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

1. 지난 2월17일 대구지방법원 제4형사부(부장판사 이영화)는 아사히글라스(에이지씨화인테크노한국 주식회사, 이하 ‘아사히글라스’)와 주식회사 지티에스(이하 ‘GTS’) 및 GTS 소속 노동자 사이의 법률관계가 근로자파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아사히글라스와 GTS 등에게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이들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참으로 황당하고 충격적인 판결이다.

2. 해당 판결의 법리적 문제부터 짚어 보자.

첫째, 이번 판결은 생산지시서, 정기적인 작업의뢰서 등을 통한 업무지시, 현장대리인을 통한 작업지시 등을 모두 근로자파견의 징표로 보지 않았다. 이는 확립된 판례 법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판단이다.

둘째, 이번 판결은 아사히글라스의 지휘·명령이라는 근로자파견의 징표를 대부분 도급인의 지시권과 검수권 행사로 평가했다.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며 상당한 지휘·명령 관계를 도급인의 지시권과 검수권으로 파악하는 것은 기존 판례 법리에 반한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되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위장도급에 면죄부를 주게 돼 파견법이 형해화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셋째, 이번 판결은 일련의 대법원 판례 경향과 괘를 달리하는 극히 이례적인 판결인 ‘케이티앤지 사건’ 판결(더욱이 이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이 아닌 지원설비 운영업무에 관한 판결임)을 특정해 명시하면서 이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이는 정해진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억지스런 법리 전개이자 결과적으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심각한 법리오해로 귀결되고 말았다.

넷째, 일련의 대법원 판례 경향을 종합하면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 사내하청은 사실상 ‘불법파견’으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이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이례적인 판결이다. 이번 판결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 만연한 사내도급 형태의 위장도급을 사실상 인정하는, 파견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입장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파견법 제정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존재했던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의 사내하청이 파견법 제정으로 갑자기 금지돼서는 안 된다는 개인의 신념을 구현한 판결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낳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 해당 판결문에는 이와 관련된 매우 이례적인 판시가 보이기도 한다.

다섯째, 이번 판결은 근로자파견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업무별 근로자수에 따른 비중’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금까지 전혀 제시되지 않았던 매우 자의적인 판단기준까지 제시했다. 또한 이번 판결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특성을 오히려 근로자파견을 부정하는 요소로 평가하였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형식적 계약과 정규직 관리자의 증언 등 사측에 편향된 신빙성 없는 진술에 주로 의존해 판단하는 심각한 문제도 드러냈다.

3. 아사히글라스의 불법파견과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물론 법원도 ‘고용의 의사표시 소송’ 1심·2심, 직접고용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형사재판 1심 판결에서 모두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그 과정에서 수십 명에 대한 증인신문, 수천 장에 이르는 방대한 객관적 증거, 3번에 걸친 현장검증 등 충분한 증거조사와 변론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번 형사 항소심 재판은 수 차례 재판이 공전되다가 2명의 증인신문 이외에 특별한 증거신청 등도 없었다. 약 6개월 동안 이 정도의 공판만이 진행된 후 갑자기 법원이 일관되게 인정한 불법파견을 부정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판결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도 갖기 어렵게 하는 대목이다.

4. 지난 2020년 2월4일 CJB청주방송에서 14년 이상 소위 ‘무늬만 프리랜서’로 근무한 이재학 피디는 노동자성을 증명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터무니없는 1심 패소 판결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판결은 법리오해와 사실오인을 넘어서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해당 판결은 항소심에서 바로 잡혀 결국 파기됐고, 이재학 피디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았으나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이처럼 법원의 판결은 때론 한 사람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무겁다. 그래서 판결은 진실을 확인하고 법리에 충실한 것은 물론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에 둬야 한다. 이번 형사판결에서 진실과 법리, 인간에 대한 애정 그 어느 것 하나 담아내 려 노력한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노동자들의 외침처럼 판결의 기본도 발견하기 어려운, 참을 수 없는 가벼움만이 확인될 뿐이다.

2015년 7월 하청업체인 GTS에 대한 아사히글라스의 계약해지와 이에 따른 집단해고 이후 비정규 노동자들은 9년째 거리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절박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이제 대법원이 그들의 목소리에 정당하게 응답해야 한다. 이번 형사판결은 대법원에서 바로잡힐 것으로 믿는다.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더 이상 비정규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절망하지 않고 생산의 현장으로 하루 속히 복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