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다혜 변호사(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금속노조 법률원)

건설현장은 단연코 가장 위험한 사업장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분명히 그렇다. 1970년대 영국, 1990년대 독일·일본의 수준에 달한다는 오늘날 한국의 중대재해 규모는 세계적으로도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제조업과 함께 건설업 중대재해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국가 실태와 비교해도 훨씬 크다. 단순히 산업 자체의 위험성 때문만이라고 할 수는 없고, 특별히 한국에서 안전보건관리를 더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통계를 보면 지난 한 해 사고사망자의 53.0%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2위인 제조업(26.6%)의 2배에 해당한다. 특히 건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중은 8%대에서 점차 감소하고 있는데도 중대재해 비중은 증가하는 추세다.

중대재해처벌법 집행 현황에서도 건설업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현재까지 총 14건이 기소됐는데, 8건이 건설현장에서 일어난 중대산업재해 사건이다. 새로운 법을 적용하느라 평소보다 수사나 기소에 시일이 걸린다는 설명을 그대로 수용한다면, 건설업 재해는 다른 중대재해보다도 먼저 기소할 수 있을 정도로 의무위반의 내용이 명확하다고도 해석된다. 각 재해 개요를 보면 “상가 신축공사 크레인 작업 중 철근 다발이 일용직 하청노동자 머리 위로 낙하해 사망” “병원 증축공사 현장에서 자재인양하던 하청노동자가 중량물 무게 등으로 5층 내부 개구부로 추락해 사망” “노후 가압장 개선 공사 중 회전하는 굴착기 후면과 담장 사이에 하청노동자 협착해 사망” “상수도 확장공사 현장에서 상수도 부설 후 되메우기 작업 중 청소업무를 담당하던 하청노동자가 후진하는 굴착기에 치여 사망” 등 낯설지 않은, 흔하게 봐 온 사고와 죽음이다.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이해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라는 고용노동부의 평가처럼,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재해의 대다수가 전형적인 ‘후진국형 재해’ ‘재래식 재해’다. 압도적으로 위험한 일터라는 결과가 발생하는 원인은 어쩌면 자명하다. 고도의 새로운 기술적 조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적돼 온, 기본적인 조치 미비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방치돼 발생한 재해는 끝내 가장 취약한 노동자를 겨냥한다.

그런데 이달 6일 선고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첫 판결(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23. 4. 6. 선고 2022고단3254 판결)에서 법원은 이러한 ‘관행’을 중대재해 가해자에게 유리한 양형이유로 들었다. 그 결과 대표이사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법인에게 벌금 3천만원의 형을 내렸다. 피해자 사망이라는 결과는 건설현장의 만연한 관행이 일부 원인이 된 것이므로,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피고인들에게 돌리는 것은 다소 가혹한 측면이 있다는 이유였다.

가혹하다. 몹시 모질고 혹독하다는 것인데, 숨진 노동자를 향한 것이 아니다. 가해자인 사업주는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위험성평가, 작업계획수립, 관리·감독도 하지 않았다. 추락위험이 있는 곳에서 중량물 취급 작업을 하는 작업자들에게 안전대를 지급하지도, 부착설비를 설치하지 않았다. 재판부의 판결은 그런 가해자들에게 향한 온정의 마음이다. 추측하건대 ‘고의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감옥에 가게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과실범에 관한 법원의 양형 관행이, 안전범죄가 얼마나 중한 범죄인지 공감하지 못한 법관에 의해 고의범에도 무심하게 적용된 것이 아닐까.

더 심각한 것은 위험한 관행과 현장을 방치하고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범죄행위를 가해자에게 불리한 사정이 아닌 유리한 사정으로 이해한 법원의 인식이다. 기본적으로 산업현장은 재해의 위험이 상존하는 곳이므로(당연하다는 말은 아니다) 노동자의 과실에도 재해를 막을 수 있는 구조와 체계를 갖추고 이행하는 것이 사업주의 의무다. 사업주가 그러한 의무를 저버리면, 비록 다른 행위자나 피해자의 과실이 경합했다고 하더라도 사업주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우리 법이 말하고 있는 바다. 위 판결이 언급하고 있는 “피해자를 비롯한 건설근로자 사이에서 만연해 있던 안전난간의 임의적 철거 등의 관행”이 당시 작업상 불가피한 작업방식이었다고 볼 여지가 있을 뿐 아니라, 설령 그것이 작업자들의 잘못된 관행이라 한다면 사업주는 관리·감독을 통해 그러한 관행을 시정하고 사전에 위험성평가와 작업계획 등을 통해서 추락방지 조치를 취할 더 무거운 책임을 가진다는 점에서 법원의 판단은 이해하기 어렵다.

불행히도 건설현장이라는 위험한 일터를 바라보는 시선의 왜곡은 법원만이 아니다.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하지 않으면 작업하지 않는다”는 현장문화를 독려하는(노동부) 다른 한편에서는 “안전점검은 전문가의 몫이지 조종사(노동자)의 역할이 아니다”며 평소보다 작업을 늦추는 ‘불성실 업무 유형’에 대해서는 타워크레인 면허정지 처분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위협하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있다. 대검찰청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서는 해당 작업장소의 위험이나 개선사항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현장 작업자인 종사자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대검찰청)고 강조했다. 심지어 노동부는 법상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현장 노동자가 위험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작업을 중지하도록 해 안전관리를 강화한 건설회사를 우수사례라며 홍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목숨 걸고 일하지 않으면 밥줄을 끊겠다는 국가의 으름장 앞에 안전을 말하는 것은 사치가 됐다. 이쯤 되면 위험한 일터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기업의 탐욕이나 경영진의 무관심만이 아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삶에 무심한 법원과 오히려 힘줘 벼랑 끝으로 노동자를 내모는 정부가 오늘날의 위험천만한 ‘K-건설’을 함께 만든 것은 아닐까.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해 누구를 감시하고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기억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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