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총(ITUC)은 지난 21일 총평의회를 열고 내년 3월11일까지 루카 비센티니(Luca Visentini) 사무총장의 직무정지를 결정했다. 국제노총은 내년 3월까지 사무총장 관련 사안을 좀 더 살펴볼 예정이지만, 직무정지가 유죄 추정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국제노총은 1월 중에 총평의회를 열어 사무총장 직무대행 문제를 정식으로 논의하기로 했으며, 그때까지 사무차장인 오언 튜더(Owen Tudor)가 사무총장 직무대행 책임을 지도록 조치했다.

국제노총은 21일 총평의회에서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첫째,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비센티니 사무총장의 혐의와 관련된 재정 상황과 국제노총의 재정 규정 및 절차에 대해 독립적인 외부 감사를 받는다. 둘째, 외부감사 결과와 기타 문제를 다루고 이에 근거해 사무총장의 혐의와 관련된 상황을 조사할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

독립적인 외부 감사와 국제노총 차원의 독립위원회 활동 결과는 내년 3월11일 열리는 총평의회에서 논의된다. 국제노총 총평의회는 부패의 주된 희생자가 노동자임을 분명히 하면서 어떠한 형태의 부패에도 전면 반대하며 엄격한 예방 조치를 강구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지난 1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국제노총 총회에서 처음 당선된 비센티니 사무총장은 월드컵을 유치한 카타르 정부의 인권문제에 대해 유럽연합 의회를 상대로 로비를 한 대가로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부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벨기에 경찰은 카타르 정부를 위해 유럽연합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받은 혐의로 비센티니 사무총장을 비롯한 6명을 조사했다. 비센티니 사무총장은 언론이 ‘카타르 게이트’로 이름 붙인 사건에서 부패자금 수수와 자금세탁 혐의를 받는 주요 혐의자 4명에는 포함돼 있지는 않으며, 벨기에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서 일단은 혐의 없음으로 풀려난 상태다. 하지만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와 사건이 법정으로 넘어갈 때까지는 수사 대상으로 남게 된다.

주요 혐의자 4명 가운데 2명은 벨기에 브뤼셀에 소재한 인권단체인 Fight Impunity의 창설자인데, 비센티니 사무총장은 지난 11월 국제노총 총회 과정에서 자신의 선거운동을 위해 이 단체로부터 “5만 유로가 안 되는” 현금을 기부금으로 받은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비센티니 사무총장은 본인에게 제기된 모든 혐의를 부정하면서 “이 기부금은 부패와 관련된 어떠한 시도에도 연결돼 있지 않으며, 카타르 문제는 물론 어떠한 사안에 대해서도 나의 노동조합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부금과 관련해 기부 단체로부터 어떠한 부탁도 받은 바 없으며, 비센티니 자신도 어떠한 부탁을 한 바 없다고 강조했다.

벨기에 검찰은 유럽의회 전 의원인 피에르 안토니오 판제리가 카타르 정부를 위해 자신이 창립자로 있는 인권단체 Fight Impunity를 유럽의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부패 자금의 거래 수단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카타르 정부는 이러한 부패를 사주했다는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판제리를 포함해 유럽의회 현직 의원인 에바 칼리와 그의 동거인인 프란체스코 기오르기, 그리고 니콜로 피가-탈라만차 등 4명이 기소됐다. 그리스 국적자인 에바 칼리를 빼고는 모두 이탈리아 국적자다. 이들은 ‘정의 없이 평화 없다(No Peace Without Justice)’는 인권단체를 설립했는데, 공교롭게도 이 단체는 Fight Impunity와 같은 주소를 쓰고 있다. 피가-탈라만차를 뺀 나머지 3명은 구치소에 수감된 상태다. 전·현직 의원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로 인해 유럽의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국제노총 총평의회에서 직무가 정지된 루카 비센티니 사무총장은 1969년생으로 이탈리아 국적자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89년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이탈리아노동연맹(UIL) 산하 관광판매서비스연맹 위원장으로 노동운동 경력을 시작했다. 올해 11월 국제노총 총회에서 사무총장으로 당선되기 전에는 2015년부터 유럽노총(ETUC)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유럽노총 본부는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