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금융노조 KEB하나은행지부는 ‘자주·민주·단결’을 운영 원칙으로 내걸고 있다. 은행 역사와 무관치 않다. 2015년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통합한 직후 은행 내부의 최대 숙제는 ‘통합’이었다. 지부도 두 은행 출신 위원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으며 하나 됨을 도모했다. 최근에는 더 이상 통합을 내부 과제로 꼽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 지난 1월 윤석구(47·사진) 위원장이 당선하면서 내세운 다음 과제는 “조합원과 함께 단결하는 노조”다. 그는 “조합원의 마음을 금융노조와 지부에 붙잡아 두려면 자주·민주·단결을 원칙 삼아 지부를 운영해야겠다는 구상을 세웠다”며 “조합원의 노동조건을 지키고 금융노조 투쟁에 함께 하는 지부가 되겠다”고 말했다. 윤석구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7일 오후 서울 중구 노조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노조활동 조합원 참여 저조,
 떠나간 마음 돌리고 싶다.”

- 신임 위원장으로서 계획과 포부는.

“선거에서 자주·민주·단결의 기반 위에 조합원을 위한, 현장 중심의 노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노조의 본질을 잊지 말고 조합원 뜻에 따라 활동하겠다는 얘기다. 일상적인 문장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 KEB하나은행지부로서는 매우 의미 있는 도전이다. 사측 압박으로, 내부 이견으로 조합원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과거에 적지 않았다.”

- 자주·민주·단결을 노조활동 나침반으로 삼겠다는 것은 특이해 보인다.

“자주라는 것은 외부의 압력, 경영진의 입김 등에서 자유롭자라는 의미다. 간부 집단 지성의 힘으로 지부를 운영하겠다는 얘기를 민주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독선으로 운영하지 않겠다. 자주적이고 민주적 운영을 통해 조합원을 단결시키겠다. 금융노조 파업찬반투표 등에서 우리 지부의 투표율이 굉장히 낮게 나온다. 노조활동 전반에 참여가 저조하다. 노조에 마음이 떠나 있는 조합원들에 가까이 다가가고, 단결시키고 싶다.”

- 은행 노사관계는 어떤가.

“1월부터 임단협과 정기 승진 등 주요 쟁점들을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잘 풀어 왔다. 다만 줄어든 영업점포와 ICT(정보통신기술직무)로 많이 빠져나간 인력문제 등으로 본점·영업점 가릴 것 없이 업무하기 매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다. 아침 일찍 회의는 시작하고, 편법적인 시간 외 근무가 발생하고, 과도한 영업목표에 따른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직원들은 점심시간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하고 너무나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경영진의 실적 압박 문제로 노사 간 부딪침이 있다. 지부에 KIP(핵심성과지표)이벤트팀을 만들어서 대응하고 있다. KEB하나은행 특유의 고질적인 영업문화 문제를 반드시 개선해 보려 한다. 직원을 힘들게 하고 피해를 주는 문제가 발생하면 노조는 본연의 자세로 투쟁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 금융업 이해 없이 정책 일방 추진”
“은행노동자 악마화시키는 분열 정책으로 점철”

- 윤석열 정부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를 가동하고 있다. 경쟁 촉진 방안을 주요하게 논의할 계획인데.

“진짜 은행을 걱정해서 하는 정책으로 보이지 않는다. 은행권 성과급 지급에 대한 국민의 비판 여론에 편승해 시작한 것으로, 은행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계획을 논의하는 장이 아니다. 주식회사인 시중은행 대부분은 외국인 주주가 절반 이상이다. 주주 이익을 최우선 삼아 경영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은행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격이 있지만 이는 국민의 자산과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주장돼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은행권은 ‘동북아 금융허브 로드맵’ 등을 발표하며 세계 금융 중심지를 위한 은행 대형화를 전략으로 삼았다. 그러더니 이제는 은행 몸집이 너무 크다며 작은 전문 은행이 필요하다고 한다. 은행업이 지금의 독과점 형태로 발전해 온 것은 시장과 정부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부는 금융업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온 계획부터 수립하고 금융정책을 펴야 한다.”

- 은행권을 압박하는 정부의 의도는 무엇일까.

“노조 때리기와 비슷하다. 노조를 때리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국민들이 많다. 이자로 고생한다. 이 문제를 두고 윤석열 정부는 ‘고임금 은행원이 문제다’ ‘퇴직할 때 한몫 챙겨 간다’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둘로 쪼개어 갈등하게 한다. 일하는 노동자인 은행원을 왜 이렇게도 악마화,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일터에서 열심히 고생하며 일하는 노동자일 뿐이다.”

- 금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정부 모습은 낯설다.

“최근 금리가 많이 올랐다. 그렇다고 은행 이익이 마구 널뛰기하는 것은 아니다. 은행이 공공의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주요 금융지주들은 이자 지원에 나서는 등 사회적 책무를 이행하려 노력하고 있다. 부족할 수는 있다. 방치보다는 관치가 낫다는 말을 한다. 개입해서 잘해 보려면 고금리 시대에 고통받는 서민을 위한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옳다. 그러지는 않고 금융권에 대한 억지스러운 비판 여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지 않나. 정치적 이해만 획득해 보려는 속셈인 것 같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 금융권은 디지털 전환에 앞장서 왔다. 이 과정에 점포 폐쇄, 이로 인한 일자리 축소 등의 문제가 불거졌다. 최근에서야 정부는 점포 폐쇄를 규제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전 은행이 디지털 전환이라는 대세를 따라왔다. 시중은행에서 지난 5년간 점포 570개가 줄었다. 점포 감소는 금융소비자 불편뿐만 아니라 금융노동자 생존권과도 관련 있다. 이제 더는 못 줄일 만큼 점포가 사라졌다. 이제야 정부는 제재하려 한다. 내용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폐쇄를 위해 사전에 의견수렴을 하라고 했는데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 폐쇄 후 대체 수단으로 고기능무인자동화기기(STM)을 활용하도록 한 점도 문제다. 노인 등 금융 취약계층에 대안이 될 수 없다. 수익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점포가 이미 감소했고, 인력감축으로 금융노동자 노동환경도 악화했다. 이제 점포 폐쇄가 아니라 점포 증설을 논의해야 한다.”

- 윤석열 정부는 집권 초기에 공공부문 노조를, 이후는 건설노조 등 특수고용직 노조를, 최근에는 금융권 노조를 공격하고 있다.

“정부라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의의 정책을 펴야 한다. 그게 정부의 본질이다. 금융권 발전을 원한다면 지원은 강화하되 금융소비자 권익 향상을 위한 경쟁 유도 측면에서 정책을 고민하는 것이 맞다. 지금은 특정 집단을 매도하고 깎아내리는 모습밖에 보이질 않는다. 한쪽을 공격해서 다른 쪽을 만족하게 하는 분열의 정책을 펴고 있다. 사회 발전에 바람직하지 않다.”

- 은행권은 코로나19 기간 단축한 영업시간을 1년 반만인 지난 1월 다시 돌려놨다.

“영업시간을 단축했더니 업무 효율성이 굉장히 증가했다. 업무시간을 줄이면 영업효과도 감소하고 수익도 줄어들 것 같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영업시간 단축으로 은행노동자 퇴근시간이 빨라지는 것은 아니다. 은행 셔터를 내린 후 영업시간 이후에 해야 할 업무들을 처리할 시간이 길어졌던 셈이다. 단축한 영업시간의 제도화까지 기대했는데, 아주 손쉽게 원래대로 돌아갔다. 금융노조는 노사공동 태스크포스(TF) 회의를 통해 영업시간 운영방안을 논의하자고 제안했으나 사측은 수용하지 않았다. 아쉬움이 매우 크다. 개별은행이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 금융노조는 올해 산별중앙교섭 핵심 요구안에 주 4.5일제(주 36시간제) 도입을 걸었다.

“금융노동자는 과거 주 5일제 도입을 선도했던 것처럼 노동시간 단축을 끌고 나가야 한다. 은행권을 적대시하는 정부, 이로 인한 사회 분위기 때문에 노동시간 단축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우리를, 금융노조를, 은행노동자를 계속 악마화하려 할 것이다. 금융노조 요구에 대한 비난이 잇따를 것이라 예상된다. 그래도 길을 잃지 않고 누군가는 앞서 가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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