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진일 충남노동건강인권센터 대표(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처음엔 지독한 가짜뉴스라고 생각했다. 아니, 제발 그러기를 바랐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한 후에는 희생자의 숫자만이라도 오보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8년 전과 같은 오보는 없었다. 그날 TV에서 바다에 잠긴 배를 목도했던 순간은 그대로 복제돼 돌이킬 수 없는 참담함으로 남았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던 다짐이 무색하게 우리는 다시 가족과 지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 일상의 안부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 있는지’ 물어야 했다. 그대들은 안전한지, 자녀들은 무사한지 물어야 했고, 걱정할 사람들을 위해 SNS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려야 했다.

세월호 참사 후 8년, 우리는 어디까지 와있을까? 이태원 참사 이후 정부와 지자체, 경찰 당국부터 언론을 비롯한 대중들의 반응과 태도야말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여기까지 밖에 오지 못한 이유일 것이다. “충분한 인력을 배치했어도 막을 수 없었던” “주최측이 없는” “행사가 아닌 일종의 현상”이라는 책임자들의 인식과 발언들, 희생자들에 대한 온갖 혐오와 차별을 가득 담아 배설하는 인면수심의 망언들, 구조적인 원인보다는 자극적인 ‘범인 찾기’에 열광하는 자들이 연일 비판과 비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런 현상들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늘상 반복해 온 일이다.

공사장에서 건설노동자가 떨어지면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은 노동자를 탓했고,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목숨을 잃으면 방호장치를 해제한 희생자의 과실을 먼저 들춰 냈다. 때로는 동료의 과실을 따져 가해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반면 시간과 생산량에 쫓겨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일해야 했던 저간의 사정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과로와 직무스트레스로 노동자가 자살하면 고인의 채무관계부터 가족관계까지 들춰 내며 고인의 죽음을 개인적인 문제라고 음해했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노동하는 라이더가 배달 중 사망하면 누가 사업주인지 특정할 수 없다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쇼핑몰에 화재가 발생해 하역장에서 일하던 지입차주가 사망하자 쇼핑몰 사업주가 자기 직원도 아닌 사람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따져 물었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최소한의 법리적 한계 안에 가둬 왔고, 재해의 진실과 진상이 아닌 표면적 현상에만 주목해 왔다. 희생자의 존엄을 보호하기는커녕 명예를 훼손하고 비난해 왔다. 이를 조금이라도 극복해 보고자 실질적인 경영책임자에게 시민과 노동자에 대한 포괄적 안전확보 의무를 부과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어 냈지만, 1호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기소된 기업은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시행령 개악은 초읽기에 들어가 있다.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조차 헌법에 위배된다는 시비를 당하는 사회라니. 생각할수록 참담하지만 마음을 가다듬자. 그 참담함이 아무리 크다 한들 끝내 친구와 가족을 잃은 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은 그들의 존엄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토론하고 목소리를 모아 내야 할 때다.

무엇보다 먼저 정부가 책임을 온전히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이미 여러 발언과 행동으로 정부의 속마음이 드러나 버렸다.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로 쓰고 ‘참사’가 아니라 ‘사고’로 부르라는 방침, 시민들의 비판적 반응을 정치공세로 취급하며 대정부투쟁으로 이어질까 노심초사하는 경찰청 동향파악 문건까지. 책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들을 실제로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에 따른 사과를 이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희생자와 가족들의 위로와 명예 회복, 참사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 재발방지로 가는 첫걸음이다.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정부에게 책임이 있는가’가 아니라 ‘그 책임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다.

책임을 구체화하는 것은 결국 면밀하고 정확한 진상조사다. 이미 참사 당일의 경찰 신고내역, 다른 축제 대응사례들이 공개되면서 책임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참사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었고, 핼러윈 축제 같은 형식의 행사가 이례적인 것도 아니었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참사 희생자와 가족들의 참여권과 결정권이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특별조사위원회 같은 형식도 가능할 것이고 새로운 형태의 민관합동조사단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지난 참사의 희생자들이 진상규명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모든 의혹을 해소하고 구조적·본질적 원인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단편적으로 몇몇 행위자의 잘못을 탓하는 조사가 아니라 왜 안전을 위한 조치들이 이행되지 않았는지, 예측하지 못했다면 왜 그랬는지, 대응이 부족했다면 왜 그랬는지 밝혀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 조사대상 중 하나인 경찰의 주도로 사고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이 길어지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많은 의혹과 상처들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와 정치의 역할이 어느 때 보다 절실하다.

아직 더 많은 눈물과 아픔이 남아 있을 것이다. 명확한 원인규명과 책임 묻기, 피해에 대한 보상과 회복을 위한 지원,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까지. 참사의 희생자와 가족들은 물론이고 직·간접적으로 참사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는 데는 이 모든 일들이 필요하다. 멀고 험한 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살가운 일상이 되는 삶을 되찾기 위해 걸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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