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사노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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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 최장 69시간 노동이 가능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하다 여론의 비판에 한 걸음 물러선 가운데,   노동시간 유연화의 원칙은 ‘일과 삶의 균형’이라고 국제 노사정기구 고위 관계자가 강조했다. 서유럽은 주 40시만 미만 노동이 대세이고, 주 4일제 도입을 위해 하루 10시간 이상의 몰아쓰기 노동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국 정부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개정해 노조를 처벌하려는 상황에서 노조에 부당노동행위를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해외 노동전문가의 의견도 나왔다.

한국은 하루 11시간 이상 노동 추진하는데
국제노사정기구연합 사무부총장 “10시간 일하기 어려워”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사회적대화 기구 출범 25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서울 중구 앰배서더 서울 풀만 호텔에서 ‘더 나은 노동시장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주제로 2023 국제콘퍼런스를 열었다. 행사에 참석한 노동전문가들은 저출산, 고령화, 기후위기,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비정형 노동 증가 등의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대화 기구나 각 나라 인식과 대응을 소개했다.

다니엘 베커 국제노사정기구연합 사무부총장(유럽대륙)은 “프랑스·독일·벨기에·네덜란드 등 서구 유럽의 노동시장을 전반적으로 보면 약간의 노동시장 유연성이 있지만 (근로시간) 유연성의 원칙은 일과 개인의 생활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베커 사무부총장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 주당 일하는 시간에 주목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주 35시간”이라며 “많은 노동자들은 더 적은 시간을 일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주 5일이 아닌 주 4일을 논의하고, 주 4일을 위해 하루 10시간을 일하는 (근로시간) 유연화가 벨기에 등 국가에서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벨기에는 지난해 2월 노동자의 하루 근무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주 5일 근무를 주 4일 근무로 변경하는 노동시장 개혁조치를 발표했다. 벨기에의 주 최대 노동시간은 38시간으로 기존 주 단위 근로시간을 유지하되 하루 근무시간을 늘리는 형태다.

다니엘 베커 사무부총장은 주 4일제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실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다”며 “주 4일 일한다고 해도 하루 10시간을 일하는 것은 쉽지 않아 한 두 달간 시작단계에서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베커 사무부총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서구 유럽의 주당 노동시간은 유연화해도 40시간 미만이다. 반면에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에 따르면 주 최대 69시간(주 6일 기준) 노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노동부는 노동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근로시간 제도 개편을 추진한다고 강조하지만, 서구 유럽의 노동시간 단축 흐름과 큰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추진하면 일주일 중 6일 연속 하루 11시간 이상의 노동을 할 수 있는데, “하루 10시간 근무는 쉽지 않다”는 베커 사무부총장의 설명과 대비된다.

“노조 부당노동행위 처벌,
소의 뿔 고치려다 소 죽이는 격”


정부가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조치와 노조법상 노조 처벌을 확대하는 정책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국 정부는 노조 회계 공시를 의무화하고 노조가 사용자나 다른 노조, 노동자를 상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규정해 위반할 경우 처벌하는 노조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오가타 케이코 난잔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용도를 한정해 노조에 금전적·물적 지원을 할 수 있다. 그런 경우 노조활동을 통해 국민생활의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게 목적”이라며 “이런 경우 경제지원 범위 내에서 노조에 (회계에 관한) 설명을 요구하고, 공표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국의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노동법률 상담·노동자복지관 운영 등 사업을 명목으로 지급하는 지원금의 경우 현재도 회계보고서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

오가타 케이코 교수는 “제대로 된 단체교섭을 하기 위한 노조활동이 과격해지고 있는데, 그런 행동을 처벌하는 새로운 제도(노조 부당노동행위 처벌)를 구축하려고 한다면 소의 뿔을 고치려다가 소를 죽이는 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케이코 교수는 “미국의 경우 노조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기는 하지만 노조의 과격한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제조업 파견 허용한 일본,
금융위기에 ‘파견노동자 자르기’로 변질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파견제도 현대화’에 대해 참고할만한 의견도 제시됐다. 파견 제도의 경우 논의가 아직 공론화하고 있지 않지만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의 일환으로 파견·도급 기준 법제화, 파견 대상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경사노위 소속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연구회의 근로기준 현대화 분과에서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다.

오가타 케이코 교수는 “근로자 파견 확대는 경영자에게는 매력적이지만 노동자 입장에서 고용불안정, 기능의 숙련 축적이 어렵다”며 “경기가 호황일 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경기가 불황인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1985년 노동자파견법을 제정한 뒤 파견 근로 업종을 확대해 왔고, 2003년 법 개정을 통해 제조업 파견을 허용했다. 2007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는 리먼쇼크를 겪으면서 파견노동자는 대거 실직하는 일이 발생했고, ‘파견노동자 자르기’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쉬운 해고’ 다시 꺼내든 기조발제
한국노총 “답정너 국제콘퍼런스”


이날 콘퍼런스에는 경사노위 참여 주체인 한국노총이 불참하면서 반쪽짜리 행사가 됐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의 불신 키우는 ‘답정너’ 국제콘퍼런스”라며 불참했다. 노동계 대표로는 송시영 새로고침 노동자 협의회 부의장(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만이 참석했다.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는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강노 높은 노동유연화를 강조했다. 현재 좌초 상황에 놓인 정부의 ‘노동개혁’을 두고 “(노동)개혁의 청사진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 문제”며 “개혁체제를 재정비해, 법 개정이 필요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명확히 구분해 매우 전략적인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해외 사례로 1982년 시간제 고용을 확대, 해고 예고 기간 단축, 업무능력 결여로 인한 해고를 허용한 네덜란드, 해고제한법 적용을 제외하는 사업장을 확대하고 파견규제를 완화한 독일 등을 들었다.

재계 요구와 흐름을 함께한다. 김대환 명예교수는 옛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시절 인 2015년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9·15 노사정 합의’를 주도했다. 하지만 이후 박근혜 정부는 쉬운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제도 완화를 일방적으로 추진했고, 한국노총의 합의파기 선언으로 이어졌다. 이날 콘퍼런스에서 김 명예교수가 제시한 노동개혁 방안은 상당부분 9·15 노사정 합의에 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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