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고용노동부는 지난 7일 위험성평가 고시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의견을 받고 있다. 이번 칼럼은 많은 부분 변경돼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위험성평가 고시에 관한 의견서로 대신하고자 한다.

노동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고시 개정의 핵심이 “쉽고 간편하게 그리고 참여 강조”라고 설명했다.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취지다. 솔직히 중소규모 사업장이라고 해서 위험성을 계량적으로 산출하기 어렵다는 것은 별로 와닿지 않는 이야기다. 하지만 사업장의 규모를 떠나서 노동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사용 가능한 위험성평가 방법을 만들고 발전시키는 것은 노동안전보건운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훌륭한 선생님은 어려운 것을 쉽게 가르치는 사람이지 어려운 것을 포기시키는 사람이 아니다. 다시 말해 위험성평가 기법의 직관성과 편의성은 높이되, 위험성을 파악하고 평가하는 대상을 너무 축소해서는 안 된다. 지금도 많은 사업장에서는 위험성평가는 실시하지만 정작 비용과 인력이 필요한 중요한 위험성들은 ‘파악’의 단계에서 무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고시개정안은 그나마 의무사항이었던 사전준비 단계에서의 검토항목들을 권고사항으로 변경해 버렸다.

개정안 9조(사전준비)3항에 포함된 작업표준 및 절차, 물질안전보건자료, 재해사례 및 통계, 작업환경측정결과, 건강진단결과 등은 위험성평가에서 당연히 검토해야 할 사항들이다. 특히 4목에 명시된 ‘도급을 줘 행하는 작업이 있는 경우 혼재 작업의 위험성 및 작업상황 등에 관한 정보’는 반드시 검토해야만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곧 3주기가 다가오는 한익스프레스 화재참사의 원인이 혼재작업이었다는 것을 벌써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위험성 추정의 단계를 생략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방법론적으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위험성의 크기를 가능성과 중대성으로 계량화하는 과정은 생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위험성을 계량하는 과정은 단순히 크기를 비교하는 역할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위험성평가는 이 계량 과정을 통해서 노동자들이 자신이 노출된 위험을 정확하고 폭넓게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대표적인 것이 유해화학물질에 관한 정보다. 일상적으로 발암물질을 비롯한 고독성 물질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위험성평가였다.

노동부의 고시개정안이 그 나름의 취지에도 위험성평가의 의미와 역할을 축소하는 결과로 드러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부 스스로 말하듯 이번 고시개정을 ‘중대재해 감축로드맵’의 연장선에서만 고민했기 때문이다. 로드맵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고 그 수단으로 위험성평가를 전면에 내세웠다. 위험성평가가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핵심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자. 로드맵은 중대재해 감축, 그중에서도 사망사고 감축에만 집중된 일련의 계획이다. 반면에 위험성평가, 나아가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의미와 가치는 거기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같은 이유로 위험성평가가 산재 사망사고만을 막는 도구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언론의 주목과 질타를 받는 산재사망사고를 줄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은 이해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죽음과 그것을 예방하기 위한 고민은 더 넓은 시야를 잃지 말아야 한다. 2021년 산재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828명이지만 산재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1천252명이다.

같은 맥락에서 위험성평가를 정기적 현장순회점검 수준으로 격하하려는 시도 역시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고시개정안은 월 1회의 순회점검, 주 1회의 관계자회의, 매일 진행하는 TBM(Tool Box Meeting : 작업 전 원형으로 모여 관리자 또는 담당 반장이 그날 작업에 대한 설명을 하는 시간)을 ‘상시적인 위험성평가’로 인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의 위험은 일차원적인 현장점검의 이면에 숨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작업계획서나 작업지휘자 없이 진행되는 위험작업,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안전작업 허가절차가 대표적인 ‘숨은 위험’들이다. 특히 정비나 수리작업에서 작동하지 않는 LOTO(Lock Out, Tag Out)관리 시스템 같은 비일상적인 문제들은 일상적인 순회점검으로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위험성평가는 당장 눈앞의 위험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경험을 통해서 잠재된 위험을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부는 이러한 개정이 건설업의 특성을 감안한 것이라 설명한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실태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라면 위험성평가를 주기적 순회점검 수준으로 갈음하는 조치가 던지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단번에 이해할 것이다. ‘지금처럼 해도 문제 삼지 않겠다.’ 진심으로 건설현장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기계적인 1개월, 1주일 단위의 점검활동이 아니라 건설공사의 각 단계별로 필요한 사항들이 검토되도록 해야 한다. 공사의 주요 단계마다 노사가 함께 작업을 위한 준비사항, 지반조사 등의 사전조사결과, 그 밖의 중점관리사항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 공사와 관련한 정확하고 폭넓은 정보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건설업에 특화한 위험성평가 방식으로 자리 잡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조금만 더 추가하면 작업중지권과 위험성평가를 연계해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작업을 중지한 경우 즉각적으로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하는 등의 특화된 조치들을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아쉬움은 ‘노동자 참여’에 대한 노동부의 얕은 이해 수준이다. 위험성평가에 필요한 노동자들의 참여는 관리자들이 준비한 서류에 확인 서명이나 하는 수동적인 참여가 아니다. 고시개정안이 위험성평가의 모든 단계에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명시하고 있다고는 하나, 실질적이고 주체적인 참여는 이러한 문구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위험성평가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에게 충분하고 정확한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 위험성평가에 참여하기 위한 충분한 교육 기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시간 보장, 전체 과정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실질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사람도 현장도 말 한마디, 규정 하나로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고민하고 또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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