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시간 개편’이 화두다. 정부는 ‘주 최대 69시간(6일 기준)’ 근무를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입법예고 했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닥치자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무리”라고 진화에 나섰다. 현행 ‘주 52시간’과 ‘주 60시간’ 사이에서 근로시간이 조정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그럼에도 ‘몰아치기 노동’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과로’를 넘어 노동시간이 한꺼번에 몰리는 ‘폭로(暴勞)’ 사회가 될 수도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장시간 노동, 특히 집중근무로 과로해 숨지거나 쓰러진 노동자들과 유족을 연속으로 심층 인터뷰한다. ‘몰아서 일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짚는다. 과로사 통계를 분석해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살핀다. <편집자>

“기억 속에 남편은 정말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출퇴근 기록을 보면 크리스마스 때도 출근했습니다. 20대는 공부만 하고 30대는 회사에서 일만 하다가 원하는 삶을 살아 보지도 못하고 갔어요. 너무 일만 해서 납골당에 가면 미안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과로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변리사 강채규(가명·사망 당시 45세)씨의 아내는 <매일노동뉴스>와 인터뷰에서 울음을 토해 냈다. 6년 전 그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강씨는 ‘기러기 아빠’였다. 자녀교육 문제로 외국에 있던 강씨 아내는 2017년 6월15일 새벽 남편의 사고 소식을 접했다.

삼성전자 특허 자문 등 고난도 업무를 하며 스트레스가 쌓였던 강씨는 사고 당일 새벽 1시께 다리 저림 증상을 호소하며 직접 119에 신고했지만, 한 시간 만에 대동맥박리로 사망선고를 받았다. 아내는 두 딸과 급히 귀국했지만, 남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강씨 아내는 “늘 바빴지만 사고 전날 한 시간 넘게 자상하게 통화했는데,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고 회상했다.

표면상 고소득, 실상은 과로에 대상포진

강씨는 17년 경력의 변리사였다. 이른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가 적용 가능한 직종이다. 화이트 이그젬션은 연간 임금소득이 일정 이상인 전문직·고위관리·행정직 종사자들은 연장근로수당과 최저임금 적용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제도다. 미국은 연간소득 10만달러(한화 약 1억4천만원) 이상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이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부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지난해 12월 고소득 전문직의 경우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등 근로시간 규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추진 방안과 같은 맥락이다. 인수위는 스타트업과 전문직의 근로시간 규제 완화를 검토한 바 있다.

과연 근로시간 대신 ‘성과’ 위주로 보상하는 제도가 고소득 전문직의 ‘워라밸’을 보장할 수 있는 것일까. 유족측 자료를 보면 강씨 사례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의 위험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강씨는 사망 두 달 전 주당 근로시간이 86시간(출퇴근 기록 기준)이 넘는 등 만성 과로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강씨 아내는 남편이 유능한 변리사였다고 기억한다. 변리사 시험을 2년여 만에 합격한 뒤 1999년 12월 국내 최대 규모의 특허법인에 취업했다. 입사 초기부터 일은 몰렸다.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만 쉴 수 있었다고 한다. 강씨 아내는 “5년간 연애했는데 남편이 너무 바빠 1~2주에 한 번씩 정도밖에 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심지어 신혼여행에도 노트북을 들고 가 일했다. 2007년 결혼한 이후에도 강씨는 늘 일에 쫓겼다. 강씨 아내는 “결혼 2년 후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남편이 두세 달 정도 일찍 퇴근하는 바람에 일이 산더미로 쌓였다”며 “친정엄마가 이때부터 옆에 와서 살게 됐다”고 했다.

▲ 변리사 강채규(가명·사망 당시 45세)씨의 변리사 자격증. 강씨는 2년여 만에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국내 최대 규모의 특허법인에 입사한 수재였다. <유족 제공>
▲ 변리사 강채규(가명·사망 당시 45세)씨의 변리사 자격증. 강씨는 2년여 만에 변리사 시험에 합격하고 국내 최대 규모의 특허법인에 입사한 수재였다. <유족 제공>

‘파트너’ 됐지만 업무 가중, 1년간 휴일은 단 3일

강씨는 2009년 4월 임원으로 올라가며 ‘파트너 변리사’가 됐다. 하지만 근무형태와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정황이 짙었다. 일상적으로 주당 70시간 이상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허법인 특성상 강씨 사망 이후 기록이 자동 삭제돼 출퇴근 교통카드 기록이 업무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기록이었다. 이 기록에 따르면 2016년 매달 평일 하루 평균 11시간 이상씩 일했다. 많게는 14시간 이상 일하기도 했다.

특히 사고 두 달 전인 4월 둘째 주에는 주당 근로시간이 86시간37분에 달했다. 한 달 전에도 주당 72시간을 근무했다. 쓰러졌던 주에는 가장 빨랐던 귀가 시간이 저녁 8시였다. 그중 이틀은 밤 11시가 넘어야 퇴근했다. 강씨 아내는 “남편이 평소 너무 바빠 휴대전화로 통화하기 힘들어 사무실로 전화하면 늘 받았다”며 “술을 즐기지 않아 회식에도 빠질 만큼 일에만 몰두했다”고 말했다.

‘빨간 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2016년 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강씨가 출근하지 않은 날은 월평균 3.35일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쉬는 날에는 피로를 호소했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의 휴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남편은 휴일에 가족여행을 가려고 하면 잘 다녀오라고 말하면서 미안해했어요. 돌이켜 보면 혼자 집에서 쉬고 싶었던 것 같아요. 취미도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크게 틀어 놓는 게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업무 특성상 긴장의 연속이었다. 삼성전자 담당은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것이라고 유족측은 추측한다. 2017년에는 삼성전자가 중국 화웨이와 특허분쟁을 벌였고, 2016년 특허건수도 전년 대비 15% 증가해 업무량이 늘 수밖에 없는 셈이었다. 유족측은 “강씨가 긴급한 자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손해배상책임 및 고객사의 계약해지 가능성에 상시적으로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피로 누적은 결국 신체에 ‘이상 신호’를 보냈다. 사망 넉 달 전인 2017년 2월 대상포진이 발병한 것이다. 평소 바쁜 와중에도 헬스장을 다니며 혈압을 조절했기에 강씨 아내는 더 놀랐다고 전했다. 아내는 “웬만하면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전신에 수포가 올라오며 굉장히 고통스러워 했다”며 “그런 와중에도 재택근무를 이어 갔다. 전문직 특성상 개인 사정으로 업무량을 줄인다면 급여도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상포진이 돌연사의 전조증상이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파트너만 37%, 유족 “근기법상 근로자” 소송

강씨는 임원 타이틀을 달고 나서도 사실상 구성원 변리사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생활을 이어 갔다. 삼성전자 특허 사건을 주로 맡았던 강씨의 책상에는 사건이 쌓였다. 대기업 업무는 통상 법인 차원에서 배당이 결정돼 강씨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구조였다.

법인이 ‘근태’도 상당 부분 관리됐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근시간을 변리사가 PC에 직접 입력했다. 지각과 연차·반차 횟수도 집계됐다. 보수형태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매달 기본급 외에 성과보수와 식대 명목의 금액을 받아 왔다. 임원에게 지급되는 배당금도 매년 받았지만, 액수는 월평균 약 130만원에 불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법인은 국세청에 배당금을 근로소득으로 신고했다.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유족측은 파트너 변리사 비율이 전체 변리사의 37.7%에 달했다는 점을 근거로 강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주장한다. 법인 대표 1명과 시니어 파트너 5명이 실질적인 임원으로서 경영을 담당했다는 취지다. 유족측은 “임원들은 차량과 독립적인 업무공간을 제공받는데도 강씨는 일반직원과 같은 사무공간에서 일했다”며 “임원에게 제공되는 최소한의 대우도 받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변리사들도 강씨가 ‘형식상’ 파트너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특허법인에서 수년간 근무했던 한 변리사는 “파트너가 되면 영업이나 경영에 집중하면서 페이퍼워크(서류작업)의 빈도는 많이 줄어드는 게 업계 관행”이라며 “그런데 고인의 근무시간과 급여 액수를 보면 외관상 파트너지만, 실질적으로는 구성원 변리사와 다름없었던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대형 법인은 임원 숫자가 많아 지분이 부여됐더라도 실질적인 경영은 대표와 소수의 시니어 파트너들이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 과로에 시달리다 2017년 6월 갑자기 목숨을 잃은 변리사 강채규(가명·사망 당시 45세)씨는 신혼여행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한다. 강씨가 신혼여행 숙소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 <유족 제공>
▲ 과로에 시달리다 2017년 6월 갑자기 목숨을 잃은 변리사 강채규(가명·사망 당시 45세)씨는 신혼여행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고 한다. 강씨가 신혼여행 숙소에서 업무를 하고 있는 모습. <유족 제공>

유족 “주 69시간 시대적 착오, 사람은 로봇 아냐”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7월 유족급여와 장의비 청구를 불승인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적용을 받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취지다. 공단은 “강씨가 오랜 기간 등기임원에 있었고, 업무는 과다했지만 위임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배당금을 받는 등 지시·감독의 종속성이 인정되지 않고 근태 통제도 받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종속적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했다고 본 소수의견은 배척됐다. 업무시간도 고용노동부 고시의 만성 과로 기준에 미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공단이 계산한 1주 평균 업무시간은 발병 전 4주간 42시간11분, 12주간 45시간40분이다.

강씨 아내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법인에서 근무기록을 제공하지 않고 있지만,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한다. 강씨 아내를 대리하는 이효건 변호사(법무법인 더보상)는 “망인은 실질적인 근로자였다”며 “파트너 변리사였다고는 하나 주어진 업무만을 수행했고 같은 수준의 급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아내는 남편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과 함께 소송을 준비했다. “아이들은 늘 아빠를 우상처럼 생각했어요. 너무 좋은 사람이라 하늘이 그렇게 빨리 데려갔나 봅니다. 가끔 대낮에 운전하면서 이유 없이 통곡할 때가 많아요. 지금은 터널에 갇혀 있지만, 힘내서 걷다 보면 끝이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주 69시간(주 6일 기준) 제도는 전문직을 법의 사각지대로 모는 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대적 착오입니다. 과거 신입사원 시절 주 69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건강이 나빠져 10개월 만에 그만뒀어요. 남편은 평소 ‘시간적 여유’가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종종 말했어요.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쉬어야 일할 수 있는 생명체지, 로봇이 아닙니다. 남편 소송으로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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