고 과거권위주의 시대의 전투적, 저항적 노조운동이 이제도 가능한가를 반성하여야 한다. 노조는 더 이상 억압받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노조는 이제주요 사회세력으로서 사회적 책임과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자신을 격상시켜야 한다. 정부와 노동계, 그리고 재계는 하루 빨리 노사정의 사회적협의기구를 재가동하여 물가·실업·임금·복지 등의 거시적 과제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여야 한다. 물론 이 대화 자체가 쉽지 않을 것이며 여기에서 생산적 결론을 도출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이제 경제·기술 영역뿐 아니라 정치·교육·사회적 선진국으로 국가목표를 확대하여야 하는데 이는 현재와 같이 주요 사회세력으로서의 노동이 소외된 상태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노사정 중 가장 많은 자원과 수단을 보유하고있는 정부가 주도성을 발휘하여 노동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적극적으로 풀어야 할 것이며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은 정부의 이런 노력을 평가하는 데 인색하여서는 안될 것이다.

비단 노사정뿐 아니라 정치·언론·시민사회·지식인 등 한국사회 모두는 이제노동문제를 재발견하여 이를 사회발전의 핵심의제로 삼아야 하며 이를 통하여 한국사회의 고질적 문제, 곧 지역주의적 정치문화, 학벌사회, 지방의 발전 격차 등의 해소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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