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민지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최근 한 근로자복지센터에서 강의 요청이 왔다. 요청한 강의 주제는 ‘노란봉투법’에 대해서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노란봉투법은 어떤 내용인지, 지금 쟁점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왜 하필 노란봉투인지를 궁금해했다.

우리 헌법은 33조에서 노동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이라는 노동 3권을 보장한다. 그중 파업으로 대표되는 단체행동권은 노동자에게 사용자에 대해 노동을 제공하지 않을 무기를 부여한다. 일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노동자에게 노동하지 않음으로써 사용자에게 맞선다는 것은 마치 자신의 생존을 건 투쟁이다. 우리 법은 이러한 투쟁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가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에 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러한 규범과 현실 법 적용의 괴리 속에서 탄생됐다.

파업투쟁 이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손해배상 소송과 형사입건이 남는다. 파업투쟁이 승리하든 그렇지 않든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 파업투쟁이 종료되면, 때로는 파업 도중에라도 노동자들은 손해배상 소송의 피고가 된다.

노동자들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불법적 운영에 대해서 파업권을 행사한다. 그러나 파업의 이유가 된 불법행위는 3심의 판결이 날 때까지, 10여년 동안에도 시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수차례 파업을 한다. 그러면 회사는 파업 참여자들에 대해 노동자들이 일을 멈춰서 발생한 영업손해에 위자료를 청구한다.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면서 개인의 재산을 가압류하기 시작한다. 노동자들의 급여통장과 집주소를 알고 있기 때문에 급여와 주택보증금은 가장 손쉬운 압류 대상이 된다. 대개 회사는 손해배상액을 엄청난 액수로 잡는다.

요즈음에는 여기에 더해 물리적 충돌이 없음에도 모욕이나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위자료 청구, 안전사고가 발생해서 작업을 중지한 경우에도 일단 무턱대고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 등 날로 ‘손해’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인지대와 송달료도 늘어나지만 회사는 이를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도 노동자를 향해 자신들의 ‘손해’를 청구한다.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을 진압하면서 동원한 국가자산이 망가졌다거나 경찰이 부상당했으므로 그 수리비나 치료비를 배상하라는 내용도 포함되곤 한다.

삼성그룹은 이러한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를 노동조합 해산 전략으로 삼은 바 있다. 삼성그룹의 2012년 노사전략 문건에는 “고액의 손해배상 및 신청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을 가중시켜 활동을 차단하고 식물노조를 만든 뒤 노조해산 유도”가 무려 ‘전략’으로 제시돼 있다. 자본은 노동조합을 붕괴시키고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굴복시키기 위해 법을 역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은 2011년 전원합의체 판결로 ‘정당한 파업’의 범위를 정했는데, 근로조건의 개선에 관해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며 조합원 찬반투표 등의 절차를 모두 지킨 경우 적법한 파업이지만,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과 막대한 손해를 초래한 경우 그러한 파업권 행사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 기소가 이뤄지는 근거이기도 하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파업권을 무력화하려는 이러한 법 해석을 멈추도록 하는 것에 첫 목적이 있다. 노란봉투법은 발의된 법안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쟁의행위의 범위를 확대하고, 원청도 교섭 대상인 사용자로 인정하도록 사용자성의 범위를 확대하고, 노동자에게 과도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취지의 조항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삽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급여를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 주던 시절, 급여봉투는 대개 노란색이었다. 노란색 월급봉투는 노동자의 생계를 의미한다. 기본권인 단체행동권을 행사하는 노동자가 생계를 위협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 노동자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노란봉투법인 셈이다.

지금 나에게 닥치지 않았다고 침묵한다면 그들이 겨누는 칼날이 나를 향했을 때 곁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노동자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법은 개정돼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입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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