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양수 민주노총 부위원장

민주노총은 올해 4월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결정하기로 했다. 지난 7일 개최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하반기에 결정하자는 수정안이 제출됐지만 총연맹과 지역본부, 금속·보건을 비롯한 상당수 산별노조의 선거가 진행되는 하반기에는 사실상 논의가 불가능하고 조합원의 힘을 모아 총선에 대응하기 위한 기간이 필요한 상황을 고려해 원안을 확정했다.

민주노총의 정치사업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지난 10여년간 실종됐고 선거시기 진보정당 후보들의 단일화를 중심으로 투표 방침을 결정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진보진영의 분열을 극복하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선거방침은 조합원들에게 어떠한 전망과 희망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진보정치에 대한 허무주의와 패배의식이 확산됐고 일부 상층 인사들은 보수정당에 투항했으며 조합원은 진보정당을 지지하자는 민주노총의 방침을 따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중차대하고 민감한 사업을 왜 이렇게 서둘러서 추진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하지만, 민주노총은 이미 지난 10년간 같은 평가를 되풀이해 왔다. 지난해 전 지역본부를 순회하면서 진행한 대통령선거·지방선거 평가와 정치방침 토론문을 확정하는 과정에서도 몇 가지 교훈을 다시 확인했다. 이제는 같은 상황, 같은 문제를 계속 반복할 것인지 아니면 민주노총이 결단해서 다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시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진보정당의 위기일 뿐만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의 근본적 토대가 흔들리는 심각한 상황에서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노동 중심성이 확고히 보장돼야 한다. 첫째, 민주노총이 대리정치·위탁정치를 청산하고 진보정당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정립해 조합원을 노동자 정치의 주인으로 세워 직접정치 광장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둘째,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가 참여하고 지지하는 정당을 건설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상층 중심의 협상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주체로 서는 현장 정치운동이 수반돼야 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제대로 실현하려면 단결의 원칙을 확고히 실현해야 한다. 첫째, 민주노총의 선거방침 논의는 조직 내 단결이 전제돼야 어떤 결정을 하든 전 조직적 힘을 추동할 수 있고 120만 조합원의 힘을 결집해 위력적인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둘째, 일회용 선거 대응이 아니라 노동자 집권과 사회변혁 실현을 목표로 민주노총이 진보정당을 포함해 제 진보세력의 결집된 힘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는 “노동 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을 건설해 총선투쟁에 승리하고 그 힘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강력하게 추진하자는 안을 제출했다. 이 당에 진보정당의 지역구와 비례후보를 포함해 출마자들이 모두 가입하고 민주노총은 총선 승리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지도부 결합, 대대적인 입당 운동 등 책임 있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노동중심의 진보대연합 정당”은 진보진영의 다양한 정치지형을 고려해 연합형태로 건설하고 이를 위한 당의 운영 원칙과 체계에 대한 합의 등 구체적 사항은 단결의 원칙에 기초해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다만 진보정당들이 짧은 시간에 지난 10년간의 세월을 일거에 뛰어넘어 모든 것을 완결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도 고려해 당 해산 여부 등 최종 결정은 총선 후에 하자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이 당에 합류하지 못하는 정당에 대해서는 복귀를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논의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방법론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의 과정에서 생긴 불신과 패배의식이다. 신뢰를 회복하고 확인하는 것은 몇 마디 말이 아니라 실천적 과정을 통해 서로를 검증해야 한다. 신뢰를 확인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하며 그것을 검증하고 전략적 방향까지 함께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것도 총선 과정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총선은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은 7월 민생 살리기 윤석열 정권 심판 총파업을 포함해 올해 투쟁계획을 확정했다. 총선방침이 확정된다면 투쟁 속에서 당을 건설하고 당 건설을 통해 투쟁의 전망을 세우는 과정이 될 것이다.

안 되는 이유를 찾자면 만 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90%의 확대간부 동의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조합원들의 아우성을 회피할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보수정당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총선에 임하고 있다. 120만 조합원의 힘으로 모든 노동자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민주노총이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로 나서야 한다. 총파업 투쟁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통해 이 지긋지긋한 불평등 세상을 끝내고 새 세상을 열어 갈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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