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산재보험에 해당하는 제도로 독일에는 법정재해보험(German Statutory Accident Insurance·DGUV)이 있다. 독일 법정재해보험은 민간과 공공부문의 법정재해보험 기관들의 우산 조직의 이름이기도 하다. 독일에서 일로 인한 부상과 질병에 대해 법정재해보험을 제공하는 기구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에 복수로 존재한다. DGUV 체계 하에서 민간부문 노동자에게는 직업보험협회가 업무로 인한 부상과 질병에 대비해 법정재해보험을 제공한다. 공공부문 노동자를 위해서는 재해보험기금이 같은 역할을 한다.

9개 직업보험협회와 17개 재해보험기금은 법정재해보험에 관한 법률인 독일 사회법 7권에 근거한 사회보장기구다. DGUV에는 전문인력 500명과 행정사무지원인력 450명 등 1천명 안팎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DGUV 자체적으로 독일 전역에 서북지역, 동북지역, 서부지역, 중부지역, 서남지역, 동남지역 등 모두 6개의 지역본부를 두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DGUV가 관장하는 법정재해보험의 피보험자는 6천310만 명에 달한다. 75%는 업무와 통근으로 인한 부상과 질병에 대한 보장을 받는 노동자다. 나머지 25%는 학업으로 인한 부상과 질병에 대한 보장을 받는 어린이와 학생이다. 기업 320만곳, 교육기관 14만5천곳, 공공기관 45만곳에서 DGUV 산하 보험기관에 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DGUV는 재해급여, 임시수당, 연금, 간호수당 등의 기본적인 금전 혜택을 제공한다. 이에 더해 가사지원, 이동지원, 심리치료, 보호자지원, 재활운동, 요양시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21년 DGUV 산하 법정재해보험기관들이 민간부문과 공공부문 노동자를 위해 제공한 급여는 현물급여와 연금 등 보상금 등을 포함하여 모두 107억2천만 유로에 달한다. 그 중 44.2%인 47억3천600만 유로는 치료와 재활 등 현물급여로 제공됐다. 55.8%인 59억8천300만 유로는 연금, 일시금, 수당 등 현금으로 줬다. 같은 해 학생재해보험에 따른 보상은 모두 4억7천만 유로가 지출됐다. 현물급여가 3억330만 유로, 현금보상이 1억3700만 유로였다.

DGUV 체계의 특징은 법정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지배와 통제를 벗어나 자율적 운영이 보장된다는 점이다. DGUV 및 산하 보험조합들의 의사결정은 보험료를 내는 사용자와 보험혜택을 받는 피보험자 대표로 구성되는 보험협회대회와 이사회를 통해 이뤄진다. 보험협회대회는 6년마다 이뤄지는 선거를 통해 DGUV 체계를 이끌 이사회를 선출한다.

DGUV 산하 보험협회의 ‘협회’는 결사(association)를 뜻한다. 다시 말해 노사단체처럼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는 단체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보험협회의 의사결정은 선거로 선출된 노사 대표에 의해 이뤄진다.

DGUV는 치료와 재활과 보상은 물론이거니와 예방과 감독업무까지 책임진다. 이를 ‘DGUV 하나로(from a Single Source)’라 칭한다. 예방·치료·재활·보상 그리고 감독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이뤄짐으로써 의사소통과 행정절차에서 칸막이가 사라져 비용 절감을 가능하게 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재해 발생 시 치료와 재활과 보상에서 종합적인 지원을 받고, 사용자 입장에서는 일선 현장에서 일어나는 부상과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응급조치, 의료진의 전문적 처치, 약품 및 보조장구 제공, 심리치료, 병원과 재활기관의 입원치료, 장애인 간호, 장애연금, 교통비 지급, 재활 지원 등의 피보험자에게 입체적인 보호와 양질의 사회보장이 제공된다.

DGUV의 예방 활동과 관련해 주된 관심은 근로감독이다. 독일사회법전 7권 14장에 의거해 DGUV 산하 보험조합들은 법정 예방 활동의 일환으로 근로감독관을 둬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DGUV는 산하 보험조합들과 함께 안전보건에 대한 연구조사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DGUV는 직업안전보건연구소(IFA), 일과건강연구소(IAG), 예방직업의학연구소(IPA) 등 3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연구소는 각자의 독자적 영역에서 전문성을 추구하면서도 DGUV 체계 하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는 사업의 집행과 기관의 운영에서 노사의 실질적인 참여 없이 사실상 정부가 일방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와 달리 독일 법정재해보험제도가 갖는 특징은 산하 보험협회와 기금들이 자치권을 가진 행정조직이라는 점이다.

또 노동재해와 관련된 사회보험에서 두 나라의 또 다른 차이점은 우리나라의 산재보험 제도는 ‘신청주의’ 방식에 따라 운영하는데 반해, 독일 법정재해보험은 ‘직권주의’ 방식의 급여지급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직권주의 접근법은 근로감독 기능이 DGUV 체계에 들어가 있는 데서 잘 드러난다. 따라서 독일 법정재해보험 관련 기관은 합리적 재량에 의해 행정절차를 수행할지 여부와 언제 수행할지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예방과 감독과 치료와 재활과 보상이 사실상 따로 노는 우리나라와 달리 예방·감독·치료·재활·보상이 모두 ‘독일 법정재해보험(DGUV) 하나’의 체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은 독일 재해보험제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코로나 19위기 상황 대응의 중심축이었던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역사적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캠페인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과 독일의 DGUV 사례는 선보장의 중요성과 실현 가능성에 더해 예방·감독·치료·재활·보상에서 ‘산재보험 하나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이 글은 곧 발간될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총서 <산재보상보험급여의 선보장제도 도입방안>에서 독일의 법정재해보험 부분을 참조한 것입니다.

 

윤효원 객원기자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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