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여론의 반발이 거세다. 고용노동부는 국민이 개편안을 오해하고 있다며 ‘주 69시간’이 아니라 ‘주 평균 52시간’이라며 해명을 하고 <거짓 없는 가상 근무표>까지 만들어 페이스북에 홍보해도 전혀 효과가 없는 듯하다. 일주일에 69시간을 일하면 뒤이은 휴식에도 건강한 일상을 누리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평균의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평균의 함정은 평균값이 실체를 대변하지 못하는데 평균을 사용해 설명함으로써 생기는 오류를 말한다. 노동부 홍보가 안 먹힌 건 물론 극심한 과로 후에 ‘묻지마 칼퇴’나 ‘나만의 휴가’에 대해 노동자 대다수가 회의적이라는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간 데이터를 볼 때도 ‘평균’ 노동시간으로 모든 실체를 파악해서는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2021년 기준으로 5번째로 길다. 그래도 10년 전에 비하면 10.3%(연간 221시간) 줄었다. 노동시간이 감소추세를 보이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이 노동시간 평균값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소값이다. 우리나라에서 표준 노동시간인 40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 일하는 노동자도 많지만 훨씬 더 적게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특히 ‘초단시간 노동자’라 불리는 소정 근로시간이 주 15시간 미만인 노동자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은 주휴일과 연차휴가제도, 퇴직금 제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국민연금 등 노동자라면 적용받는 보호정책에서 제외된다. 그야말로 노동기본권 사각지대다.

너무 오래 일하는 것만큼 너무 짧게 일하는 것도 건강에 해롭다. 장시간 노동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만큼 단시간 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우리나라 노동자 대상 연구에서는 우울증상과 심혈관계질환 위험요인이 표준 노동시간 그룹에 비해 장시간 노동군과 단시간 노동군에서 높게 나타나 ‘U’자형 그래프를 그린다. 물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이 짧은 노동시간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지만 초단시간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단시간 노동자의 규모는 2013년 83만6천명에서 2021년 151만2천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단시간 노동을 장려한 과거 정부들의 취지는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 일·가정 양립을 위해 여성의 취업 기회를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주휴수당과 사회보험 적용 제외로 인한 비용절감의 한 방편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 2022년 알바연대가 수행한 ‘알바노동자 실태조사’에서 초단시간 노동자 비율이 34%에 달했다. 파트타임 일자리 중개 플랫폼에 일주일간 올라온 서울 5개구 편의점의 구인공고를 분석한 결과 61%가 주 15시간 미만 일자리였다고 보고되기도 했다.

초단시간 노동에 대한 시각은 윤석열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할 수 있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역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연구회가 주휴수당을 포함한 임금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발표하면서 주휴수당에 대해 “근로시간 및 임금 산정을 복잡하게 하고, 15시간 미만의 쪼개기 계약을 유인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지적했다. 이 권고안에 대해 많은 언론에서 ‘주휴수당 폐지’를 제시했다고 해석하였으나 노동부는 어디까지나 ‘개선이 필요하다는 권고였다’고 해명했다.

그렇다. 단순한 ‘주휴수당 폐지’가 아니라 쪼개기 계약과 같은 탈법이 없어지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노동시간보다 짧게 일한다고 노동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합법적으로 ‘구조적 차별’을 받는 것이다. 게다가 스스로 원해서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자리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초단시간 노동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초단시간 노동자는 157만7천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5.6%를 차지한다.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더욱이 초단시간 노동자는 여성·노인·청년 비중이 높아 오히려 보호가 더욱 필요한 집단이다. ‘2020 지역별고용조사’에서 초단시간 임금근로자의 3개월 평균급여는 월 52만원에 불과했는데 임금만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소득이다.

우선 명백한 차별부터 철폐하자. 초단시간 노동자도 유급휴일(주휴수당)과 퇴직금 같은 보상은 표준노동시간인 40시간을 기준으로 일한 시간에 비례해 적용하면 된다. 사회보험은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목적에 맞도록 초단시간 노동자도 차별 없이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최소노동시간제를 도입하자.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파트타임 노동자의 경우 특별한 예외를 제외하고 주당 24시간 이상 일하도록 규제한다. 울산 동구에서는 올해부터 ‘최소 생활노동시간 보장제’를 도입해 동구청 및 산하기관, 민간위탁 시설에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에게 주 15시간 이상 근무시간을 보장하기로 했다. 이들은 주휴수당·연차수당·실업급여 등의 혜택에서도 제외되지 않는다. 초단시간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초단시간 노동자를 양산하고 불평등이 심화시켰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릴 때이다.

이혜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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