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산재보험제도가 노동자에게 불리하고 은폐 가능성도 커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주치의가 내방환자의 직업력 의무조사를 실시하고 산재를 인지하면 산재신청을 개시하도록 하는 선보장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 법률원 부설 노동자권리연구소는 27일 ‘재해노동자 관점에서 살펴본 산재보험 문제점과 선보장 제도 도입 필요성’ 이슈브리프를 발간하고 이같이 밝혔다.

제도 모르거나 의지 부족으로 산재 은폐돼

당사자 신청을 전제로 하는 제도 뼈대상 산재은폐 우려가 상존한다는 지적이다. 노동자가 회사를 다니지 못할 정도로 큰 병이 걸려도 불이익이 우려돼 산재신청을 하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21년 한 연구에 따르면 산재 은폐율이 66.6%에 달했다.

뿐만 아니다. 산재보상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산재신청 의지가 없으면 신청이 어려웠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종란 노동자권리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세정제 등 화학물질을 제조하는 하청업체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재해자가 산재신청을 꺼렸다”며 “업체 사장이 잘해 주고 병원비를 조금 보태준 것에 고마운 마음을 품고 끝내 산재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당사자 신청을 전제로 한 산재보험 한계를 지적했다. 지난해 김영미 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연구원은 논문에서 “신청주의에 기초하고 있어 재해노동자 보호에 한계가 있다”며 “산재신청을 하지 않은 재해근로자에 대한 보호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 직권주의적 요소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산제보상제도는 노동자에게 불리한 구조라는 설명이다. 이 상임연구위원은 “직업병을 입증하기 쉽지 않으니 법률대리인을 선임해 시험을 통과하듯 심의, 판정을 거쳐 산재를 인정받는다”며 “이렇게 입증 능력을 통해 산재인정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약자를 더욱 배제한다”고 비판했다. 이주노동자나 비정규직 같은 취약계층 노동자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얘기다.

특히 입증책임을 노동자에 두고 있는 문제가 크다. 대법원은 산재보상제도에서 업무와 재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 증명책임을 원칙적으로 노동자에 두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보험재정 건전성 유지를 위해 산재 입증책임을 노동자에 두는 게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이후 대법원 판결이 다소 완화하는 경향은 있으나 여전히 노동자에게 입증책임을 지우는 원칙은 변화가 없다.

건강보험 선보장제, 제도 허점 해소 못해

이 밖에도 산재처리가 하세월인 점도 문제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업무상 사고는 평균 15~18일인데 반해 업무상 질병(직업병)은 2021년 기준 평균 113~334.5일”이라며 “신속한 처리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1조 목적사항에서 정의할 만큼 기본적이고 중요한 원칙임에도 실제 소요 시간은 신속성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대안은 산재보험 우선적용 제도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노동계는 산재보험 선보장 후승인 제도 도입을 요구해 왔다. 산재 승인 전 우선 치료하고 이후 보장하는 방식이다. 2006년부터 건강보험을 통해 먼저 치료하고, 승인 뒤 산재보험으로 소급하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여전히 처리지연과 노동자 입증책임, 신청주의에 따른 산재은폐 같은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최근에는 노동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해 주치의가 업무상 재해를 인식하면 자동으로 산재보험급여 제도가 개시하도록 하는 방식도 제안됐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다만 이런 때도 업무상 질병을 주치의가 신속히 인식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환자에 대한 직업력 의무조사를 실시하고 필요하면 직업환경의학과와 협진을 실시하면 선보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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