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이 만 스무 살을 맞았다. 2002년 7월 창립한 노노모는 ‘사용자 대리를 하지 않을 것’을 회원 자격요건으로 정하고 있다. 현재 전국 124개 노조·노동사회단체·노무법인 등에서 일하는 공인노무사 209명이 함께하고 있다.

28일 지난 20년간의 노노모 활동을 조명하는 창립 20주년 행사 ‘노노모 함께 20년 페스티벌’이 열린다. <매일노동뉴스>는 이번 행사를 앞두고 노노모 12대 회장인 김재민(47·사진) 노무사를 만났다. 김 노무사는 “사람은 스무 살 성년이 되면 활기차고 진취적이게 되는데, 조직은 20년쯤 되면 둔탁하고 경직될 수 있다”며 “그런 조직이 아니라 스무 살 청년처럼 활기차고 진취적인 조직으로 발전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노무법인필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노동개악 막았던 경사노위 앞 천막농성 가장 기억 남아”

- 노노모 9·10대 사무국장과 11대 부회장을 지냈다. 어떤 계기로 노노모 활동에 참여하게 됐나.
“사실 처음 노무사가 됐을 때는 노노모를 알지도 못했고 노노모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활동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면서 일반적인 노무사처럼 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다. 2007년 12월 처음 노무법인에 입사했을 때 기존에 계시던 노무사님들이 다들 노노모 회원이었다. 그러다 보니 노노모에 가입하지 않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노노모에 가입해서 오래 활동하다 보니 집행부까지 됐다.”

- 노노모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2008년 1월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 임금체불 사건을 맡았는데 아무래도 첫 번째 사건이다 보니 기억에 남는다. 그때 날씨가 엄청 추웠는데 노동자분이 반팔 티셔츠에 가죽점퍼만 걸치고 노동청에 조사를 받으러 왔었다. 영세한 금형 사출 공장에서 3년 동안 기초적인 숙식만 제공받고 임금은 아예 지급받지 못한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체불된 임금 전액을 받지는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 2019년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앞 릴레이 단식에도 참여했다.
“당시 경사노위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합의한 데 이어 쟁의행위 기간에 제한을 두고 쟁의행위 기간 중에 대체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한편 부당노동행위 처벌 조항을 없애는 사용자측 요구안을 논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사노위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농성을 통해 그런 논의가 중단된 게 기억에 남는다.”

“SPC 위생이나 안전, 노동자 생명보다 효율성에 치중”

- 노노모는 노동자와 노조에 대한 법률자문 외에도 노동법률 교육사업, 법·제도 개선사업, 노동행정 감시사업, 주요 노동현안 대응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가장 주력하는 사업은 무엇인가.
“크게 세 갈래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과 노란봉투법,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과 관련한 활동이다.”

- 정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일단 법률이 제정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시행도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법 자체를 흔들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사업주가 ‘편하게 앉아서 돈이나 벌면 되지’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 되고 ‘여기 사람이 일을 하는구나. 이 사람이 안 아프고 안 다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 최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국회 앞 농성에 들어갔다. 어떤 점에서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보나.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다고 해서 800번을 환생해도 갚을 수 없는 돈을 손해배상하라고 청구한다는 것은 파업을 아예 하지 말라는 거다. ‘네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으면 파업 같은 걸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파업이라는 것 자체가 사실 일을 안 하는 것인데, 일을 안 했다고 해서 처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게 맞나 싶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파업에 대한 손배소를 과도하게 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에 우리나라밖에 없다.”

- 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원청 사용자가 교섭에 응하지 않아 파업으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노동 분쟁이라고 하면 대부분 원·하청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청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려고 하청 사업자와 교섭을 해 봤자 하는 말은 ‘나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는 것이다. 원청을 찾아가면 원청은 ‘너희들은 우리 노동자가 아니다’고 얘기한다. 이렇다 보니 대우조선해양 파업 때처럼 원청 도크에 (스스로를 가두려) 용접하는 일이 생긴다. 원청은 하청노동자에 대한 지배 통제력을 사실상 가지고 있는데 딱 하나 노조법상 사용자로서의 의무는 피하고 있다.”

-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에 공동대표로 참여하고 있다. 지난 15일 파리바게뜨 빵을 만드는 SPL 평택공장에서 한 여성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런 사고가 왜 일어났다고 보나.
“지난해 던킨도너츠 공장에서 밀가루 반죽에 유증기가 떨어졌다는 보도가 화제를 모았다. 이번 사태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본다. SPC라는 기업 자체가 위생이나 안전, 노동자의 생명보다는 효율성에 치중하는 기업이라서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 것 같다.”

- 지난 1월 회장에 취임하면서 ‘새 정부 노동정책에 적극 개입해 노동인권 실현이라는 노노모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혹시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사실 정부에 노동정책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고민해도 노동정책다운 노동정책은 없는 듯하다. 원·하청 상생협약을 조선업 구조개선 대책이라고 내놓는 걸 보면 노동정책이라는 게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경사노위 위원장이나 관료 인선을 봤을 때 노조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적대시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지금은 후순위로 밀려 있는 노동정책에 정부가 관심을 가지게 됐을 때가 정말 걱정된다.”

“적금 깨고 보험 깨면서 버틴 것 자체가 가장 큰 성과”

- 노노모가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그간의 성과를 평가한다면.
“간단하게 말해서 20년을 버틴 것 자체가 성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1~2년 하다가 ‘그냥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어요’ 하고 그냥 사라졌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서 20년을 맞이했다는 것 자체가 결국 최대 성과가 아닐까 싶다.”

- 그렇게까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용자 사건과 노동자 사건은 수임료가 100배 차이가 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무실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이너스 통장 한도까지 긁어 가면서 사무실을 유지하다가 그것도 안 되면 보험이나 적금을 깨면서 버텨 온 20년 세월이다.”

-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을 말해 달라.
“사실 새 정부가 5년 임기 중 아직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4년6개월을 얼마만큼 폭주할지 모르겠다. 좀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대응할 생각이다.”

- 28일에 20주년 행사를 여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노모가 시작된 20년 전 그날에 대해 옛 회원을 인터뷰하고 노노모 20년을 퀴즈로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철도 파업노동자 징계 사건처럼 그간 노노모가 공동대리한 사건과 직장갑질119에 참여하는 회원들의 활동 내용도 소개할 계획이다. 노노모 회원들이 10여년간 매일노동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묶어 <어떤 노무사들>이라는 책도 발간한다. 한 줄 한 줄 역사가 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에 관한 노노모의 시각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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