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업무지구에서 일하는 청소·경비·시설 노동자 10명 중 4명은 부당한 경험을 해도 참고 지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 3대 도심(강남·종로·여의도) 중 한 곳인 여의도 업무지구의 저임금·간접고용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 실태조사다.

‘시간의 중간착취’ 참고 견디는 간접고용 노동자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와 영등포구노동자종합지원센터는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센터에서 ‘여의도 업무지구 비정규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를 열었다. 지부와 센터는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여의도에 위치한 36개 건물에서 일하는 509명을 대상으로 노동환경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청소노동자 379명, 경비노동자 41명, 시설관리 노동자 89명이 응답했다. 청소노동자 7명은 면접조사를 했다.

건물관리 노동자들의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청소직종의 평균임금(세전 총액 기준)은 187만3천원, 경비직종은 219만9천490원, 시설직종은 263만4천600원을 받았다.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한 류한승 지부 조직부장은 “여의도 업무지구뿐 아니라 청소직종의 임금은 어디에서나 정확하게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며 “인적 속성이나 숙련, 역량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닌 오로지 비용절감에만 목적을 둔 직무급 체계”라고 설명했다. 류 부장은 “청소업무는 사업장에 머무는 시간 내내 높은 헌신과 조직 몰입을 요구받는다”며 “임금은 직무급 방식으로 받지만 일은 연공급처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간접고용 노동자라서 항시적으로 느끼는 고용불안은 다양한 문제를 야기했다. 본인 혹은 동료가 부당한 경험을 당했을 때 “참고 지냈다”고 응답한 이는 123명 중 49명(39.8%)이었다. 면접참여자 중 1명은 “회사 납품업체가 할 일을 대신하거나 소관 업무가 아닌 화단 정리까지 하지만 재계약이 안 될까 봐 부당함을 말하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근로계약상 노동시간보다 더 일하는 문제도 나타났다. 4개 사업장의 근로계약상 근로시간과 실제 노동시간을 비교해 보니 모든 사업장의 청소노동자들이 하루 30분~1시간을 더 일한다고 답했다. 하루 휴게시간을 3.5시간으로 잡아 사업장 체류시간은 하루 10.5시간이나 되지만 주당 근로시간은 30시간에 불과한 ‘휴게시간 꺾기’문제도 나타났다. 류 부장은 “하루의 절반 가까이 사업장에 머물러도 유급으로 인정되는 노동시간은 5.5시간~7시간 수준인 노동환경, 즉 ‘시간의 중간착취’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며 “청소노동자들이 새벽에 자발적으로 무급 초과노동을 하는 것은 간접고용 노동자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무기로 쓰는 사측의 지시감독에 어떠한 대항력도 가지지 못하는 고용상 취약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노조 조직화’와 ‘간접고용 구조에 균열 내기’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류 부장은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의 노동조건 개선 사례를 발표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사측에 대항력을 가지고 노동관계법이 취지대로 적용되도록 하는 것만으로도 노동조건이 상당히 개선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유노조 사업장의 경우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책정하고,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회사 눈치를 보지 않고 산재를 신청했다. 식대와 상여금도 받는다.

노조 필요성을 묻는 질문(461명 응답)에 65.5%의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류 부장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노조 가입을 꺼리는 데는 보복 내지 불이익 조치로 고용이 단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크다”며 “잠재적인 노조 수요를 조직으로 연결하고 노조가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시민·사회단체 등을 통한 관계망 활성화에도 노조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근본적으로 간접고용 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경영학)는 “임금체불, 중대재해 발생 등의 문제를 낳을 수 있는 재하도급을 엄격히 금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재하도급이 얼마나 존재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실태조사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사내 인력도급이라면 원청 역시 부분적이라도 사용자 책임을 갖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며 “산업안전이나 임금체불 부분뿐 아니라 교섭 대상자로서의 책임을 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 개정을 이뤄 내기 위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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