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숙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2019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는 업무상 질병 산재 신청은 1만4천건에서 2022년 1만7천건으로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이미 2016년부터 업무상 질병 사망자 수가 업무상 사고 사망자 수를 추월했다. 앞으로도 업무상 질병의 신청과 인정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산재 통계자료를 보더라도 업무상 사고보다는 업무상 질병 발생이 훨씬 많다. 한국 또한 최근 질병 산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어 업무상 질병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2007년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도입 이후 15년 동안 노동계·노동안전보건단체·산재노동자들은 업무상 질병 확대와 인정기준 완화, 신속한 산재 승인을 요구해왔다. 노동계가 추천하는 판정위원 확대, 신청 상병과 업무 부담작업 평가의 객관성 담보를 위한 특별진찰, 소위원회 도입, 산재 인정의 신속성을 위한 추정의 원칙 도입, 인정기준 완화 등 다양한 방안을 보완하면서 나름 업무상 질병에 대한 인정률을 높이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질병판정위는 6개 지역에서 8개 지역으로 확대하고, 공단 직원 104명과 외부추천 전문가 743명이 참여하는 기관으로 커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근로복지공단에서 배포한 ‘질병판정위 2022년도 4분기 심의현황 분석’ 자료를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심의 결과로 여전히 공단이 해야 할 역할은 방기한 채, 개별 노동자에게 불승인의 고통을 전가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월24일 민주노총, 공동법률사무소일과사람,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공동 개최한 ‘판정위원회를 말하다’ 토론회에서 취합한 지역별 불승인 사례와 판정위원 진단을 보면 지역별 질병판정위에 대한 공단의 관장 부족에 대한 우려를 감출 수 없다. 공단은 질병판정위원들의 책임으로 더 이상 회피하지 말고 심사숙고한 평가와 진단을 내려야 한다. 이를 통해 업무상 질병 판정의 운영 변화와 산재보험법 취지에 맞는 중장기 해결과제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질병판정위 운영과 관련한 문제를 보자. 부산질병판정위는 조선소를 비롯한 제조업과 건설 등 업무 부담이 높은 현장이 많은 곳이다. 그런데도 8개 질병판정위 중 불승인율이 가장 높았다. 전체 업무상 질병 인정률을 보면 서울북부질병판정위 인정률이 75.1%인데 반해 부산질병판정위는 54.0%로 인정률 차이가 21.1%에 이른다. 이런 편차는 동일한 질병(근골격계질환, 뇌심혈관계질환, 정신질환 등)에도 나타난다. 광주·대전질병판정위와 서울남부·북부 질병판정위와의 인정률 차이는 20% 이상으로 벌어진다. 2022년 전체 업무상 질병 인정률 ‘62.9%’라는 결과를 낳게 한 질병판정위의 일관성없는 운영을 평가하고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질병판정위와 공단의 이런 운영 문제는 많은 산재노동자에 치료받을 권리를 박탈하고 힘든 고통을 준다. 현재 업무상 질병 인정 과정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 몇 번의 중복절차를 거쳐야 하고, 평균 4~5개월 동안 산재 결정이 나기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산재노동자의 잘못이 아닌 의료기관의 과잉진료(?) 문제를 사회적으로 규제할 대안이 부재하다는 이유로 개별 노동자가 모든 것을 떠안아야 하는 현재의 질병판정위 결정 방식은 더 많은 노동자의 치료권 포기로 이어진다. 이러한 진입 장벽은 안 그래도 회사의 압박과 고용불안의 위협을 감내하는 노동자에게 아픈 몸을 감수하며 죽도록 일하게 만들고 있다.

이제라도 공단은 업무상 질병 인정을 산재보험법 시행 목적에 부합하도록 신속하고 공정하게 결정해야 한다. 특히 현재 업무상 질병을 심의·결정하는 질병판정위는 스스로 일관되지 못한 운영의 문제점을 제대로 진단하고, 일관된 운영과 신속한 결정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보험으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법취지를 제대로 실현하고 산재노동자의 존엄한 삶과 치료권 보장을 위해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과제를 다시금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산재보험법 취지에 맞도록 질병판정위를 운영해야 한다. 판정위원이 결정한 사건이 심사위원회나 재심사위원회, 재판에서 변경된 사례나 유사 사례에 대한 동일 혹은 다른 질병판정위 결정을 비교하도록 안내나 교육·토론이 필요하다. 더불어 판정위원에게 기존의 유사 사례뿐 아니라 해당 질병, 해당 직종·업종의 산재 사례 데이터를 충분히 제공해 업무상 질병 판정이 일관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둘째 질병판정위가 다루어야 할 업무상 질병의 수를 축소해야 한다. 근골격계질환은 추정의 원칙을 확대하고, 뇌심혈관계질환은 고용노동부 고시 기준을 충족할 경우 공단 지사의 당연승인 결정으로 한다. 직업성 암도 적절한 추정의 원칙 대상을 만들어 명백할 경우 공단 자문의사의 확인을 거쳐 승인하면 된다. 질병판정위가 실제 다뤄야 할 업무상 질병을 대상으로 심사숙고한 토론과 합의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공단은 치료와 재활을 위한 기관으로 다양한 지원과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승인·불승인 결정에 드는 사회적 비용과 시간을 오히려 치료와 재활로 집중해서 노동자의 치료권 강화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넷째, 다양한 조건과 노동환경 변화는 업무상 질병 판정을 어렵게 한다. 심지어 전문가도 그러한 데 산재노동자는 오죽할까. 노동자가 산재를 입증하는 현재의 방식을 전환해 사업주가 입증하도록 제도 개편이 중요하다. 더불어 보편적인 상병수당을 도입해야한다. 산재 승인 전까지는 휴업급여를 상병수당으로 지급받고, 산재 승인 이후 지급 중단 혹은 환수해 산재노동자의 치료비와 생계비에 대한 부담을 줄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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