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으로 내세운 연금 개편이 표류하고 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인상 같은 핵심 논의는 좌초한 채 민간보험 확대를 위한 정지작업을 정부가 대행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5월 기금운용계획·중기자산배분 논의
가입자 대표는 빠지고 검찰 출신 포함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 결과 보건복지부는 다음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정례회의를 민주노총 추천 몫의 가입자 대표 위원 없이 치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일방적으로 해촉한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후임 인선 없이 기금운용계획을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윤 수석부위원장은 검찰 출신 한석훈 변호사를 기금운용위 상근전문위원으로 임명한 정부 결정에 항의하다 ‘품위손상’을 이유로 21일 해촉됐다. 현재 기금운용위 정원은 20명이다. 이 가운데 노동계 몫은 3명이다. 해촉된 윤 수석부위원장을 제외하고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과 허권 한국노총 전 상임부위원장이다.

기금운용위는 2월과 5월·6월·12월 정례적으로 회의를 연다. 이 밖에 각 달에 열리는 회의는 비정기 회의다. 아직 이번달에는 회의 일정이 없다. 5월 정례회의에서는 중기자산배분안과 기금운용계획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 한 변호사가 자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작 가입자 대표는 한 자리 줄어드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이런 행보가 입맛에 맞는 국민연금 운용계획 수립을 노린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국민연금의 수지를 비롯해 보험료 조정과 기금운용계획 등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 5년간의 재정추계를 점검하고, 재정계산을 통해 향후 운용 방안의 기초를 삼는다. 지난달 31일 재정추계 결과가 국회에 보고됐고, 재정계산은 실시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10월31일까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해당사자 없는 민간자문위 결과도 ‘맹탕’

당초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개편 방법으로 국회 차원의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논의를 띄웠다. 지난해 8월부터 논의에 착수했다. 연금개혁특위는 자체적인 논의보다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를 통해 논의를 진행했다. 고용노동부의 미래노동시장연구회처럼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외곽조직을 꾸리고 정부가 원하는 그림을 그리려 했던 셈이다. 그러나 가입자 대표를 쏙 뺀 채 이른바 전문가 위주의 구성으로도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하고 논쟁만 거듭하다 종료했다는 평가다.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연금개혁특위 구성 당시부터 사회적 합의 절차를 누락하고 구성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비판해 왔다”며 “전문가끼리 공중전만 하다가 내용 없이 종료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차원의 개편이 불가능해지자 다음으로 눈여겨보는 게 기금운용위인 셈이다. 기금운용위는 국민연금공단 외곽에서 복지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는다. 노조를 비롯한 가입자 대표를 포함하고 있지만 윤 수석부위원장 해촉과 검찰 출신 인사 기용 등으로 중립성이 훼손됐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이를 토대로 정부가 원하는 개편 방안을 포함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정부의 이런 행보가 결국 민간보험시장의 확대로 귀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 협동사무처장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나 보험료율 같은 논란을 지속해서 강조하면서 문제가 있는 제도인 양 호도하고 민간보험시장에 영역을 내주려는 일련의 시도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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