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인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정책국장

5월12일은 전 세계 간호사의 사회공헌을 기리기 위한 국제 간호사의 날이다. 하지만 국제 간호사의 날에 자신의 직업에 자긍심을 가지며 일하는 간호사는 몇이나 될까. 수많은 간호사들은 오늘도 ‘탈 임상(의료기관을 떠나서 일자리를 찾음)’을 꿈꾸며 사직을 고민하고 있다.

국립대병원 간호사 중 2년 이내 퇴직하는 비율은 2021년 기준 54.5%에 달한다. 국립대병원은 ‘입사 대기’까지 할 정도로 가고 싶은 병원이지만 절반 이상이 2년 이내 퇴직한다는 사실은 한국 사회 간호사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퇴직한 자리는 매년 2만5천명씩 배출되는 신규 간호사가 다시 채운다. 간호대 정원은 2018년부터 매년 500~700명씩 늘어서 2024년에는 3만명에 달한다. 열악한 처우는 방치하고 배출 인원만을 늘린 결과 간호사 면허 소지자 중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55.3%뿐이다.

‘밥 먹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다’는 말은 간호 현장의 일상이다. 간호사들은 “내 밥은 굶어도 환자의 식사는 챙겨야 하고, 화장실 갈 시간은 없어도 환자 소변량은 체크”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간호사들이 만성적인 위장병과 방광염을 달고 산다. 기본적인 생활인 식사시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과 공짜노동도 일반화돼 있다. 상시적인 폭언과 폭행에 노출되어 있고, 인력 부족 속에서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움’을 당하고 간호사 노동인권은 유린된다. 사용자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병원을 운영하기에 휴가 사용도 자유롭지 못하고, 아파도 병가조차 내지 못한다.

간호관리료 차등제는 간호인력 확보 수준에 따라 입원료를 차등 지급하는 제도로 적정수준의 간호인력을 확보함으로써 환자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1999년 11월15일에 도입했다. 하지만 환자의 중증도와 간호 필요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간호사당 담당환자수가 많다 보니 제도 도입의 실효성이 없다. 사직으로 중환자실 간호사수가 줄어도 병원은 “이미 간호인력 1등급”이라며 충원하지 않고, 간호사를 구하지 못해 육아휴직 대체자조차 제때 충원되지 않는 상황이다.

간호사를 떠나게 만드는 열악한 병원 현장의 문제는 고스란히 환자의 피해로 돌아온다. 간호사들은 “인력이 부족해서 환자에게 충분한 간호를 제공하지 못 한다”고 말한다. 진통제를 찾는 환자에게 ‘기다려 달라’고 하고, 더 급한 환자에게 갈 수밖에 없다. 동동거리며 일하다가 행여 의료사고로 환자에게 위해를 줄까 봐 업무시간은 긴장의 연속이다.

입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병원 내 감염병 예방과 간병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현장의 간호사들에게 또 다른 부담이다. 섬망, 치매, 임종기 환자 등이 입원해 있는데 보호자도 없이 간호사 1명이 10~12명의 환자를 담당하다 보니 낙상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환자를 신체보호대로 묶어 놓을 수밖에 없다. 간호보조인력은 한 명당 환자 30~40명을 담당하는데 근무당 80~100개의 기저귀를 갈아야 하고, 환자의 옷을 갈아입히고, 변경하고 있다. 야간근무가 힘들지만 ‘환자가 잠들어 있는 게 차라리 고마울 지경’이다.

간호현장의 문제를 정부도 모르지 않는다. 지난 4월에 발표한 ‘2차 간호인력지원 종합대책’은 간호사 장기근속을 유도해 양질의 간호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기존의 정책 방향을 다시 언급하는 데 그쳤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인력 기준을 간호사 1:5에서 1:4로, 간호보조인력 1:40(30)을 1:8로 강화하겠다, 간호관리료 차등제 기준을 상향하여 개편하겠다는 대책은 담겼지만 구체적인 시행계획과 예산배정 등이 없어 실효성 측면에서 벌써 불안하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간호사 1명당 환자 수를 의료기관에 실질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보고 ‘간호인력인권법’ 입법운동을 진행했다. 2021년에 10만명의 국민동의청원을 얻어 발의에 성공했지만, 국회는 “입법 취지가 간호법 제정안에 반영돼 있다”는 핑계로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의료연대본부는 2023년 간호사의 날을 맞아 간호인력인권법 제정을 촉구하고, 간호 현장을 실제로 바꾸기 위해 ‘5·30 윤석열 정권 규탄, 보건의료인력 충원, 의료민영화 저지 의료연대본부 투쟁선포의 날’을 진행한다. 이후 7월 민주노총 총파업, 9월 공공운수노조 산별파업에 함께하며 강력한 투쟁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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