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권 전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강제한 금융노동자 성과연봉제 도입과정에서 무너진 금융산별중앙교섭을 복원하기 위해 2017년 9월 금융노조 간부들이 금융사용자단체협의회를 항의방문 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금융노조 위원장이었던 저와 정덕봉·문병일 당시 부위원장에 대해 검찰과 법원은 업무방해 등으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그후 3명은 각 소속 회사에서 해고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노총, 민주노총, 금융노조, 한국노총 산하 각 산별연맹,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 사무금융노조, 금융정의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변 노동위원회, 참여연대 등 국내 수많은 노동·시민단체 등이 부당해고 철회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나아가 세계 최대 노동조합 단체인 ITUC(국제노총)의 샤란 버로우 사무총장 또한 복직을 요구하고, 강력하게 연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노력으로 해고자 3명은 지난해 8월 광복절 특별 사면복권됐습니다. 이에 힘입어 같은해 9월 문병일 전 부위원장은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노사화해로 복직했으며, 올해 2월 저 또한 서울지노위가 부당해고를 인정하면서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정덕봉 부위원장은 서울지노위 및 중앙노동위원회 심판결과 부당해고를 인정받았는데도 KB국민은행 사측은 복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해고 263일째, 해고노동자의 삶은 어떠할까요?

4월의 아침 햇살과 봄꽃이 찬란하게 빛나고 출근길을 서두르는 수많은 직장인들 속에 ‘해고노동자’라는 이름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무너진 금융산별중앙교섭은 복원됐고 함께 투쟁했던 동지들은 하나 둘 복직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본인만 복직이 거부돼 해고노동자로 살아가는 정덕봉 동지가 청춘을 바쳐 30여년간 몸담았던 KB국민은행, 금융노조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사무실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오늘도 여의도 한국노총 건물의 해복투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KB국민은행의 본점을 바라보는 정덕봉 해고노동자의 두 눈에선 진한 그리움과 눈물만 새 나오고 있습니다. 너무나 슬픕니다. 너무나 미안합니다.

저는 밤잠을 설치는 새벽에 깨어 나면 재판을 받았던 당시를 회상합니다.

“당시 모든 책임은 위원장이었던 나에게 있었습니다. 정덕봉·문병일 두 명의 부위원장은 제 지시에 의한 정당한 항의방문이었으며 불가피한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사용자측의 처벌 불원서 및 탄원서가 제출됐으며 5만여 조합원의 탄원서 또한 제출됐습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으니 모든 벌 또한 제가 받겠습니다.”

해고는 살인입니다. 한 노동자는 물론 그 가족도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참담한 현실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노동현장에서 결단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행위입니다. 저와 문병일 전 금융노조 부위원장의 복직은 우리의 투쟁이 정당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노동자들의 연대를 통한 투쟁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를 넘어 대한민국의 수많은 정덕봉의 복직을 위해 투쟁하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인상 깊게 읽었던 독일 시인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첫 구절입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