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노나메기재단

가장 어려울 때 손 내밀어 준 사람, 권력자들에게 앞장서 호통을 쳐 준 사람, 모든 것이 퇴행하는 지금 너무도 그리운 사람. 고 백기완 선생 2주기를 맞아 발간한 추모산문집 <기죽지 마라 우리가 백기완이다!>(돌베개·1만9천원·사진)에 참여한 필자들이 기억하는 선생의 모습이다.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이 지난 8일 저녁 서울 종로구 백기완 기념관(옛 통일문제연구소)에서 고 백기완 선생 2주기 추모산문집 출간을 맞아 필자들이 참여하는 이야기마당을 진행했다. 추모산문집에는 노동자·시민 등 각계각층 38명이 필자로 참여했다.

재단은 “윤석열 정권의 전면적 노동탄압이 진행되는 엄중한 시기에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참석해 대안과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어려울 때 손 내밀어준 사람, 백기완”

이날 이야기마당은 1부 ‘거꾸로 가는 시절, 그리운 백기완의 불호령’과 2부 ‘노나메기 벗나래를 향해-우리가 백기완이다’를 주제로 각각 진행했다.

1부에 참석한 박성호 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장은 “박창수 위원장 장례투쟁 때 (백 선생을) 만났다”며 “그때 백 선생님이 현장에 와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인연을 맺어 왔다”고 소개했다. 1991년 당시 박창수 한진중공업노조 위원장은 대우조선노조 시위에 참여했다가 구속돼 수감 도중 의문의 상처를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의문사했다. 아직도 사인을 밝히지 못했다.

박 전 지회장은 “7·8·9 노동자 대투쟁 때에야 눈을 뜨게 됐다”며 “박창수 위원장이 죽음으로 나타났을 때 이런 세상이 다 있나, 그때부터 내 삶이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김승하 전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막상 제가 비정규직이 되고 해고를 당하고 보니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백 선생님이 당시 이철 철도공사 사장을 만나 ‘빠른기차(KTX) 승무원들 어떻게 할 간?’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는데 우리에게는 (힘이 되는) 되게 큰일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언제나 빠른기차 승무원이라면서 우리를 아련하게 쳐다보는 선생님의 그 눈빛이 있다”며 “백 선생님이 여기 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사라 비정규직없는세상 문화기획자는 “투쟁과 농성을 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을 알리기 위해 희망버스를 기획했을 때 가장 먼저 손 내밀어 준 사람이 백기완 선생님이었다”며 “선생님은 비정규 노동자를 비롯해 투쟁하는 이들 곁에 항상 계셨다”고 전했다.

▲ 돌베개
▲ 돌베개

“윤석열 정권 1년 노동자 삶 피폐, 투쟁 앞장설 것”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사고 당시 태안에 있을 때 백 선생님과 몇몇 원로들이 부축을 받으며 오셔서는 용균이 빈소에서 절을 하더라”고 회고했다. 그는 “용균이가 살아 있다면 저분들에게 절해야 하는데 오히려 몸도 성치 않고 연로하신 분들이 용균이에게 절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직감하게 됐다”며 눈물을 보였다. 이어 “그 뒤 6차 시민문화제까지 했는데 그 추운 날 대부분 참석해서 제 옆에 앉아계셨다”며 “옆에서 항상 힘을 주신 분이었는데 지금 안 계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2부에서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참석해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 당시 자본은 ‘불의한 권력과 해고에 저항하는 것이 승자가 아니라 투항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라고 선전선동을 했다”고 회고했다. 그때 백 선생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오솔길에서 승냥이를 만나면 오줌을 지리더라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없으면 승냥이는 너에게 달려들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고 전하면서 한 전 위원장은 “힘들 때마다 견딜 수 있는 용기를 줬다”고 말했다.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공동소집권자는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지 1년도 안 됐는데 온 나라는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삶 자체가 많이 힘들어졌다”며 “이 정부를 5년간 가만 둘 수는 없는데 (시대와 역사가) 그 분노의 싸움을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나메기 세상을 위해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열심히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