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호 공인노무사(해담 노동법률사무소)

얼마 전 맡은 사건에서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미교부에 대해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했다. 진정인은 무려 23년 동안 작은 빌딩의 관리자로 혼자 근무했다.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는 그 오랜 기간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았고 사회보험도 가입되지 않았다. 진정인은 입주자들이 출근하기 전인 8시에 출근해서 엘리베이터 전원을 켜고 계단과 옥상, 건물 주변을 청소했다. 좁은 골목에 건물이 있던 터라 행인들이 담배꽁초를 버리고 가는 일이 많아 이를 감시하는 것도 진정인의 역할이었다. 사무실이나 휴게실도 없어서 엘리베이터 하부 피트에 진정인이 직접 가져다 놓은 책상을 놓고는 그곳에서 식사도 하고 잠깐씩 대기를 했다. 혼자 건물 관리일을 하다 보니 건물의 입주자들은 수시로 소소한 문의와 요청을 했다. 진정인은 점심시간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다. 그런데 사용자는 월급으로 100만원만 줬다.

진정인은 퇴직금이라도 제대로 받아야겠다며 찾아왔다. 이런 사건은 명시적인 근무시간과 휴게시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어려움이 있다. 사용자는 진정인이 혼자 일하므로 자신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발뺌하기 일쑤다. 그나마 진정인이 자료를 갖고 있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사건을 진행하기로 했다. 자료는 바로 근무시간과 휴게시간이 공란으로 기재된 근로계약서를 촬영한 사진이다. 작성 당시 사용자가 교부하지 않아 사진 촬영만 했다는 것이다. 다만 공란으로 작성한 근로계약서는 사용자가 그 공란을 채워오는 사례가 종종 있어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다. 문서 위조 여부는 노동청 관할이 아니기 때문에 얼핏 눈으로 봐도 명백히 위조라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 이상 노동청은 제시된 근로계약서만을 보고 판단하거나 경찰에서 판단을 받아 오라고 주문하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8시 출근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용자가 주장하는 것처럼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으로 확정돼도 지금의 급여는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이었다. 휴게실도 없고, 휴게시간을 특정하지 않은 채 수시로 입주민의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작업환경을 근거로 휴게시간 부여가 충분치 못했음을 주장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다. 사용자가 하루 3시간30분의 휴게시간을 적어 놓은 근로계약서를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계약서는 진정인에게 교부한 적이 없어 진정인이 보관하지 않고 있는 계약서였다. 이 계약서대로라면 약간의 미지급금이 발생하지만 기대했던 금액에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 돼버린다. 진정인은 크게 분노하면서 근로계약서를 달라고 했지만 사용자는 노동청에만 제출할 뿐 진정인에게 제시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공식적으로 근로계약서를 교부할 것을 요구했지만 무시당했다. 진정인은 근로계약서 미작성과 미교부에 대한 진정을 노동청에 제기했다.

근로기준법 17조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임금과 노동시간 등 주요 노동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해 노동자에게 교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일 사용자가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근로감독관집무규정 별표3에서는 위반시 시정기간을 14일 부여하고 미시정시 범죄인지하고 수사하도록 하고 있다. 23년 중 최근 3년을 제외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도, 근로계약서를 교부하지 않은 것도 확인됐지만 이 사건 진정은 검찰의 수사지휘를 통해 고의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법 위반을 단정하기 어렵다며 ‘혐의없음’으로 끝났다.

최근 검찰의 수사지휘가 증가하고,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 명백한 법 위반 행위에도 ‘고의성을 조사하라’는 바람에 근로감독관 업무가 늘고 있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임금명세서를 주지 않은 사용자에게 과태료 처분을 한 비율이 1.7%에 불과한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이념으로 구체화된 시민법 체계에서는 불법행위의 고의나 과실을 그 중요 요건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인간은 온전하게 자유롭지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이런 불평등 속에 개인의 고의로 발생한 피해가 아닌 구조화된 피해를 막기 위해 사회법 체계가 등장했고 노동법은 사회법의 대표적인 법이다.

노사관계라는 위계적이고 종속적인 틀에서 사용자의 불법행위 의사는 확인되기 어렵다. 노동자가 편입된 관계와 구조 속에서 불법행위가 발생하면 그 구조를 운영하고, 구조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는 사용자가 불법행위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 노동법의 오랜 논의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노동법은, 아니 우리나라 노동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다시 그 오랜 노동법의 논의를 되돌리고 있다. 다시 사용자의 고의를 확인하라는 것이다. 나는 노동법이 그런 법인지 다시 물을 수밖에 없다.

법은 조문 내용만으로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 법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와 배경, 그 속에서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의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법의 목적에 맞도록 법이 만들어졌는지, 또 법의 목적에 맞게 법이 집행되고 해석되고 있는지까지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온전하게 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온전한 이해를 하라고 법조인이라는 직업이 있고 국민이 세금으로 월급을 준다.

물론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사람을 처벌하지 말라’는 법언은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하다. 노동법을 위반한 사람이 모두 악인이고 엄한 단죄가 필요하다는 말도 아니다. 적어도 노동법을 다루는 집행자들은 어떤 부분에서 사용자의 고의성을 학인해야 하고, 어떤 부분에서 고의성을 추정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깊은 고민을 통해서 오히려 노동법 위반을 줄이고 소위 ‘건강한’ 노사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