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왼쪽부터  공공운수노조 덕성여대분회 윤경숙(66) 분회장, 이광수 부분회장, 홍미라 사무장. <정기훈 기자>

‘미화도 덕성 구성원이다’ ‘덕성 위해 청춘을 바쳤다’ ‘지구 한 모퉁이가 우리 때문에 환해졌습니다’.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덕성여대 대학본부 곳곳에는 손글씨로 쓴 팻말이 붙어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대학본부에서 농성하고 있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덕성여대분회 청소노동자들이 구호를 한 땀 한 땀 썼다. ‘덕성여대 구성원으로 청춘을 바쳐 가며 지구의 한 모퉁이를 밝히는 일’을 하는 이들의 농성은 어느새 해를 넘겼다.

지난해 3월 결렬된 임금교섭과 이어진 오랜 쟁의행위 탓에 새해 소망은 “걱정 없이 일하는 것”이 됐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30일 서울 도봉구 덕성여대에서 만난 윤경숙(66) 덕성여대분회장, 이광수(60) 부분회장, 홍미라(60) 사무장은 “2023년에는 교섭이 빨리 마무리돼 노사 갈등 없이 일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사회는 정소희 본지 기자가 봤다.

사회 :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윤경숙 : 2014년에 입사했고 덕성여대 인문사회관 1층 전체를 청소합니다. 대강의실 4개, 중강의실 2개, 세미나실 8개, 화장실 양쪽 10칸과 바깥 구역을 청소해요.

이광수 : 2012년 입사했고 대강의동에서 일합니다. 이전에는 4명이 일했던 곳인데 지금은 2명이 하고 있어요. 강의동은 바깥 면적이 넓어서 3명이 한 조가 되면 좋을 것 같은데 2명이 하니까 실내에 조금 더 힘을 기울이게 돼요.

홍미라 : 입사는 2013년이고, 지금은 체육관을 맡고 있어요. 큰 체육관 한 개랑 작은 체육관 2개인데 2명이 담당해요. 체육관이다 보니 학생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아 노동강도가 무척 센 편은 아니지만 바깥 공간이 많아요.

덕성여대 빼고 12개 사업장 모두 임금 합의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2021년 10월부터 덕성여대를 포함한 서울 내 대학·빌딩 13개 사업장의 16개 청소·주차 용역업체와 2022년 집단 임금교섭을 했다. 지부는 시급 440원 인상과 미화노동자 샤워시설 설치를 위한 원·하청 공동협의기구 설치를 제시하고 약 5개월간 교섭했지만 지난해 3월 결렬됐다. 당시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미화·주차직 시급 400원 인상안을 권고안으로 제시했고 이후 계속된 교섭 끝에 나머지 대학과 빌딩들은 모두 지난해 청소노동자 시급 400원 인상에 합의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덕성여대만 아직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덕성여대분회는 지난해 3월부터 교섭 타결을 촉구하며 농성과 전면파업·간부파업을 했다.

사회 : 투쟁이 이렇게 길어질 것을 예상하셨나요.

윤경숙 : 전혀 몰랐어요. 예상했다면 분회장 못 했을 거예요. 이전에는 노조가 학교에 협조를 많이 했어요. 학교에서 교섭 때마다 힘들다고 하니 잠정합의를 서두르고 타결했죠. 제가 일하는 인문사회관은 전에는 학교에 직고용된 3명을 포함해 총 7명이 일했어요. 7명이 일하던 곳을 지금은 4명이 하는 거죠. 전체적으로 인원이 감축된 상태예요. 그건 노조가 학교에 협조해 왔기 때문이죠. 학교가 어렵다고 해서 이런저런 협조를 많이 했는데 지난 5월 총장과 면담하면서 저희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그러면서 6월에 투쟁 수위를 높여 나가기 시작했죠.

홍미라 : 이전에는 투쟁을 한 달 이상 해본 적이 없었어요.

윤경숙 : 제일 힘든 건 조합원들이에요. 모든 상황이 저 때문은 아니더라도 제가 더 잘했더라면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하죠. 조합원에게 미안하고 그래요.

사회 : 덕성여대는 지난해 임금교섭에 합의하지 못한 마지막 사업장인데요.

윤경숙 : 우리 사업장만 합의를 이뤄 내지 못했고, 현재 여섯 군데 정도가 (지난해 집단임금교섭 타결에 따른) 소급분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사측이 여러 핑계를 대며 덕성여대가 아직 합의 못했다고 하니 지급을 미루는 거죠. 미안한 상황이에요.

덕성여대 “청소노동자에게 법적조치 취할 것”

지난해 3월14일부터 몸벽보를 착용하며 시작한 투쟁은 몇 차례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해 5월 김건희 총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노조가 면담했지만 의견차만 확인했다. 김건희 총장이 참여한 첫 교섭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여름 동안 다른 대학들의 잠정합의 소식이 이어졌지만 덕성여대는 협상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던 중 김 총장이 지난해 9월28일 학교 게시판에 장문의 담화문을 게시했다. 담화문에서 김 총장은 △대학 교수와 직원 급여는 지난 10년간 동결해 왔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대학 재정이 어려워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예산을 사용해야 하며 △근무조건은 유지한 채 노동시간을 줄이도록 제안했으나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총장이 담화문을 게시한 뒤 청소노동자를 향한 학생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일부 학생들이 학교 곳곳에 붙어 있던 청소노동자들의 호소문에 반박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써붙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분회는 김건희 총장에게 대화를 요구하며 총장실이 있는 대학본부 점거농성과 9일간 파업을 했다. 11월 대학은 임금인상 조건으로 2025년까지 청소구역을 재산정해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용역업체를 통해 내용증명을 보내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등으로 노조를 법적조치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정기훈 기자
▲정기훈 기자

사회 : 최근 학교가 인력감축을 전제한 임금인상안을 제시했는데요.

윤경숙 : 2025년까지 12명이 퇴직으로 자연감소하는 상황이에요.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지 않겠다’는 안에 노조가 동의하라는 거죠. 그 제안은 말이 안 됩니다. 청소용역업체와 대학의 계약이 올해 12월 말로 끝나요. 업체하고는 용역계약을 그렇게 맺어 놓고 노조에는 인력감축안에 동의하라는 게 말이 되나요. 그리고 어떤 노조가 앞으로 5년간 인력을 감축하라는 안에 동의할 수 있겠어요. 임금 400원 올리려고요. 그건 조건이라기보다 인상을 안 해 주겠다는 이야기죠. 어떤 양보도 하지 않겠다, 어떤 소통도 거부하겠다는 거죠.

이광수 : 지금까지 매년 인력을 감축해 온 것이나 다름없어요. 최근 5~6년 동안 8명 정도를 줄여도 학교가 돌아가니 더 줄여도 되는구나, 학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홍미라 : 청소노동자에게는 임금을 더 주지 않겠다는 의도로밖에 안 보여요. 지금까지 집단교섭을 하면서 임금인상한 것도 사실 감축된 인력에게 책정했던 임금을 (남은 사람들이) 나눠 가졌다고 봐야 하거든요.

윤경숙 : 학교에서 ‘교수연구실·실습실·학과실 등을 청소면적에서 제외해 청소인력을 줄이겠다’고 했는데 저희가 가서 조사해 보니 그곳은 청소면적에서 제외해도 청소를 안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이과 학생들은 실습실·실험실이 강의실이나 마찬가지 거든요. 학교가 구체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것 같지 않아요.

사회 : 학교측에서 최근 용역업체를 통해 내용증명을 보냈습니다.

윤경숙 : 지금은 서로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총장도 학교를 운영하는 행정가 입장에서 일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 같다고 느낄 거예요. 우리 분회는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학교가 책임져라’ ‘김건희 총장이 책임져라’ 같은 발언들을 했지만 총장께 마음의 짐도 있어요. 연대해 주시는 분들이 와서 강하게 발언하는 것을 듣고 상처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총장이 담화문을 학교 온라인 게시판에 올리면서 학생들이 노조에 반감을 느끼고 저희한테도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어요. 서로 간에 상처를 많이 받았죠. 소통이 이뤄지면 해명이든 (하고 싶어요).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는데 노조와 만나지 않으니까 안타까운 상태예요. 이전에 연세대생이 노조를 상대로 고소하겠다고 한 적은 있는데, 학교가 노조를 상대로 고소하겠다고 한 건 덕성여대가 처음이라네요.

총장이 학생과 청소노동자 갈라치기

사회 : 김건희 총장 부임 이후 노사 갈등이 커진 것으로 보여요. 관행적으로 하던 방학 중 단축근무를 갑자기 폐지한다든지, 학생과 교직원에게 모두 나눠주는 마스크를 청소노동자를 빼고 줘 차별 논란이 불거졌는데요.

홍미라 : 지난해 3월부터 투쟁이 이어지다 보니 지난해 여름에 갑자기 방학마다 해 오던 2시간 단축근무를 폐지하겠다고 하더라고요. 6월 말부터 어느 날 갑자기 용역업체 사장을 통해 지침이 내려왔어요.

윤경숙 : 여름쯤부터 인권 동아리 학생들이 연대하면서부터 학생들도 우리와 함께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총장이 학생들에게 보내는 담화문을 발표했고,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했죠. 총장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과 우리를 갈라치기 했다는 생각에 우리도 게시글을 올렸죠. 하지만 이후에도 몇몇 학생들이 댓글을 달고 하면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울고 그랬어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으니 임금을 조금 올려 달라고 얘기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공격받아야 하나 생각했어요.

사회 : 총장 담화문 내용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홍미라 : ‘10년 동안 교직원 임금을 올리지 않았는데 청소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줬다’고 총장이 그랬는데, 교직원들은 사실 임금이 오르지 않아도 호봉이 계속 올라요. 우리는 집단교섭을 통해 오른 만큼 받긴 했죠. 최저임금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요. 반면 학교 안 청소·경비 인력은 계속 줄여 왔어요.

지난해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통상시급은 9천390원으로 최저시급인 9천160원보다 230원 높았다. 식대 12만원을 포함해도 월급은 세후 185만원 수준이다.

윤경숙 : 총장은 중간착취에 대해서도 부정하는 말을 했는데요. 중간착취는 너무 맞는 말 아닌가요. 용역업체는 이윤이 남으니까 들어오는 거잖아요. 학교는 직접고용하지 않는 거고요. 꼭 용역회사를 통해 고용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이전에는 직고용이 있었지만 용역노동자를 늘리면서 직고용이셨던 분들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요.

이광수 : ‘노동조건은 그대로 하되 하루 8시간에서 7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이자고 제안했으나 노조가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 총장 주장은 집단교섭을 잘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기본적인 노동조건은 집단교섭을 통해 정해지는 건데 노동시간 감축 문제는 우리학교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재정이 어렵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건 다른 학교도 마찬가지잖아요.

윤경숙 : 8시간 일하던 것을 7시간으로 줄이면 일은 누가 다 하나요. 우리가 결국 다 해야 하는 거예요. 올해만 보면 나쁘지 않은 제안으로 보이지만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시간당 노동강도는 높아지게 돼 있어요. 학생들이 강의가 끝나고도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기 때문에 보통 오전에는 노동강도가 높아요. 아침에 일이 더 많아지는 거예요. 그리고 학교의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올해는 7시간이지만 내년에는 6시간, 점점 일하는 시간을 줄이려고 할 거예요. 결국 알바, 파트근무로 바꾸려는 속셈일 수 있는 거죠. 이건 학생들의 권리를 빼앗는 일이기도 해요. 학생들이 지저분한 공간에서 공부해야 하니까요. 우리 학교에 20~30년 일하신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남들보다 일을 쉽게, 더 빨리 해요. 아주 힘든 청소도 요령이 생긴 거죠. 학교는 그런 건 인정하지 않아요. 학교 관계자들이 보기에는 일하는 시간을 줄여도 될 정도로 일이 너무 쉬워 보이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사회 : 노조가 총장에게 대화를 요구하며 대학본부 점거농성을 한 지도 90일이 넘었습니다.

이광수 : 대화의 장을 열어서 서로의 입장차를 확인하고, 소통하고, 합의점을 찾아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니까요. 총장은 인력감축안을 던져 놓고 전혀 합의점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요. 조합원들도 너무 힘들어하고, 대화할 기회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홍미라 : 지금은 우리 노동자들을 외면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입장을 조금만 생각해서 만나 주시면 좋겠어요.

윤경숙 : 큰 틀에서 생각하면 좋겠어요. 여기저기 걸린 플래카드, 학생들이 느끼는 불편함 등을요. 우리도 집중해서 일해야 하는데 농성이 길어지니 생각이 분산될 수밖에 없어요. 여러 피해들을 학생들이 받지 않도록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일단 만나서 대화하면 좋겠어요. 새 학기에 깨끗한 캠퍼스에서 학생들이 마음껏 학창시절을 누릴 수 있도록 그 기회를 총장이 만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선전전을 노조의 행패라고 생각하지 말고, 절실하게 우리 뜻을 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우리도 덕성의 구성원이거든요.

“새해에는 투쟁 없이 일했으면”

사회 :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홍미라 : 노동문제에 깊은 관심이 없는 학생들은 우리 문제를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태까지 오게 돼 많이 미안하죠. 학생들이 많이 불편하겠지만, 노조활동에 관심을 기울여 주면 좋겠어요.

이광수 : 학생들에게 미안해요. 아직 사회의 불평등을 몸소 체험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노조가 겪는 상황들을 충분히 모를 수도 있을 거예요. 나중 사회에 나갔을 때, 혹여 불평등한 일을 겪는다면 노조를 만들어서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주면 좋겠어요. 자기 일터, 나아가서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바라요.

윤경숙 : 지난 1년여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학생들에게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그럴 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지나가던 학생들이 ‘어머님, 수고하세요’ 그 한마디를 해 주면 눈물나게 고맙더라고요. 여성이 사회에 나가서 일할 기회를 얻으면서 혹시나 불평등한 일을 겪었을 때 학교에서 엄마들이 했던 노조 활동을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노조가 헛된 일이 아니구나’ ‘그 나름대로 가치 있는 일이었구나’라고요.

사회 : 매년 청소노동자와 대학 간 갈등이 반복됩니다. 왜 그런가요.

홍미라 : 최저입찰제를 통해 용역회사가 들어오다 보니 항상 문제가 반복되는 것 같아요. 직접고용 아니면 뾰족한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사회 : 새해 소망이 있다면요.

윤경숙 : 노사 갈등 없이 아무 걱정 없이 일하고 싶어요. 400원 시급이 올라도 물가가 오른 걸 고려하면 임금은 크게 올랐다고 보기 어려워요. 출근 전 주말 저녁부터 괴로운 상태예요. 농성이 빨리 끝나길 바랍니다.

이광수 : 지금 제가 겪고 있는 문제 중에 가장 큰 문제잖아요. 학교랑 청소노동자가 서로 도와서 가야죠. 서로 손잡고 문제를 빨리 해결해 일하면 좋겠어요.

홍미라 : 저도 마찬가지예요. 올해 교섭이 빨리 타결되고, 내년에는 긴 투쟁 없이 가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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