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최근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보장’을 촉구하는 반가운 언론 사설을 접했다. 지난달 25일 “매일경제에 실린 근로자 스스로 안전 챙기는 ‘작업중지권’ 기업도 적극 장려해야”(22.10.25)라는 제목의 사설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의아했다. 경제지의 특성상(?)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이를 보장해야 한다는 논조를 담은 기사가 좀체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사설을 썼을까’라는 의구심도 잠시 있었지만, 해당 사설은 시종일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주요 논지는 이렇다. 사업주·경영자를 형사처벌해 중대재해 발생을 막겠다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의 효과는 별로 없다. 올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최근 통계만 보더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한 건수가 전년도 대비 큰 폭의 차이가 없으므로 사실상 그런 셈이다. 그럼에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기업 문화를 만들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그게 ‘작업중지권’이란 것이다.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적극 사용해 중대재해 위험을 회피할 수 있으면 중대재해 발생으로 ‘기업평판’에 타격을 입을 일도, 고용노동부의 장기간 작업중지명령도 피할 수 있어 오히려 이득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본래 취지를 훼손하고 무용론을 펼치는 것이 괘씸하긴 했다.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도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손해 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오히려 이득이 되며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으므로 기업문화로 정착해야 한다는 제기’는 무척이나 타당한 주장이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중앙일보도 “‘작업 중단합니다’ … 근로자 스스로 안전 챙기는 ‘작업중지권’”(10월23일자)이라는 기사를 통해 삼성물산에서 시행하는 작업중지권 전면 보장 실태를 다뤘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삼성물산의 현장에서 실시하고 있는 작업중지권리 선포식 및 이와 연계된 보상과 포상제도 등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이렇듯 기업과 경영계에서도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 변화가 조금씩 생기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미 법에도 보장된 권리를 기업이 나서서 행사하도록 독려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머물러서는 안 되고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법이 보장하고 있지만 ‘법에만 있는 권리’로 생각되는 현실, 현장에서 실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적극 살피고 실질적인 권한으로 일터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이고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지면의 한계로 몇 가지만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위험작업 회피·거부나 대피 같은 예방적 차원의 작업중지가 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일터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노동자가 사후적으로도 작업중지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개선으로 이어지는 후속조치가 정착돼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발생의 급박한 위험에서’ 예방적으로 작업중지나 대피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위험이 현실화해 노동자의 신체가 훼손되거나 상해를 입었을 때 즉각적으로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노동재해가 발생해도 작업중지가 불가능한 일터에서, 예방적인 차원의 작업중지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단적인 예가 지난 2일 농심의 부산공장에서 20대 여성노동자가 냉각기에 끼어 어깨 골절 등 중상을 입은 사고다. 재해자가 이번 사고에 앞서 같은 공정에서 두 번이나 재해를 입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9개월 전 다른 노동자도 끼임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처럼 현장에서 노동재해가 발생해도 즉각적인 작업중지 조치와 그에 따른 현장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재발은 필연적이다. 사람이 다쳐도 작업중지는 커녕,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업무가 재개되는 현장에서 예방적 차원의 작업중지가 가능하다고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노동자 개인뿐 아니라 노동자 집단에게도 작업중지권이 부여돼야 한다. 가령 일터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노동자위원이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에게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 작업중지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일터에서의 위험을 알 권리,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참여할 권리와 따로 떼어 놓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집단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보장해야 비로소 모두의 권리로 정착될 수 있다.

지난 9월 김용성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장과 2명의 간부는 사측에게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안전센서가 작동하지 않고 기계가 평소보다 빠르게 회전해 노동조합 차원에서 안전조치를 요구하며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것을 사측이 문제 삼은 것이다. 노동자 개인이 회사를 상대하기 버거운 현실에서 노동조합으로 뭉쳐 안전을 요구하며 작업중지를 행사한 것도 번번이 이렇게 송사에 휘말린다. 이런 형국에서 개인이 작업중지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하며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사해야 할 위험작업 거부, 회피, 대피 등의 작업중지권이 일터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기업 차원의 작업중지권 행사 장려를 넘어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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