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상생임금위원회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주요 문제인 임금체계뿐 아니라, 노동시장 격차 해소 등 임금 관련 문제를 총괄해 다루는 사회적 논의기구다. 2일 발족했다. 발족 보름 전이었다. 고용노동부로부터 위원 참여를 제안받았다. 고민을 거듭했다. 주변 활동가 의견도 물었다. 날카로운 노·정 대치 국면, 참여 여부를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조언 범위는 최소화했다. 발족 24시간 전까지도 5 대 5로 팽팽했다. 그 상태에서는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그러다 발족을 12시간도 남겨 놓지 않은 한밤에야 결심했고, 담당자에게 통보했다. 그랬으면서도 홀가분하지 않았고, 깊은 한숨을 토했다.

그 뒤 상황은 예상대로였다. 노동계 안팎에서 욕하고 비아냥댄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올해도 욕받이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물론 욕만 따른 것은 아니다. 직접 또는 통화와 문자 등으로 지지한다는 응원도 그만큼 있다. 조직 방침에 따라 공개적 동의를 표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동의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 응원을 동력 삼아 주눅 들지 않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첫째, 사회적 논의는 그 정부가 어떤 정부인가 상관없이 진행돼야 한다. 어떤 정부하의 사회적 논의든, 노·사·정 의견은 일치하지 않는다. 각자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논의·논쟁하고 국민 다수의 동의를 얻는 것이 사회적 논의다. 이미 정해진 판의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를 안다. 심지어 꼭 그렇게 돼서 망신당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이것이 나를 가장 고민스럽게 했고, 계속 고민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우려에도 참여를 결심한 배경의 핵심은 아래와 같은 생각 때문이다.

둘째, 임금 이중구조에서 호봉급-직무급 문제는 배부른 영역의 고민이다. 호봉급이 되든 직무급이 되든 그만큼 임금을 줄 수 있는, 즉 지불능력 안의 고민이고 그것은 이중구조에서 부차적 문제다.

호봉급-직무급 논의의 근거가 되는, 한국의 근속 30년 이상 노동자 임금은 1년 미만 노동자 임금의 2.87배다. 작은 격차가 아니다. 그런데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노동자 대상으로 조사한 2018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상위 10%(10분위)의 평균임금은 최저임금의 5.26배였다. 하위 50% 중에서는 임금을 가장 많이 받는 5분위와 비교해도 3.76배의 격차가 발생했다. 하위 50%, 그들 대다수는 사업장 단위에서는 더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즉 지불능력 바깥에 있다. 이것이 이중격차의 핵심 문제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이중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 사회적 임금 말고는 답이 없다. 그렇다. 1천500만명 안팎의 지불능력 바깥 하위 50% 노동의 얘기를 전면에 띄워 올려 보려고 위원회에 들어간다.

셋째, 실사구시하지 않은 채 정치화되고 진영화된 나머지, 불평등 체제 타파를 주장하는 노동운동이 2.87배 불평등 상태를 옹호하는 황당한 상황까지 이르게 한 호봉체계 문제도 얘기할 것이다. 2.87배는 유럽연합 15개국 평균 1.65배에 비해 매우 큰 격차다. 일본의 2.27배에 비해서도 큰 격차다. 다만 그 격차의 해소는 임금 삭감 없이 시간을 두고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호봉체계를 대체하는 유력 방안이 직무체계가 아니라는 점도 얘기할 것이다. 직무체계를 섣부르게 도입하다가는 자동차와 철도·지하철 등 숱한 사업장에서 연중 파업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상상해 보라. 사업부별 직무 차이에 상관없이 30여년간 균등한 임금체계를 유지해 온 사업장에서 직무 차이를 강조하며 임금을 차등지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오늘은 이 사업부 파업, 내일은 저 사업부 파업, 노·사·정 누구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적절한 수준의 불평등, 그러니까 적정한 수준의 평등을 향한 다양한 구상이 상생임금위원회에서 논의되고 노·사·정 및 사회적 관심의 끄트머리라도 채울 수 있다면 그깟 욕먹는 게 문제겠는가. 그깟 망신이 문제겠는가. 재벌과 노동조합과 정치를 포함한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지고 분담하는 구상을 펼쳐 볼 생각이다. 그래서 상생임금위원회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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