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소속 콜센터 노동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콜센터 사업장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대전에서 하나은행 콜센터 직원으로 일하는 현진아씨는 요즘 대출상담이 부쩍 부담스러워졌다. 원청인 은행은 높은 대출이자로 ‘역대급 실적’을 연일 기록하고 있다지만 이자를 부담하는 고객들의 원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하나은행은 은행 중 당기순이익 1위를 기록하며 3조원이라는 순이익을 냈다고 광고했지만, 현씨는 소속 용역업체가 낮은 평가를 받아 그동안 받았던 설 상여금을 받지 못했다. 현씨는 “우리가 근무하는 용역업체 KS한국고용정보는 보안을 이유로 휴대전화에 스티커 부착을 강요해 왔고 휴대전화를 잠시만 확인해도 관리자들이 사유서 작성을 지시해 왔다”며 “오전과 오후 화장실에 한 번씩만 다녀오며 일하고 ‘나는 콜센터 상담원’이라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일을 언제까지 견뎌야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대표적인 여성 집중 직종으로 알려진 콜센터 상담노동자들이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콜센터 노동의 현실을 고발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으로 알려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5년 가까이 지났지만 화장실 시간까지 통제받는 비인간적인 작업장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공공운수노조는 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한 사업장을 위해 콜센터 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최근 콜센터 해지 방어부서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 홍수연양의 자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다음 소희>가 개봉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콜센터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지금 소희’로 호명하며 콜센터 노동의 현실을 말했다.

최초아 노조 대전일반지부 KB국민은행콜센터메타엠지회장은 “국민은행 콜센터 도급사인 메타엠은 1등부터 꼴찌까지의 실적을 매달 평가해 월 인센티브를 지급하는데 올해는 그 금액의 차가 무려 65만원”이라며 “단 한 명의 노동자는 65만원을 받지만 대다수는 0원 혹은 5만원을 받다 보니 상담원에게 무한 경쟁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최 지회장은 “최근엔 한 고객에게 대출만기안내 전화를 건 상담사가 상스러운 욕을 듣기도 했다”며 “해당 상담사는 무급으로 조퇴를 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시행돼도 현장에서는 나아지는 것이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는 상담사의 감정을 통제해 이익을 얻는 원청에게 사용자 책임을 부과해 상담사 보호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돼 노동자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며 “콜센터 상담사의 상담을 통해 이익을 보는 자들이 사용자임을 사회적·법적으로 명확히 해 산업안전보건체계와 산업재해보상체계를 구축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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