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이 소득분배와 노동시장 정책과 같은 경제정책의 하나로 치부·결정되면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생활임금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저임금 등 사회적 임금을 논의할 때 가구생활을 위한 필요 경비라는 임금의 본질을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1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이슈보고서 ‘생계비에 대한 국제 논의 동향과 시사점’에 따르면 우리의 최저임금은 생계비보다는 경제적 요소를 주로 고려해 결정되고 있다. 거시경제지표나 경기 현황 등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주된 요소라는 얘기다. 실제 최저임금위원회는 2022년과 2023년에 적용하는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물가승상률 전망치를 더하고, 취업자 증가율 전망치를 빼는 산식을 적용해 최저임금을 결정했다.

최저임금법이 정하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인 ‘근로자의 생활안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근로자 생계비와 유사근로자 임금·노동생산성·소득분배율을 고려해 정하라는 최저임금법상 결정기준도 산식에서 찾아볼 수 없다.

연구소가 최저임금위가 조사한 해외 39개국의 최저임금 결정 기준 실태를 재분석했더니 20개 국가(51.3%)가 생계비를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활용하고 있다. 유럽보다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국가가 다수다. 19개국은 생계비는 고려하지 않고 경제적 요소에 치중해 결정하고 있다. 연구소는 “복지수준과 노조 조직률이 비교적 높은 서구 유럽국가들이 경제적 요소에 치중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최저임금제가 저임금 노동자 보호나 소득분배 차원에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단협으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활비용을 충족할 적정 임금을 산별 수준에서 제도화하고 있고 현금·현물성 사회적 임금도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면 사회임금을 논의할 때 생계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시대에 뒤처지는 것일까. 국제노동기구(ILO)는 최근 필요기반 임금(needs-base wage) 산출을 위한 연구를 하면서 이 문제를 살펴봤다. ILO는 최저임금 결정의 핵심 요소로 ‘노동자와 그 가족의 적절한 필요비용’과 ‘경제적 요소’ 두 영역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세계 각국의 최저임금 논의가 경제적 목표 달성에 기울어져 있어서 균형적인 상태가 아니라고 봤다. 가구생계비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각 지방정부는 생활임금을 도입하며 최저임금의 부족함을 메우는 시도를 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윤정향 선임연구위원은 “지불능력·보장수준 등 최저임금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생활임금에서 재현되고 있고, 이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필요를 충족하는 임금 설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며 “생계비는 낡은 임금결정 기준이 아니라 놓치지 말아야 할 미래의 기준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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