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난해 철로에서 일하다 노동자 4명이 죽었다. 3월 시작한 산재 사망사고는 7월, 10월, 11월에도 났다. 사고마다 산업안전보건 강화가 뒤따랐지만 죽음을 막진 못했다. 각각의 죽음은 같지만 또 달랐다. 한국철도공사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수사를 받고 있지만 기소나 처벌은 아직이다. 인력충원 같은 근본대책은 아예 역주행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첫 사고, 노동청 중대재해처벌법 수사 중

첫 사고는 지난해 3월14일 늦은 밤 터졌다. 철도공사의 대전차량사업소에서 기관차 검수를 한 ㄱ씨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작업장에는 기관차 급수용 호스와 철제계단이 놓여 복잡했다.

부검의 소견은 외상에 의한 장파열이다. 철도노조는 ㄱ씨가 호스 등에 걸려 넘어졌을 것으로 본다. 경찰은 ㄱ씨가 입고 있던 작업복에 뜯어진 자국이 있고, 작업장 레일 자국과 유사한 흔적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ㄱ씨가 열차에 끌렸을 것으로 짐작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ㄱ씨 사고를 중대재해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다가 현재는 지시를 받아 재수사 중이다. 사고 후 공사 노사는 작업장 내 급수용 호스걸이를 설치하고 검수고 내 차량 속도도 낮추기로 합의했다.

ㄱ씨 사고는 가장 최근에 발생한 지난해 11월5일 오봉역 사고와 닮았다. 오봉역 사고는 입환(열차 연결·분리) 작업 중이던 노동자 ㄴ씨가 뒤에서 달려온 열차를 미처 피하지 못해 치여 사망한 사고다. ㄱ씨 사고와 달리 야외였고, 핵심 원인은 인력 부족이지만 ㄴ씨가 작업 중 안전하게 이동할 작업로나 열차를 피할 공간 등이 없었던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사고 지점 옆에는 레일 같은 적치물이 쌓여 있었다. 오봉역은 2014년에도 입환작업 중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노조는 인력을 늘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공사와 정부는 묵살했다. 오히려 인력을 효율화한다며 정원 700여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중랑역 인력 모자라 교대근무 부실 운영

인력부족은 공사의 만성적인 재해 원인이다. 지난해 7월13일 발생한 중랑역 산재사망도 인력부족이 원인이었다. 그날 오후 중랑역 선로 안쪽 배수구를 확인하던 노동자 ㄷ씨가 열차에 치여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사망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는 ㄷ씨를 포함해 3명이었지만 작업 관리·감독자(선임시설관리장)는 없었다.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선임시설관리장이 야간조 지원근무를 수행하느라 그날이 대체휴가였기 때문이다. 허병권 철도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현재 4조2교대제 야간 근무체계는 구성원이 한 달에 두 번 다른 조의 야간근무에 지원근무를 한다”고 설명했다. 야간근무를 하면 밤을 지새우기 때문에 다음날 원래 조의 주간근무에 복귀할 수 없어 대휴를 쓴다. ㄷ씨 사고는 이런 근무형태가 낳은 비극이다.

지난해 9월30일 발생한 산재 사망사고는 앞선 사고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정발산역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을 보수하던 노동자가 선로 안쪽에서 전동열차에 치여 숨진 사고다. 작업 내용상 굳이 승강장 안쪽으로 진입할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허 실장은 “선로 안쪽에서 승강장 안전문 개폐 작동 여부를 표시하는 스크린을 살피다 사고가 났다”며 “해당 스크린을 굳이 안쪽에 설치할 이유도 없고 선로로 내려가는 계단 관리도 소홀했던 게 문제”라고 짚었다. 물리적으로 사고가 날 수 있는 요인을 모두 차단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고 뒤 규모가 작은 작업환경 정비는 공사 노사가 안전보건개선계획에 합의해 진행하고 있다. 허 실장은 “사고가 날 때마다 안전보건개선계획을 수립하고 실제 개선도 한다”고 설명했다. 3월 발생한 대전차량사업소 사망사고 원인으로 추정된 호스걸이 설치 같은 대목이다.

인력충원 외면한 정부 되레 “교대제 되돌려라”

그러나 근본 대책은 추진이 어렵다. 인력충원과 작업자 안전을 지키는 작업장 환경정비다. 공사가 공기업이다 보니 예산과 인력은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정부는 인력충원은커녕 되레 공사 노사가 합의해 순차적으로 진행 중인 4조2교대제 전환에 제동을 걸었다. 4조2교대제 안착에 필요한 인력 1천865명 증원 요구를 번번이 거절해 온 정부는 공사 노사가 짬짜미를 했다며 3조2교대로 되돌리라고 지시했다. 공사 관계자는 “정부의 요구에 대해 언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철도 노사는 지난해 12월 임금·단체협상에서 3명 이상 입환작업을 위한 인력을 충원하고 ‘입환업무 환경개선 및 안전확보를 위한 TF’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또 안전인력 충원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지만, 되레 정부는 700여명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작업장 환경정비는 국가철도공단이 나서야 한다. 공사 민영화 과정에서 2004년 설립된 공단은 오봉역 같은 설비를 소유하고 있다. 부분적인 유지·관리 업무는 공사가 하지만 작업로 설치나 선로 추가 개설 같은 대규모 정비는 공단이 한다. 돈도 많이 들지만 공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계는 또 다른 사고를 우려하고 있다. 노조는 전기사고 걱정이 크다. 허 실장은 “지난해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뿐 심각한 수준의 전기사고가 빈발했다”고 털어놨다. 지붕에서 노동자 2명이 작업 중인 것을 모른 채 배전함 전기를 올려 감전사고가 났고, 배전함 안에 전기차단기를 조작해도 일부 전선에 전기가 흘러 감전을 당하는 사고들이 발생했다. 허 실장은 “근본적인 인력충원과 작업자가 안전하게 일하도록 하는 환경정비 같은 노력이 꾸준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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