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경영과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해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것은 일종의 숙명이다. 이에 응하지 않겠다면 이사회 회의록이라도 공개해야 하는데 이마저도 하지 않고 있다. 최근 경영진이 새 집행부가 취임한 만큼 성찰할 시점이라고 말했는데 노조가 더 좋은 사외이사를 추천하라는 뜻으로 듣겠다.”

김정(44·사진)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의 얘기다. 김 위원장은 대립적 노사 관계를 개선하고 협력을 증대하기 위한 노력을 인터뷰 중 강조했지만, 지배구조 개선은 강한 어조로 지적했다. 지난달 7일 취임한 김 위원장을 지난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노조하는 사람들은 송곳 같은 존재

- 취임 포부는.
“노조하는 사람들은 송곳 같은 존재다. 드라마 <송곳>에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한걸음 딛는 송곳 같은 인간’이라는 대사가 있다. 2017년 노조활동을 처음 시작할 당시 적당히 하고 나오라던 선배의 말에 한다면 제대로 하겠다고 답했다. 지금 영업현장과 본부부서 어느 한 곳 편한 곳이 없다. 휴가를 쓰려고 해도 눈치를 봐야 한다. 아이가 아픈 직원과 부모님이 아픈 직원이 눈치 보는 일도 있다. 여유 인력 한 명 없이 운영하는 구조와 성과지표(KPI) 탓이다. 투쟁할 때는 투쟁하고, 머리를 맞댈 때는 맞대어 새로운 노사관계를 만들어 가겠다.”

- 구체적인 목표가 있나.
“인위적 구조조정 저지다. 최근 디지털 전환에 따라 사회 전반에 구조조정 압박이 증대할 것으로 본다. 10년 내에는 반드시 인력구조가 변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쪽은 인위적 구조조정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현행 규정상 위원장 개인이 동의하면 구조조정이 가능하다. 이런 규정을 바꿔 조합원의 노동환경에 큰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은 조합원이 직접 결정하도록 하겠다. 내년께 지부 운영규정을 개정할 계획이다.”

- 최근 KB국민은행 노사관계는 어떤가.
“알뜰폰 사업으로 갈등이 커진 상태다. 노동자에게 업무를 가중할 수 있어 쉽게 허용할 수 없는 대목이었다. 알뜰폰 사업을 하면 영업점의 실적 부담이 커질 게 불 보듯 뻔했다. 막아 세웠고, 현재까지 관련 갈등이 지속하고 있다. 다만 알뜰폰 사업이 조합원에게 부담이 없는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 협의가 가능한 지점도 있다. 노조의 감찰 같은 활동으로 제어가 가능한 대목도 있다. 지부는 근로조건감찰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장 의견을 듣고 감찰 활동을 하는 기구다. 현재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해 한 발 정도는 뗀 상태라고 본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 조직 논리 아닌 거수기 극복 노력

- 지부는 지속해서 지배구조 개선 같은 사회적 요구를 했는데.
“KB금융지주는 1주의 주식이라도 보유하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외이사 예비후보 추천제도를 앞세워 장막 뒤에서 사외이사를 선출해 왔다. 그들이 경영진 감시와 견제 역할을 할 리 만무하다. 대표적 폐단이 회장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가 다시 회장을 선출하는 회전문식 회장 선출 구조와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 결정에 동조하는 거수기 사외이사다. 이로 인해 묻지마 해외투자가 실패로 이어져 그룹에도 큰 부담이다. 윤종규 지주회장은 지난 주주총회에서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부결을 알리면서 주주나 기업가치가 아닌 조직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지배구조 개편은 조직 논리가 아니라 노조가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본분을 다하기 위해 당연히 추진해야 할 목표다. 지주회장의 제왕적 권력이나 거수기 사외이사 제도는 지난 정부와 현 정권 모두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이런 시대적 요구를 받아 주주들에게 보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주주제안 활동을 꾸준히 이어 가 결과를 만들 것이다.”

- 윤석열 정부는 최근 시중은행 독과점을 지적하면서 제도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다. 금융위원회는 시중은행 몇 곳의 독과점을 비판하면서 은산분리 완화, 스몰 라이선스 부여 같은 경쟁을 강조했다. 은행이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해 각종 법률로 규제하는 규제산업이자 공공성을 지닌 산업이라는 원칙을 망각한 셈이다. 태생적으로 자유시장주의를 외치는 보수정권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은행권 임금과 성과급·퇴직금에 대해서도 같은 잣대를 대야 한다. 은행 수익을 노사 자치주의에 따라 분배하는 것을 문제로 삼는 것은 헌법상 노동 3권 부정이자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자유시장주의에 반한다.”

- 올해 초부터 관치금융 논란이 거세졌다. 특히 금리 개입은 이례적인데.
“윤석열 정부의 관치는 은행권을 규율하던 빗장을 푸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산업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공공성을 무너뜨려 무한경쟁 시대가 오면 부메랑은 국민에게 간다. 금융권 낙하산 인사 문제는 현 정부 임기 내내 심화할 것으로 본다.

올해 초 금융회사 주주총회에 앞서 지배구조 문제를 들여다보겠다고 금융당국이 엄포를 놨다. 자기 사람 심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전직 금융위원장이 지주사 회장이 되고, 주인 없는 회사라는 KT에 정치권 외압 광풍이 불었다. 올해 11월 윤종규 지주회장 임기가 끝난다.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리는 인기영합주의에 휘둘리고 있다.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일시적으로 이뤄지는 금리인하는 금융소비자 권리 신장을 위한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금리인하 혜택은 소수만 보고, 풍선 효과로 다른 곳에서 수수료 인상 같은 방식으로 은행 손해가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연이은 금리인상으로 국민의 어려움이 큰 상황이다. 그렇다면 과세를 통한 조정이 있어야 한다. 이를테면 횡재세다. 그런 방식을 고민하지 않고 당장 금리를 내리라며 정부가 개입하고 주도하는 것은 인기영합주의다. 당연히 금리가 내리면 금융소비자는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물가가 내렸나.“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정부 노동정책, 콘트롤타워도 국정철학도 없다

- 점포 폐쇄와 영업시간도 금융권 현안인데.
“점포를 폐쇄하면 업무가 는다. 통계에 따르면, 그리고 체감상으로도 점포 폐쇄에 따라 인력이 줄고 있다. 그렇다고 거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해당 거래는 다른 점포 다른 직원에게 이관된다. 결국 거점점포에 금융소비자가 몰려 업무시간은 더 지연하고 노동자는 더 힘들다. KB국민은행은 이미 9 to 6 점포를 운영하고 있는데 점포 폐쇄에 따른 연쇄효과가 크다. 9 to 6 점포를 운영하려면 오전조는 4시에 업무를 마감하고 퇴근해야 한다. 그런데 내방고객이 계속 몰리니까 창구를 닫지 못한다. 야근이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최근 노조 감찰단을 통해 확인한 대목이다. 이런 식으로 점포를 줄여 점포 한 곳당 고객수가 늘어나고, 자연히 노동자는 늘어난 업무를 감당하며 연장근로를 해야 한다. 악순환이다.”

- 연장근로와 관련해 정부의 노동정책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정책 일관성이 아예 없다. 대선후보 시절 주 120시간을 이야기했다. 대통령이 된 뒤 최근 주 69시간(주 6일 기준)을 언급했다가 60시간으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정책의 콘트롤타워도 없고, 대통령도 국정철학이 없이 여론의 향배에 따라 오락가락한다. 인기영합주의다.

최근 정부가 은행산업 독점구조를 비판하고 경쟁을 유도하려고 하면서 정작 노사 자치주의는 부정하고 있다. 은행의 수익이 많은 대목, 그리고 노조라는 점을 물어뜯고 있다. 앞서 화물노동자와 건설노동자를 범법자·건폭 따위로 몰아 지지율 상승 맛을 봤다. 이제 상대적으로 임금과 복지 수준이 높은 금융노동자에게 칼날을 겨눈 것이다. 노조활동에 대한 국민적 정서에 노동계도 반성이 필요하지만 정당한 노조활동까지 비난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안타깝다. 이를 악용하는 정부는 비겁한 행태로, 규탄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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