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주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무리”라며 주당 근로시간 상한 필요성을 21일 또 제기했다. “(주) 60시간은 대통령 가이드라인이 아니다”며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지난 16일에 나온 대통령 발언을 바로잡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말을 하루 만에 또 뒤집은 것이다.

주 69시간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을 두고 대통령실 메시지의 혼선이 반복하면서 고용노동부도 곤욕이다. 이날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의원들에게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관련 집중 질타를 받았다. 현재 입법예고 중인 근로기준법 개정안 철회 여론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전날 해명 뒤집어
닷새 만에 두 번이나 번복

윤석열 대통령은 21일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저는 주당 60시간 이상의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하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물론 이에 대해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후퇴라는 의견도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주당 근로시간 상한을 정해 놓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이 노동 약자들의 건강권을 지키지 못한다고 자인한 셈이다.

지난 6일 입법예고 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근로시간을 월·분기·반기·연 단위 총량제로 관리하는 내용을 담았다. 단위 기간이 길수록 전체 근로시간 총량이 감소하지만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권만 보장하면 주 6일 근무 기준 69시간 노동이 가능해 과로사를 유발하는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날 윤 대통령의 발언은 16일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이 발표한 입장과 같다. 하지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주 60시간은 윤 대통령 가이드라인이 아니다. 그 이상도 가능하다”고 바로 잡았다.

닷새 만에 대통령 발언이 두 차례나 번복된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발언에는 국민에게 혼선을 준 것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지금까지의 논란을 뒤로 한 채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 유연화는 그 제도의 설계에 있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고 수집할 것”이라며 “국민을 위한 제도를 만드는 데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숙의하고 민의를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노동부 등 관련 부처에 세밀한 여론조사 FGI(심층면접조사)를 시행하고, 제게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지시해 놓았다”고 덧붙였다.

주 69시간 근무 3개월 전에 나왔는데
이제 와서 ‘노동자 건강’ 걱정

반복된 대통령실의 메시지 혼선을 소통부족 문제로만 보긴 어려워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질 때마다 행정부처와 거리를 두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해 왔다. 특히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제 개편은 윤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을 하며 공약한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6월23일 공식 브리핑을 열고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제 상한을 허무는 근로시간 개편 방침을 밝힌 다음날 아침 윤석열 대통령은 “보고 받은 것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주 52시간 상한제를 허물어 비판이 인다는 기자의 질문에서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다”고 장관의 공식 발표를 부정한 것이다.

주 최장 69시간 노동 논란은 최근 나온 것도 아니다. 지난해 12월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안으로 예견됐다. 당시 월 단위로 근로시간 총량을 확대할 경우 주당 90.5시간 근무도 가능하다는 ‘과로’ 논란이 한 차례 일었다. 이후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병행 계획을 밝혔고, 지난달에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내놨다.

몇 개월 동안 장시간 노동 논란이 반복돼 왔는데 윤 대통령은 정부의 정식 입법예고 약 2주가 지난 뒤인 이날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입장을 직접 발표한 것이다.

노동부 장관은 의미 없는 입장 되풀이

대통령실의 되풀이하는 입장 번복에 비난 화살은 노동부로 집중되고 있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가 입법예고한 이번 유연근로제 강화에 대해서는 철회를 이야기하라. 폐기가 마땅하다”고 목소리 높였다.

이정식 장관은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은 “(노동자) 선택권과 건강권, 휴식권 조화로 실노동시간을 줄인다”면서도 “부작용이나 우려되는 부분들은 보완할 예정”이라고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큰 틀에서 근로시간 총량 관리제 방향이 맞다는 뜻이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을 꺼냈다가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백지화하고, 불명예 사퇴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배경이다.

강예슬ㆍ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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