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이태원 참사 이후 이틀을 멍한 상태로 보냈다. 종일 사고 소식을 들여다보고 사건을 계속 검색한다. 계속되는 죽음의 소식에 두려움이 느껴진다. 이게 트라우마구나 생각한다. 홍수가 나면서 일가족이 지하에 있는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밤샘 노동을 하던 여성노동자는 홀로 일하다 배합기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광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매몰돼 아직 구조되지 못하고 있다. 매일매일 전해지는 산재사망 소식, 매일매일 전해지는 사고 소식. 이를 들은 우리는 이 사회에서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우리를 지켜 줄 정부는 없으니 홀로 살아남든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든 모두 당신의 운에 달렸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CPR을 하고,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해서 애를 쓰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이전의 많은 참사에서도 유가족과 피해자들, 노동자들과 시민들은 무기력하게 있지 않았다. 산재·재난 피해 유가족들은 기업의 살인을 막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만들기 위해 싸웠고, 비록 한계가 있지만 법을 만들어 냈다. 시민들은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단지 그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재발방지대책을 만들기 위해 서명도 하고 집회도 했다. 그런데 정작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은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생명과 안전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갖고 있는 것일까.

이태원 참사로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됐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애도하는 동안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은 면피성 발언을 쏟아 내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브리핑에서는 ‘주최가 없는 행사’여서 관리도, 책임도 묻기 힘들다는 답변이 반복됐다. 용산구청장은 핼러윈 데이가 “축제가 아니며”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지역축제’는 지방자치단체가 안전관리를 책임지도록 돼 있기 때문에 회피하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장관도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주최측이 없으면 더더욱 정부가 안전을 관리해야 하는 것인데, 애초에 안전관리를 자신의 책임이라고 여기지 않은 것이다.

‘안전’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시민들과 다른 것 같다. 노동자와 시민에게 안전은 생명을 지킬 권리다. 노동자와 시민들은 정부가 위험을 예방할 것이라고 믿고, 설령 위험에 노출됐다 하더라도 신속하게 구조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정부에 그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경찰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임무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핼러윈에서도 경찰이 투입한 인력은 마약과 성범죄 사범 단속 인력이었다. 시민들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즐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경찰의 책무라는 인식 자체가 없다. 그러니 집회에는 그토록 많은 경찰력을 동원해도, 핼러윈에는 안전을 위한 경찰을 배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있는 한 정부와 경찰에 “안전을 책임지라”고 요구하면, 그들은 ‘안전’을 빌미로 시민들을 통제하는 데 힘을 쏟는다. 코로나19 시기에 집회에 대해서만 강력하게 통제하고 막아섰던 기억을 떠올려보라. 특히 이태원 참사 관련 긴급 대책마련을 위한 시·도부교육감회의에서 교육부 차관은 “11월5일 개최하려는 중고생 촛불집회 역시 학생 안전이 우려되는 행사”라면서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 필요한 조치가 집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의미라는 것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이 정부는 손쉽게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만을 ‘안전’으로 여긴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안전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정부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지금까지 참사 유가족과 노동자, 그리고 시민들이 애써서 안전을 위한 제도를 마련해 왔듯이, 안전을 권리로 규정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노동자들이 산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노동자의 참여권과 작업중지권을 요구했던 것처럼, 시민들이 위험에 대해 알고 안전대책에 시민들이 참여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참사의 원인규명을 정부에만 맡기지 말고 시민들과 유가족의 의사가 반영되는 독립적 조사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2020년 말에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생명안전기본법’이 하루빨리 제정돼야 하는 이유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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