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해 11월30일 발간한 ‘2022-23 글로벌 임금보고서’에 따르면, 1999년 이래 지난 20년 넘게 52개 고소득 국가에서 임금인상률이 노동생산성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1999년의 임금과 노동생산성 지수를 100으로 잡았을 때 2022년 그 격차는 12.6%포인트에 달했다.

1999년 이래 52개 고소득 국가에서 노동생산성은 매년 1.2%에 상승한 데 반해 임금은 매년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상승률의 절반밖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장기 추세를 볼 때 노동생산성은 2008~2009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 하락했지만, 이때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임금인상률을 상회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2021년부터는 노동생산성은 상승하는 데 반해, 임금인상률은 낮아지고 있다. 그 결과 21세기 들어 노동생산성 증가율과 임금인상률의 격차는 2022년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한편 ILO는 보고서에서 부가가치세 인하가 저소득 가구에 대한 물가인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ILO는 저소득 가구 등 특정 계층을 목표로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바우처 등을 지원할 수도 있으나, 전체 가구의 생계비를 낮추기 위해 상품과 재화에 대한 간접세를 한시적으로 감면하는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LO는 독일 정부가 코로나19 지원책이 초래한 총수요 증가에 따른 물가인상 부담을 줄이기 위해 2020년 7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6개월 동안 시행한 부가가치세 감면을 예로 들었다. 독일 정부가 생활에 필수적인 상품과 서비스에 매기는 부가가치세 요율을 7%에서 5%로 낮춤으로써 저소득층의 구매를 진작시켜 독일 전체의 국내총생산을 0.3% 늘릴 수 있었다고 ILO는 평가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8월 가스요금에 부과되는 부가가치세를 19%에서 5%로 낮췄으며, 에너지 가격 상승이 가구와 기업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2천억유로 패키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로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6월 전기요금에 부과되는 부가세를 21%에서 5%로 인하했으며, 프랑스 재무부도 가구와 기업의 에너지 가격 충격을 완화할 목적으로 450억달러의 패키지를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연간 소득이 1만800유로 이하인 가구에 대한 에너지 바우처 지원(월 48유로~277유로)을 2018년부터 이미 시행해 오고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바우처 지원과 가계·기업을 위한 부가세 인하와 더불어 몇몇 나라에서는 정유와 가스 등 에너지 회사와 대기업, 그리고 부유층 가구를 상대로 한시적이거나 영구적인 증세 정책을 시행했다고 ILO는 소개했다. 예를 들어 지난해 9월 유럽연합은 에너지 위기로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있는 화석연료 제조사에 대한 ‘횡재세’(windfall tax) 도입을 제안했다. 영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 5월 자국 영토 안에서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에너지 대기업에 대해 25%의 추가부담금(levy)을 부과했다. 향후 몇 년 동안 영국 정부는 에너지 대기업이 내야 할 추가부담금을 280억파운드 넘게 인상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 정부도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고 취약계층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정부의 재정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일련의 조세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재산이 300만 유로가 넘는 부유층은 세습재산, 즉 유산에 대해 일시적으로 1.7%의 세금을 내야 한다. 그리고 중소기업과 저소득 가구의 소득세는 인하하는 반면, 에너지 대기업과 금융기업에 대한 세금은 인상한다.

ILO는 보고서에서 다국적기업에 대한 법인세 수준을 최소 15%까지 맞추도록 합의한 2021년 10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치를 국제조세제도 개혁의 이정표로 평가했다. OECD 합의는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90% 이상을 대표하는 136개국에 적용된다. 만약 이 합의가 실행된다면 세계 100대 다국적기업이 보유한 이윤 가운데 1천250억달러가 전 세계적으로 재분배될 것으로 예측됐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