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춘수 국민건강보험노조 수석부위원장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법은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출산·사망·건강증진에 대해 보험급여를 실시해 국민보건을 향상하고 사회보장 증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같은 법 108조와 국민건강증진법에는 이를 위한 재원으로 국고에서 건강보험 재정의 20%에 상당하는 금액을 지원하도록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질병이나 부상으로 인한 고액 진료비로 가계에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민이 평소에 보험료를 내고 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를 관리·운영해 필요시 보험급여를 제공함으로써 국민 상호 간 위험을 분담하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보장 제도다.

이처럼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국회는 제도적·사회적 책임이 있고,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재정과 관련해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주요국에서는 건강보험(의료보장) 재정에 국가별로 5.4~29.6% 수준에서 국고를 투입하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도 28.7%(2019년 기준)로 높은 수준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국고 부담률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그런데도 지난 5년(2017~2021년) 동안 역대 정부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20% 지원 규정을 지키지 않아 약 32조원의 정부 지원금이 과소지원됐다.

이는 법 기준치에도 이르지 못한 13~14% 수준에 불과하고, 법률상 ‘예산의 범위’ ‘보험료 예상 수입액’ ‘상당하는 금액’ 등 불명확한 규정으로 실제보다 보험료 수입을 과소 추계하거나 재정당국에 국가재정 여건을 이유로 지원 규모에 대한 재량권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 정부 지원법을 일몰제로 규정해 한시적으로 운영해 왔고, 많은 시민·사회단체 등의 개정 요구가 있었음에도 지난해 12월31일 추가연장이나 개정 없이 결국 종료되고 말았다, 기한을 넘겨 일몰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일뿐더러 법적 근거가 사라져 정부 지원이 중단되고, 이로 인해 국민이 낸 보험료만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운영하게 되면서 18%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는 국민 1인당 월 2만원 정도의 보험료 대폭 인상을 의미한다. 가스·전기·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이 무섭게 치솟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건강보험료까지 국민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다.

특히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건강보험 재정의 수입 감소 및 지출 증가 등 향후 재정 운영에 한계가 발생돼 항구적인 재정 지원이 당연히 고려돼야 한다. 그럼에도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정부와 국회에서 그 책무를 회피하고, 가입자인 국민이 낸 보험료만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운영하겠다는 뜻으로밖에 볼 수 없다.

2023년 들어와서도 국회는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케어’로 건강보험이 재정위기를 맞았다며 전 정부를 비판했다. 이를 토대로 “건강보험 정상화가 시급하다”며 건강보험 보장률을 낮추는 엉뚱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보장률이란 전체 진료비 중 본인이 부담하는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4%)을 크게 밑도는 64.5%(2021년 기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38개국 중 30위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도 건강보험 제도는 방역·치료·예방 등 의료체계를 굳건하게 유지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대내외에서 국민건강을 지키는 중추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평가받았음에도 새 정부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공공의료인 건강보험 보장성보다 의료 산업화·영리화 및 의료민영화 등 민간의료 중심 정책으로만 나아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국회는 건강보험 재정의 정부 지원을 항구적으로 법제화할 수 있도록 임시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하고, 정부는 보장성 축소가 아니라 정부 지원을 확대해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정부와 국회가 국민 건강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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