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믿지 아니한다.”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산재소송에서 법원이 불승인 처분의 근거가 된 전문가의 의견을 배척하며 설시한 말의 일부다. 고용노동부 고시(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및 근골격계 질병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의 법적 성질을 잘못 고려해, 상당인과관계 법리를 잘못 해석해서, 전문가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사실관계의 인정 여부에 문제가 있어서, 법원이 전문가의 의견을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의한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는 수많은 ‘전문가’가 관여한다. 근로복지공단 소속으로 혹은 외부에서 자문·역학조사·업무상질병판정·특별진찰·진료기록감정 등의 절차에 참여한다. 업무상 질병 인정기준과 같은 기준을 마련하고 법령을 개정하는 과정에도 많은 전문가가 깊숙이 관여한다.

여기서 ‘전문가’란 누구일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전문가란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해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과연 위 각 절차에 매우 깊이 관여하고, 법 집행으로서 행정청의 공권력 행사 여부를 사실상 결정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질병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이 글에서는 현재 업무상질병 판정 절차가 과연 산재보험법에 따른 업무상 질병의 인정 여부를 심의하기 위해 적절한 ‘전문가’로 구성·운영되고 있는지 짚어 본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위원장과 나머지 비상임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모두 변호사 또는 공인노무사, 대학 등에서 조교수 이상으로 재직하고 있거나 재직한 자, 의사, 치과의사 또는 한의사, 산재보험 관련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자, 산업위생관리 또는 인간공학 분야 기사 이상 자격 취득하고 관련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자 등의 자격요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위원의 3분의 2는 노사단체가 추천하는 위원을 동수로 위촉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런데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질병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졌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위 각 자격요건은 충분한가. 해당 자격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산재보험법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갖게 되거나, 그 자격을 갖고 일하는 모든 이들이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질병 분야에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쉽게 말해 변호사로서 경력은 길지만 산재소송 수행을 해보지 않은 자, 교수 또는 의사로서 경험은 상당하지만 산재보험법에 있어서는 문외한인 자, 산업위생관리나 인간공학 분야의 자격은 갖췄지만 상당인과관계 법리에 대한 이해가 없는 자가 존재하듯, 위 각 자격요건이 곧바로 업무상 질병 판정을 위한 ‘전문가’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질병판정위의 심의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① 재해자가 주장하는 업무, 작업환경 등의 내용에 대한 사실인정(업무의 확인) ② 재해자의 주치의가 진단한 상병이 확인되는지 여부(질병의 확인) ③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다. 이렇게 세 영역이 모두 인정될 때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된다. (다른 자격은 없이) 변호사인 필자가 신청 상병이 확인되는지 여부(②)를 스스로의 지식으로 판단할 수 없듯이, 다른 위원들도 지식과 경험의 내용 내지 정도에 따라 증거의 신빙성과 증명력을 평가할 수 있는 사실인정의 영역(①), 업무와 질병 간의 상당인과관계 판단의 영역(③)에서 전문성이 낮거나 없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각자가 가진 전문성의 경계와 한계를 모두 무시하고, 위 ①, ②, ③ 전체를 아우르는 판정에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해 이뤄지는 지금의 질병 판정 절차는 과연 신뢰할 만한가.

이와 같은 우려가 단지 기우가 아니다. 매건마다 재해자의 비만·흡연·음주습관에만 집중하는 위원, 재해자나 동료의 진술은 객관적 증거가 아니어서 그것에 근거한 업무 내용 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위원, 재량준칙으로 제시한 평균 업무시간 초과 여부만을 고집하는 위원, 노동부 고시를 처음 들어 본다는 위원, 본인은 산재보험법이나 판례 이런 것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르게 생각한다며 인과관계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펼치는 위원, 재해자의 24시간을 보는 것이 아닌데 제출된 자료만 보고 산재 ‘혜택’을 줘도 되는 거냐고 개탄하는 위원. 분명 어떤 분야의 ‘전문가’일 테지만 산재보험법상 업무상 질병을 판정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볼 수는 없는 많은 분들을 봐 왔다(위 각 발언은 사건이나 위원이 특정되지 않도록 유형화하는 식으로 각색했다). 질병판정위 회의에 누가 참여했는지에 따라 재해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받아들게 되는 구조다.

물론 그들이 바쁜 와중에 충분치 않은 수당에도 나름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온 것이라면 그 선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제도와 제도를 운영하는 행정부다. 업무상 질병 판정 절차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이 무엇인지 제대로 구별하지 않은 채, 이것이 ‘법상’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법정’ 절차임에도 그 ‘법’의 내용과 ‘법원’의 해석에 대한 이해를 고려하지 않는 위원 구성이 가장 큰 문제다. 느슨한 자격요건을 방치하고, 사전 교육을 이수하지 않아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심의 회의에 배정한다. 관련 법원 판례나 판정 사례를 제공하지도 주지시키지도 않아 법원이 위법하다고 배척할 가능성이 높은 판정들을 무한정 양산하고 있다. 위원 추천을 하고 있는 노사단체와 각종 협회에게도 어떤 자질을 갖춘 누구를 추천하고 있는지, 추천된 위원이 법상 판정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검증 내지 지원하고 있는지 진정 묻고 싶다.

질병판정위를 폐지하자는 말도 들려온다. 동의한다. 다만 여전히 이 제도를 거쳐야 하는 많은 노동자들의 기대와 애씀이 누군가의 연습장 위에 오르지 않기를 바라며, 제도에 관여하고 있는 전문가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해 본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