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명기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대상판결 : 서울고등법원 2022. 10. 12. 선고 2022나2004418(본소), 2022나2004425(반소) 판결

Ⅰ. 사건의 개요

피고들은 석유화학 및 섬유제조업을 영위하는 주식회사에 재직 중인 근로자들이다. 회사는 정기휴가 4일을 폐지하는 내용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동의대상 근로자들 449명을 66개 팀별 단위로 분리해 의견을 취합하는 방식으로 근로자들로부터 동의를 받았으나, 피고들이 적법한 동의절차가 아니라고 문제 삼자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이 유효함을 확인하는 소를 제기했다.

Ⅱ. 서울중앙지법(1심) 판시 내용

원고는 2015년 12월8일 이 사건 공고를 하면서 ‘개정전·후 취업규칙 비교표’를 첨부하면서 ‘정기휴가 제도가 폐지’됨을 명확히 표시했던 점, 근로자들은 이 사건 공고를 통해 이 사건 공고에 기재된 취업규칙 변경내용인 ‘정기휴가 제도 삭제’됨을 알고 있어 팀장별 회의 내지 팀장의 안내, 팀장의 이 사건 동의서의 교부가 근로자 상호 간에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가 됐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보면, 이 사건 취업규칙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Ⅲ. 서울고법(2심) 판시 내용

① 원고는 2015년 12월8일 사내게시판에 이 사건 공고를 전산으로 게시했으나, 근로자들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한 내용이 취업규칙 개정 내용에 포함돼 있다는 점을 바로 알 수 있거나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문구는 기재돼 있지 않았다. 원고는 2015년 12월8일부터 2015년 12월11일까지 4일 동안 수차 회의를 통해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다고 주장하나, 원고 스스로도 위 설명회의 주관자가 각 팀장들이라고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위 설명회가 어떠한 내용과 방식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객관적인 자료가 부족하다는 점으로 봐 근로자들에게 적절한 방법으로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한 공지와 설명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②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의 동의대상 근로자들은 449명이었는데, 원고는 이들을 66개의 팀별 단위로 분리해 의견을 취합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이는 평균 6.8명 정도가 1개의 단위가 돼 찬반 회의를 거친 셈이다. 4일 동안 근로자들로부터 동의 유무에 관한 의사를 취합했는데, 원고가 영위하는 사업 특성상 출장 등이 빈번하고, 휴무 없이 생산이 계속되는 점을 고려할 때, 449명에 이르는 근로자들로부터 상호 의견교환이나 토론 등 집단적 논의를 거치도록 보장하기에는 촉박한 시간만을 부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종합하면, 동의대상 근로자들 전원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관한 회의 개최 등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을 통해 찬반 의견을 교환했다고 보기 어렵다.

③ 약 88.4%가 ‘찬성’란에 서명을 한 사실이 인정되나 원고가 동의대상 근로자들 전원에게 ‘정기휴가 제도 폐지’가 취업규칙 변경에 포함돼 있고 그 구체적인 내용과 의무가 무엇인지를 주지할 수 있도록 정당한 방법으로 이를 공고·설명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 동의대상 근로자들 전원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해 회의를 통해 찬반 의견을 교환한 후 동의서에 그에 대한 찬반 서명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에 비춰, 위 동의 숫자만으로는 근로자들이 ‘정기휴가 제도 폐지’에 대해 과반수 동의를 함으로써 그에 대해 진정한 찬성의 집단적 의견을 표시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Ⅳ. 판결의 의의 : 근로자 과반수 동의 의미를 제시

대법원은 “취업규칙의 변경에 의해 기존의 근로조건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면 종전 근로조건 또는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고 있던 근로자의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에 의한 동의를 요하는데, 여기서 회의방식에 의한 동의라 함은 사업 또는 한 사업장의 기구별 또는 단위 부서별로 사용자측의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근로자 간에 의견을 교환해 찬반을 집약한 후 이를 전체적으로 취합하는 방식도 허용된다”며 이른바 기구별·부서별로 회합해 찬반의사를 취합하는 방식의 동의를 허용해 왔다(대법원 1994. 9. 23. 선고 94다23180 판결).

사업장이 산재해 있고 업무의 특성상 출장이 빈번하거나 휴무 없이 생산을 지속해야 하는 사업장이라면, 전체 근로자를 회합하기 위해 출장을 못 나가게 하거나 생산을 일시적으로나마 중단해야 한다. 그런데 단 몇 시간이라도 생산을 중단하면 회사는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더구나 10명도 안 되는 근로자들도 한 자리에 모이지 못해 화상회의를 하는 비대면시대에 수백 명의 근로자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는 기구별·부서별 회합 및 찬반 의사 취합도 가능하다고 해석해 왔다.

이러한 ‘회사의 사정’으로 허용되던 기구별·부서별 동의방식은 어느새 언제나 적법한 동의방법으로, 1개의 기구만 있거나 부서가 불과 2·3명으로 이뤄진 사업장에서도 활용되고 있었다.

본 사건에서도 회사는 팀별 동의방식도 허용되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로 이 사건 취업규칙 변경에는 적법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몇 개의 팀들은 팀장을 포함해 2명, 3명으로 구성돼 있어 물리적으로 ‘회의’를 해 의견을 교환할 수도 없었지만, 그저 팀별 동의방식은 적법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라는 것이다. 1심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이러한 회사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근로기준법의 취지상 ‘회의 방식’에 의한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요구하는 이유는 ‘집단 의사의 주체로서 근로자’의 의사를 형성하기 위함이므로, 사용자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전체 근로자들의 회합이 어려워 단위 부서별로 회합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사용자는 부분적 회합을 통한 의견취합을 하더라도 전체 근로자들의 회합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근로자들이 집단 의사를 확인·형성할 수 있도록 상당한 조치를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1심과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았다. 전체 근로자들이 회합해 찬반의사를 교환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의 원칙적인 모습이며 ‘전체’ 근로자들의 회합으로 평가될 수 있을 정도의 기구별·부서별 회합 및 동의만 예외적으로 허용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서울고법은 2017년에도 본 판결과 매우 유사한 내용의 판결을 내린 바 있다(서울고법 2017. 1. 13. 선고 2015나2049413 판결, 상고심절차에 관한 특례법 4조1항에 따라 2017. 5. 31. 대법원 2017다209129 판결로 상고 기각). 즉 본 판결에서 새로운 법리를 제시한 것은 아니다. 이처럼 우리 법원은 극소수의 근로자들을 1개 단위로 묶어 취합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사실상 근로자 개개인으로부터 동의를 받는 효과를 누리려는 회사의 꼼수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지만, 여전히 근로기준법을 형식적으로만 준수하는 방법으로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떠한 형태든 기구별·부서별 동의만 받으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는 데 본 판결의 존재가 고동이 됐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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