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듀오 건물 모습. <홍준표 기자>

“그 사건 이후 기쁨이 사라졌어요. 3년간 어둠 속에 갇혀 살았는데, (가해자는) 벌금 800만원을 돈으로 생각할까요. 1심 선고가 나왔을 때 멍했습니다. 가해자가 항소한 사실을 알았을 때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 들었어요.”

결혼정보회사 ‘듀오’ 커플매니저 김영은(가명)씨는 “대낮에 임원이 가슴을 움켜쥐고 성추행했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3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어둠 속을 걷고 있다고 울먹였다. 가해자는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항소했다. “격려 차원의 ‘터치’였다”고 주장했다. 사건 이후 회사는 가해자 분리 조치 없이 되레 피해자를 징계한 정황이 드러났다.

“어머니 유방암” 말하자 웃으며 성추행

그날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3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는 2020년 1월23일 오후 4시께 사무실 복도에서 듀오 서울지사 부사장 A씨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김씨 진술에 따르면 A씨를 우연히 마주친 그는 “어머니가 유방암 수술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어머니 병환으로 연장근무가 힘들고 휴가를 써야 할 수도 있어 미리 양해를 구하는 차원이었다. 그러자 A씨가 갑자기 이상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와 “유방암 괜찮다”며 가슴을 움켜잡았다고 한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황급히 현장에서 벗어나 책상에 돌아와 펑펑 울었다고 한다. 상사인 팀장에게 성추행 사실을 알리고는 약 1시간 정도 지난 오후 5시30분께 A씨에게 “너무 당황스럽고 충격적이다. 앞으로 오해할 행동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는 내용의 항의성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다음 날부터 설연휴였지만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연휴 마지막날 정신과에 방문해 상담받고, 다음 날 성폭력상담소에 전화했다. 연휴가 끝난 후 김씨는 겨우 출근했지만, A씨가 여전히 사무실을 배회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결국 다음 날부터 사흘간 출근하지 못했다. 겨우 회사에 나갔지만 ‘2차 가해’가 시작됐다. 대표이사와 본부장은 면담에서 “가해자와 친하지 않았냐. 직접 가해자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제야 A씨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 텐데, 만나서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오히려 김씨가 업무에서 배제됐다. 회사는 김씨가 관리하던 회원 명단을 다른 매니저에게 나눠줬다. 김씨는 팀장에게 “그만두라는 얘기냐”며 항의했다.

피해자 산재신청에 끝없는 ‘복직명령’

가해자 분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고통은 심해졌다. 김씨는 회사에 휴가를 요청해 그해 2월부터 7월까지 유급휴직이 승인됐다. 우울 증상이 심해져 7월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했다. 하지만 사측은 공단에 “대화 도중 격려 차원의 손짓이 우연히 가슴을 스치게 된 것”이라며 확인서를 냈다.

이때부터 회사의 ‘복귀명령’이 끝없이 이어졌다. 회사는 7월 말 휴가기간이 끝났다며 김씨에게 복직을 독촉했다. A씨가 버젓이 회사에 나오는 상태라 김씨는 출근이 두려웠지만, 사측은 미복귀시 징계할 수 있다고 했다. 지속해서 추가 휴가를 요청해 그해 12월 말까지 무급휴직을 받았다.

김씨는 용기를 냈다. A씨를 경찰에 고소하고, 고용노동부에 직장내 성희롱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생활이 어려운 심리적 상태가 이어지자 휴직 만료시점에 추가로 휴직을 요청했다. 산재요양 심사 중이고, 반드시 요양이 필요하다는 정신과 전문의 소견이 있어 근무가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내용을 회사에 수차례 알렸다.

▲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편집 김효정 기자
▲ 자료사진 이미지투데이, 편집 김효정 기자

출근 두려워 결근, 되레 정직 3개월 징계

회사는 또다시 복직을 명령했다. 회사가 추가 휴직을 거절하자 김씨는 출근할 수 없었다. 복직을 독촉하는 내용증명이 세 차례나 발송됐다. 김씨가 계속 출근을 거부하자 사측은 2021년 1월 무단결근을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정직처분을 했다. 취업규칙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김씨측은 회사의 징계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상 불리한 처우에 해당한다며 고용노동청에 고소했지만, 불기소(혐의 없음)로 종결됐다.

상황은 악화했다. 회사는 세 번째로 복직을 독촉했다. 2021년 3월 김씨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이 산재로 승인됐지만, 사측은 정직 처분을 취소하지 않은 채 정직이 끝나는 시점에 출근할 것을 통보했다. 3개월 뒤 산재요양 연장 신청이 승인되자 그제야 7월까지 무급휴직을 재차 부여했다.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김씨가 계속 요양 연장을 신청할 때마다 사측은 복귀명령을 내렸다. 김씨의 산재신청을 도운 송윤정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율현)는 “회사는 진료연장 승인기간을 못 참고 복귀하라고 이메일을 계속 보냈다”며 “가해자가 여전히 버티는 상황에 어떻게 출근하나. 피해자는 그럴 때마다 불안이 가중했다”고 지적했다. 회사가 해고를 염두하고 복귀명령을 내리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는 것이다.

가해자 벌금 800만원 선고에 항소 “툭툭 친 것”

가해자 처벌은 미미했다. A씨는 강제추행 혐의로 2021년 7월 재판에 넘겨져 지난해 10월 1심에서 벌금 800만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도 함께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고, 피해자는 고통을 호소하며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A씨는 재판에서 오히려 김씨가 휴가를 연장하면서 2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다가 거절되자 고소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재판부는 “회사가 피고인에 대한 징계 등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고 피해자의 산재신청에 대해서도 ‘격려차원의 손짓’이라는 확인서를 제출하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고소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피해자가 먼저 2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한 사실이 없다”고 질타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항소한 상태다. A씨는 <매일노동뉴스>와 통화에서 “가슴을 움켜쥔 것이 아니라 김씨가 어머니 유방암 수술을 말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툭툭’ 친 것일 뿐”이라고 답했다. “사과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는 “얼굴만 봐도 (김씨가) 힘들다고 하고 3년 가까이 된 시점이라 사과할 길이 없다”고 했다.

사측도 충분한 조치를 했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사건 직후 A씨에게 경고조치를 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확약서를 받는 등 적절한 징계처분을 했다고 밝혔다. ‘2차 가해’와 관련해서도 듀오 관계자는 “어디서 어떤 피해를 주장하는지 회사는 알지 못한다”며 “요양기간이 끝나면 복직하는 것은 당연하며 복직 거부시 사규에 따라 조처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가 별도 공간에서 근무하고 휴가가 부여됐으므로 ‘가해자 분리 조치’도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노동청은 2021년 6월 가해자 징계 등 조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과태료 500만원을 부과했다.

“가해자는 ‘멀쩡’ 피해자만 징계”

김씨는 올해 3월3일까지 산재요양 기간이 연장된 상태다. 회사는 다시 복귀명령을 독촉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김씨는 여전히 출근을 두려워하고 있다. 가해자가 회사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는 없이 오히려 피해자를 징계하고 자르려고 매번 복직을 독촉하며 2차 가해를 한다”며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사업을 한다는 회사에서 성추행범을 감싸고 두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김씨를 지원한 양정은 변호사(법무법인 이평)는 “직장내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사업주는 노동자가 사고 후 안전하게 일터로 복귀하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나 회사는 성폭력을 철저히 개인 문제로 치부하고 2차 피해를 심각하게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 듀오 유튜브채널 갈무리
▲ 듀오 유튜브채널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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