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인근에서 만난 6년차 서울시 수도검침원 이광우(55)씨. 그는 최근 허리디스크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 받았다. 이후 그는 동료들과 모임을 결성해 수도검침원 노동 실태를 알리고 산재를 장려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최근 서울시설공단 소속의 6년차 수도검침원 이광우(55)씨가 허리디스크, 근골격계 질환으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철판과 맨홀 뚜껑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들어야 하는 수도검침원에게 발생한 근골격계 질환은 업무상 연관성이 크다고 판정했다. ‘골병드는’ 이들의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산재 신청이 어렵다”고 말하는 수도검침원들에겐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수도검침원 357명 중 질병 산재 ‘1명’

지난 10일 <매일노동뉴스>가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7명의 수도검침원 중 2명이 허리 혹은 다리의 신경 손상으로 인한 시술 경험이 있었다. “무릎 연골이 없다”고 밝힌 이도 1명 있었다. 수도검침원으로 20년 넘게 살아온 이경종(57)씨는 “50대 동료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어깨 연골이 하나도 없다고 ‘무슨 일을 하냐’고 물었다더라”며 “80대 노인들이 주로 연골이 없는데 연골이 30년 동안 할 일을 앞당겨 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평균연령이 50~60대인 수도검침원들의 연령을 고려해도 이들이 겪는 근골격계질환이 일반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들은 “주변 동료 중 허리 통증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이런 근골격계질환을 노동환경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수도검침원들은 “산재와 병가 신청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공단은 지난해부터 ‘S, A, B, C, D, E’ 6단계로 나눠 성과급을 지급해왔다. 최상위 등급인 S등급은 하위 등급인 E등급보다 연 2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더 받는다. 수도검침원들은 “낮은 등급을 받은 사람은 대부분 병가를 써서 관리자 눈 밖에 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병가나 산재를 신청하면 중간관리자의 인사 평가부터 불이익이 발생하고 성과급에 영향을 준다고 했다. 그래서 관리자의 타박이 이어지고 결국 자신의 성과평가도 낮아져 병가나 산재 신청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공단측은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공단 상수도지원처 관계자는 “(산재로 인해)관리자에 대한 불이익도, 관리자가 수도검침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도 없다”며 “근무평가는 매년 2회 근무태도, 창의성, 팀워크 등 다양한 기준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이뤄지고 산재나 병가는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산재 승인에 적극적”이라는 공단 반박과 달리 공단 내 산재 지표는 미미한 수준이다. 2019년 공단이 실시한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표본조사)에 따르면 수도검침원 중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자각한 이는 76%나 됐다. 반면 공단에서 최근 3년간 업무상 질병이 인정된 사례는 이광우씨가 유일하다. 이달 기준 공단 상수도지원처에 소속된 검침원은 357명으로 적어도 200여명 이상이 근골격계질환 증상을 자각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중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검침원은 이씨뿐이다. 산재 신청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수도검침원들의 증언과 산재 승인 결과가 맞아떨어진다.

“나이 탓” 산재 주저하기도

대부분 수도검침원이 중고령 노동자라 근골격계질환을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서울시 수도검침원의 경우 오랫동안 용역회사에 소속돼 일하다 지난 2016년 공단으로 정규직 전환돼 병가나 산재, 연차휴가 같은 ‘권리’를 적극 행사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22년차 수도검침원 김영애(58)씨도 8년 전 허리와 다리 통증으로 신경성형술과 감압술을 받았지만 산재 신청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병가도 쓰지 못해 시술 하루 만에 출근을 재개해 현재까지 후유증에 시달린다. 당시는 현재처럼 공단 상수도지원처 소속의 정규직이 아니라 용역회사 소속이라 산재신청은 더욱 엄두를 못 냈다. “지금은 적어도 병가가 형식적으로나마 보장은 되는 편인데 당시에는 병가도 없었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 한마디 못했죠.” 옆에서 다른 동료가 당시를 회상하며 덧붙였다.

이씨가 수도검침원 노동실태 조사 모임을 만든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이씨는 이후 주변 동료들에게 ‘산재 신청 전도사’가 됐다. 이씨는 “주변 동료들이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에 다녀도 산재를 신청하기 주저한다”며 “산재 신청으로 상급자나 동료에게 피해를 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에서 동료들과 함께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하루 평균 50킬로그램에 달하는 수전의 무게를 쟀고, 활동사진을 찍어 동료들에게 공유했다. 이씨는 “동료들이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를 깨닫고 산재 신청을 지레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광우씨 산재 신청을 대리한 신현국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사람과 산재)는 “근골격계질환을 가진 재해자들을 만나보면 질환이 발생해도 생계 때문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데 이러면 치료를 받더라도 다시 재발하게 된다”며 “산재로 인정받은 사실이 있다면 재요양 및 추가상병 제도로 쉽게 추가 보상을 통해 치료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질병 산재 신청해도 경영평가에 영향 없어”
지침 바뀌어도 현장 인식은 그대로

수도검침원들이 산재 신청을 기피하는 이유는 내부의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관의 경영평가가 낮아질 수 있다는 오해와 개인의 평가급에 불이익을 줄 수 있는 행정안전부의 지침 때문이다.

행안부가 지난해 발간한 ‘2022년 지방공기업 경영평가편람’에는 이전과 달리 평가지표가 변경된 내용이 담겼다. 재난·안전관리 지표에서 직원 안전사고건수 중 질병 등을 제외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여전히 산재 신청으로 기관 경영평가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방공기업평가원에 따르면 해당 편람이 개정되기 이전, 즉 2022년 이전에는 직원 안전사고건수에 ‘질병에 의한 재해’가 포함됐다. 따라서 업무상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산재가 발생할 경우 재난·안전관리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는 구조였다. 지난 10일 <매일노동뉴스>가 만난 수도검침원들은 “내가 산재를 신청하면 기관이 낮은 경영평가를 받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제도가 바뀌었지만 현장에 내용이 제대로 공유되지 않으면서 산재 신청을 여전히 기피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수도검침원들은 관리자의 평가뿐 아니라 행안부 지침도 지적했다. 행안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3년도 지방공기업 예산편성기준’에 따르면 지방공단 직원이 경영평과 평가급을 받을 때 일하지 않은 기간은 제외하도록 돼 있다. 여기에는 휴직이나 6일 이상의 장기병가, 징계 등의 기간이 포함된다. 물론 업무상 질병으로 병가를 갈 경우 해당 기간은 제외하지 않는다. 하지만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는 데 평균 100일 이상이 소요될 뿐 아니라 당사자가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해당 지침은 병가 신청을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병가로 인해 성과급이 깎인다는 오해와 산재 신청이 불승인 될 경우 실제 성과급이 감액되는 불이익을 고려한다면 해당 지침은 병가뿐 아니라 산재 신청의 걸림돌이 된다.

근골격계 통증 느낀 수도검침원 40~76%
… 공단은 “근골격계 부담작업 아냐”

근골격계 질환 산재 신청은 사후 대책일 뿐이다. 사전에 질환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문제는 공단은 수도검침원의 업무를 근골격계 부담작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라 부담작업은 11개 유형으로 나뉜다. 검침원들 증언에 따르면 이들의 작업은 근골격계 부담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수도검침원들이 수도계량기를 확인하기 위해 상하수도 수전 뚜껑을 들어올리고 있다. 철판 뚜껑의 무게는 약 80킬로그램에 달했다. <정기훈 기자>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수도검침원들이 수도계량기를 확인하기 위해 상하수도 수전 뚜껑을 들어올리고 있다. 철판 뚜껑의 무게는 약 80킬로그램에 달했다. <정기훈 기자>

2019년 공단이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 결과를 보면 공단은 통행료 관리소에서 징수 업무를 하는 노동자는 근골격계 부담작업을 한다고 판단했지만 수도검침원은 부담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근골격계질환 증상조사에서 수도검침원들은 통행료 징수 노동자보다 근골격계 증상 자각률이 높았다.

공단은 수도검침원 25명을 대상으로 유해요인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들은 평균 2.3년의 작업기간에도 76%가 근골격계질환을 자각하고 있었다. 반면 요금 징수를 하는 이들(20명)은 평균 12.2년 일했고 증상자각률은 1%포인트 낮은 75%였다.

3년 뒤 조사도 현장 증언과는 달랐다. 공단이 지난해 81명의 수도검침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골격계질환 유해요인조사에서 40%의 노동자가 근골격계에 통증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공단은 노동자들이 하루 평균 10킬로그램 내지 25킬로그램의 철판을 1.2개 든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10일 <매일노동뉴스>만난 수도검침원들은 “최소 수십 킬로그램의 철판을 하루 10개 이상 취급한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공단 관계자는 “수도검침원은 근골격계 부담작업에 해당하지 않지만 작업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19년부터 2인1조의 안전지원반을 실시하고 무거운 수전을 디지털계량기로 교체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수도검침원들은 “2인1조 지원반은 인력충원없이 이뤄지고 있어 한계가 크다”는 입장이다. 신현국 노무사는 “공단이 얘기하는 안전지원반은 중량물 취급작업을 지원하는 전담인력이 아니고 다른 현장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라며 “동료에게 본인의 일을 미루고 자기 일을 도와달라고 말하는 직장인은 없다”고 꼬집었다. 신 노무사는 “디지털계량기 교체는 유해·위험요인을 제거해 근골격계질환 예방의 대책이 될 수 있으나 인력감축으로 직결되는 문제”라며 “근골격계 질환자는 계속 발생하는데 해결방안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유해요인조사가 형식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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