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잡고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가 1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서울도서관의 '예술과 노동' 전시 검열을 인권위에 진정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전시물에) 화물연대 파업이라든지 이태원 사고 관련 주제들을 담으셨더라고요. (중략) 공공기관이다 보니 사회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고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갈 수 있는 주제들은 운영취지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복합문화공간 ‘서울아트책보고’를 위탁운영 중인 서울시 산하 서울도서관 관리자가 지난달 30일 입주서점이 주최한 ‘예술과 노동’ 전시를 무단 철거한 뒤 입주서점 대표에게 한 말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입주서점 ‘MB 국가손배소 공개법정’ 기획
서울도서관 “논란 소지” 철거 후 재전시

서울도서관이 ‘문화예술 검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건의 발단은 서울아트책보고 입주서점 ‘자각몽’의 김용재 대표가 지난달 29일 진행하려 했던 ‘예술과 노동’ 기획전의 전시품을 도서관측이 일방적으로 뜯어내면서 시작됐다. ‘이태원 참사’ ‘화물노조 파업’ 등의 단어가 언급돼 사회적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예술인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은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지난달 28일자로 특별사면된 지 하루 만의 일이다. 도서관은 전시물 철거에 이어 홈페이지에서 홍보물을 내렸다.

도서관측은 ‘오해’ ‘논란’이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썼다. 지식문화과장 A씨는 김 대표와의 통화에서 “주제 자체가 무거운 주제이고 견해가 틀릴 수 있다”며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지향하는 바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전시를 막는 것이 아니냐”는 김 대표의 지적에도 “공동협력사업이라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주제는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전시물을 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기준 없는 ‘철거’였다는 정황은 이후 드러났다. 철거 사실을 뒤늦게 안 김 대표와 작가가 격렬히 항의하자 하루 만인 지난달 30일 위탁업체가 전시물을 다시 돌려놨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A씨의 지시로 다시 철거됐다. 주최측과의 협의는 없었다고 한다. 논란이 커지자 도서관측은 전시물을 다시 복구했다. 역시 주최측에 알리지 않았다. 전시물 앞에는 “본 전시는 ‘자각몽’이 전시로 서울시·서울아트책보고와는 무관한 전시임을 알린다’는 팻말이 세워졌다.

전시는 14일까지 진행된다. 하지만 팻말은 그대로 있고, 홈페이지에도 관련 표현이 기재됐다. 자각몽측은 다양한 갈등과 재난을 예술로 표현한 전시라고 반발했다. 이번 전시는 2021년 11월 진행된 이명박 정부 시절 노조파괴 공작 국가배상 책임을 묻는 ‘공개법정’과 관련한 내용 위주로 구성돼 있다.

인권위 진정 “사과와 재발방지 마련”
블랙리스트 연상 “회귀물 보는 듯”

‘예술 검열’ 논란에 ‘자각몽’과 시민단체 ‘손잡고’는 10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시 검열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전시 중단을 지시한 서울도서관 담당자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이후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자각몽의 김 대표는 “기후위기·이태원 참사·화물연대 파업·장애인 이동권 시위 등 지난해 발생한 갈등과 재난 속 예술”이라며 “이태원 참사, 화물연대 등이 언급됐다는 이유로 철거를 지시한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제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시작가로 참여한 기획자 김진이씨도 “전시물 구성과 배치는 전적으로 큐레이터와 작가의 의도와 구상에 따라 결정된다”며 “무단 철거와 임의 설치는 전시 작업 훼손”이라고 지적했다.

법조계도 검열은 헌법에 위반된다며 날을 세웠다. 공개법정에 참여했던 하태승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헌법과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있다”며 “어렵게 생각할 수 있는 노동과 법률문제를 예술로 표현한 것이 왜 검열의 대상이 돼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변 문화예술스포츠위원회의 김종휘 변호사(법무법인 서교)는 “이번 철거는 한 편의 회귀물을 보는 것 같다”며 “예술인 권리보장법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자각몽과 손잡고는 이후 책임자 징계와 경찰 수사, 민사소송을 차례대로 청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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