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적으로 지금의 금융시장 상황은 모두 레고랜드 사태에서 촉발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의 기저에서 자금수급 상황이 평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레고랜드 사태는 국내 자금시장 경색 징후를 촉발한 일종의 방아쇠(트리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일 한국금융연구원이 최근 금융시장 및 자본시장 위험요인 점검 보고서를 내놓았다. 레고랜드발 자금시장 경색 배경에는 단일 원인이 아니라 다양한 금융시장의 징후가 내재해 있는 것이다. 보고서를 쓴 김영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금융시장 경색 징후를 단번에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레고랜드, 시장 참여자 신뢰 근본적으로 붕괴시켜”

레고랜드 사태의 여파가 큰 것은 여타의 다른 금융시장 참여자와 달리 사실상 지방정부의 보증 불이행 선언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참여자 중에서도 국가나 지방정부는 상환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금융시장에서 많은 기업이 도산하거나 지급불능 사태에 빠지곤 하지만 레고랜드 지급보증 미이행 발표는 법적 가능성과 정당성 여부를 떠나 금융시장 근간에 깔린 투자자의 신뢰를 일순간 무너뜨렸다”고 짚었다. 상환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방정부가 보증 불이행 선언을 하면서 신뢰도가 그보다 낮은 기존 금융시장 참여자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한편 강원도청은 지난 16일 언론에 자료를 배포하고 “강원도는 단 한 번도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적이 없다”며 “강원중도개발공사 부실경영 개선을 위해 재무상태를 개선하고 채무이행을 충실히 하고자 강원중도개발공사 기업회생 신청 계획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강원도의 해명에도 자금시장 경색은 피할 수 없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9월27일 이후 국고채 금리와 특수채·은행채·회사채 금리가 모두 올랐다. 일부 채권발행은 수요예측 과정에서 발행을 취소하기도 했다. 채권은 통상 발행하는 회사 또는 금융사가 채권을 매입할 자금시장 참여자들과 미리 협상을 해 수요를 파악하고 금리를 정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 단계에서 채권 구매자를 사실상 찾지 못해 발행을 취소한 것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런 사태를 야기한 게 레고랜드인 것은 사실이지만 배경에는 여러 선행 요인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에 레고랜드 이전부터 시장 돈줄 말라

가장 큰 요인은 물론 급격한 금리 인상이다.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금리가 모두 올랐고 채권도 마찬가지였다. 채권발행 자체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적자 해소를 위해 채권을 찍어 내고 있는 한국전력공사가 있다. 한전이 올해 찍어 낸 채권은 10월 기준 20조2천억원이나 된다. 이는 같은 기간 모든 공사가 발행한 공사채 29조9천억원의 3분의 2에 달하는 규모다. 게다가 한전채는 발행금리가 6%에 달한다. 단순히 생각하면 2~3년 만기 6% 이율의 예금인 셈이다.

여기에 규제비율 준수를 위한 은행채 발행도 이어졌다. 은행채는 부실위험이 회사채에 비해 높지 않아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자 입장에서 매력적인 채권이 쏟아지다 보니 일반 기업의 회사채 발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흐름이 레고랜드 사태 이전부터 자금시장을 냉각시켰다는 것이다. 요인이 다양하다 보니 해결도 어려울 전망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근본적으로 한전채와 은행채 같은 우량채권 순발행 규모를 축소해 자금 쏠림을 완화할 정책이 필요하다”며 “최근 미국 인플레이션 추이가 낮아져 내년 초가 되면 시중 자금시장 수급여건은 지금보다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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