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는 정부가 재정회계 문제로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사례의 하나로 영국을 거론한다. 영국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통합)법(1992)에 따르면 노조 재정과 관련된 조항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의 노동부는 영국 정부가 노조 재정에 대해서만 관여하는 것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진실의 절반을 가린 의도적 왜곡이다.

노동부가 소개한 영국의 인준관(Certification Officer)은 사용자단체 문제도 조사할 권한을 가지며, 정부의 간섭에서 상대적으로 독립된 기관인 인준청(Certification Office)을 책임진다.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의 회원들이 제기하는 회계부정과 규약위반 문제들을 처리하는 기관인 인준청(Certificartion Office)에는 모두 7명(인준관 1명, 직원 6명)이 근무한다. 재미난 사실은 영국의 인준관은 우리나라의 노동부에 해당하는 ‘일과 연금부’(Department of Work and Pension)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산업통상자원부와 유사한 부처인 ‘사업·에너지·산업전략부’ 장관이 임명한다는 점이다.

인준청이 하는 일은 △사용자단체와 노조 명부 관리 △사용자단체와 노조의 연간 매출액에 대한 공적 검열(public inspection) 및 법률 요건 준수와 관련된 불만 접수, 그 이행 여부의 확인 △노조 선거 및 노조 규약 위반 관련 불만 접수 및 결정 △사용자단체와 노조의 조직 합병 관련 법률 요건 준수 여부 확인 △사용자단체와 노조의 정치기금 감독 △노조의 자주성 여부 인증이다.

지난해 7월에 발행돼 의회에 제출된 ‘2020-2021 노동조합 및 사용자단체를 위한 인준관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인준청의 책임자인 인준관을 맡고 있는 사라 베드웰(Sarah Bedwell)의 2021년 연봉은 세금 후 13만3천18파운드(2억1천565만원)였다. 인준관을 임명한 사용자, 즉 정부가 인준관인 사라 베드웰을 위해 연금기여분으로 지급한 세금은 4만250파운드(6천288만원)였다. 그리고 인준청의 전체 경비는 73만8천568파운드(11억5천428만원)이었다.

사용자단체와 노조의 재정 투명성을 강요하기에 앞서 인준관과 인준청 스스로 연차보고서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들의 수입과 재정 상태를 밝히고 있는 점과, 인준청이 연차보고서를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에 제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한민국 정부의 경우 정부 임명직 고위 관료의 연봉은 물론 판공비 내역에 대해서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숨기는 실정이다. 검찰총장 판공비 공개가 대표적이다.

국회의 승인 없이, 또한 별다른 국내법적 근거도 없이, 더군다나 최근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협약 87호를 위반하면서까지 노조활동에 개입하는 대한민국의 사정과 비교할 때 영국의 인준관과 인준청 사례는 그 실태와 맥락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재미난 점은 노조에서 제공받은 정보를 통해 우리나라로 치면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에 담을 자료도 인준청에서 연차보고서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2014년~2015 회계연도에 701만명이던 조합원수는 2020~2021 회계연도에 667만명으로 5% 감소했다(그림 참조).

대한민국의 경우 조합원수 등 노조 조직현황을 별도로 국민세금을 쓰면서 외주화를 통해 조사하고 있다. 의회의 통제를 받는 정부기관인 인준청이 노조 조직현황을 파악하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노동조합 조직현황은 외부 용역을 통해서가 아니라 후생노동성 산하 관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을 통해 취합된 정보로 후생노동성이 자체적으로 만든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세금 한 푼”까지 헛되게 쓰지 않겠다고 한 말이 식언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나라에서는 공무원들이 직접 하는 일인데 대한민국에서는 공무원들이 외부단체에 용역을 주며 국민세금을 낭비하는 ‘한국적 관행’부터 개혁해야 할 것이다.

영국 인준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3월31일 현재 사용자단체는 84개, 노동조합은 141개였다. 2019~2020 회계연도의 경우 사용자단체들의 수입은 5억7천245만파운드(8천938억원), 노조들의 수입은 13억3천917만파운드(2조910억원)였다.

▲ 영국 인준청 연례 보고서(2021-22)
▲ 영국 인준청 연례 보고서(2021-22)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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