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4월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이자 세계 노동안전보건의 날이다. 1993년 태국의 한 인형공장에서 일어난 화재로 노동자 188명이 사망했다. 회사측은 노동자들이 비싼 인형을 훔쳐 갈까 봐 공장 문을 걸어 잠갔다. 빠져 나갈 수 없었던 노동자들을 화마가 덮쳐 피해가 컸다. 이 참사를 계기로 1996년부터 국제노총(ITUC)은 4월28일을 전 세계 사망·부상 노동자를 기리는 날로 정하고 추모한다. 국제노동기구(ILO) 또한 노동계의 요청에 따라 2003년부터 4월 28일에 스러진 노동자들을 기리는 한편 노동안전보건을 개선해 작업장의 사망과 부상을 줄이자고 다짐한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2022년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업무상 사고로 874명, 업무상 질병으로 1천349명이 사망했다. 사고 사망자의 절반 가까운 402명은 건설업종에서, 322명은 떨어져서 사망했다.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끔찍한 사고가 한 명이어도 짓누르는 무게를 지니는데 한 해 동안 이렇게나 큰 숫자로 더해지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202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ILO는 전 세계에서 한 해에 업무와 관련한 조기사망이 2백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계했다. 이렇게 엄청난 숫자의 죽음이 예방을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죽음이라고 강조하며 각국의 노력을 촉구했다.

올해 ILO의 4·28 세계 노동안전보건의 날 주제는 ‘노동기본권으로서의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이다. 그렇다.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만들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저 옳기 때문이다. 물론 산재로 죽거나 다치면 이는 큰 경제적 손실이 되고 결국 노사정 모두에게 피해로 돌아온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 큰 경제적 손실을 줄이고자 예방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것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인권이기 때문에 예방을 하는 것이다. 존경받는 의사이자 역학자인 제프리 로즈가 <예방의학의 전략>에 기술한 것과 같이 예방의 이유는 “아프거나 죽는 것보다는 건강한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ILO가 올해 4·28의 주제로 ‘노동기본권으로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채택한 이유는 이 기본권이 지난해서야 처음으로 ILO의 노동기본권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로써 ILO가 규정하는 노동기본권은 1998년에 처음 선언한 △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의 효과적 인정 △모든 형태의 강제근로 철폐 △아동노동의 효과적 철폐 △고용과 직업상의 차별 철폐를 포함한 5개가 됐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분야 협약 2가지(155호 산업안전보건과 작업환경, 187호 산업안전보건 증진체계)도 기본협약으로 추가됐다. ILO가 100주년을 맞아 새로운 목표를 선언하면서 노동기본권을 개정한 것이니 미래 노동의 핵심으로 노동안전보건을 지목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올해 4·28에 맞춰 ILO에서 발표한 보고서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 구현: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Implementing a safe and healthy working environment: Where are we now?)”에는 기본협약으로 지정된 산업안전보건분야 협약의 핵심 조항에 대해 국제적인 이행 상태를 평가하고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수많은 산업안전보건 법체계의 항목 중에서도 작업중지권을 핵심 조항으로 평가했다는 점이다. ‘위험한 작업 상황에서 회피한 노동자를 부당한 처우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항목으로 기본협약이 된 155호 협약의 13조에 명시된 내용이다. 보고서는 위험한 작업을 피할 권리가 업무상 사고·질병 예방을 위한 필수 기반이며 사업주 조치로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많은 노동자들이 이 권리가 기본적인 국제노동 기준으로 인정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각국은 국내법에서 위험작업을 거부할 권리를 국제 기준으로서 보장하고 이 권리를 행사하는 근로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기본협약이 된 산업안전보건분야 협약을 2008년에 이미 비준한 상태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작업중지에 대한 항목이 있는 것처럼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협약의 내용을 모두 만족한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현실에서 작업중지권의 실효성은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사업주가 불이익을 가하지 못하도록 처벌 등으로 규제하는 조항은 없다. 노동자들이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도록 임금이나 하청업체 손실 등의 보전 조치도 없다. 오히려 기업 손실을 이유로 한 사용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이 난무한다. 최근 논란인 타워크레인 조종사의 사례만 보더라도 현 정부는 작업중지권 행사 노동자 보호는커녕 작업중지권 행사 의지를 꺾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풍속이 기준을 초과하거나 끌어올려야 할 중량물의 위험성 등을 이유로 타워크레인 조종사가 작업을 거부하면 태업으로 규정돼 조종사 면허정지 사유가 된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최근 벌어진 사고에서 조종사는 위험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태업이라고 할까 봐 말도 못하고 일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 많은 산재사망자 숫자를 줄이려면 할 일이 참 많다. ‘죽은 자를 추모하며, 산 자를 위해 투쟁하자’는 4·28 세계산재사망 노동자의 날에 붙여진 슬로건이다. 산업재해 사망 노동자들을 기억하며 싸워보자. 작업중지권의 실질적 보장,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제대로 된 집행, 과로사 조장 노동시간 제도 개악안 폐기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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