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진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지난주 금요일, 존재 자체를 잊고 있던 그룹채팅방에서 뜬금없이 메시지가 울렸다. 해당 그룹채팅방의 이름은 ‘이산화탄소 사건대응’이다. 2018년 9월4일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이산화탄소 누출로 인해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하고, 1명의 노동자가 중태에 빠진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수원지역 시민사회를 주축으로 구성됐던 방에 갑작스레 소환된 것이다. 이유인 즉 해당 사고가 벌어진 후 ‘4년1개월’이 훌쩍 지난 이달 7일 경남 창원의 DL모터스에서 이산화탄소로 인해 또다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언론에 보도된 사고 경위는 ‘4년1개월 전 사건’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었다. 화재감지기의 오작동으로 자동 소화설비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돼 부품 수리를 하던 노동자들이 이를 흡입하고 쓰러졌고, 이들을 구조하려던 다른 작업자들도 연거푸 가스를 흡입해 사고를 당한 것이다. 사상자가 발생한 시간과 장소만 다를 뿐 사고경위가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의 죽음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어떻게 곱씹고 있는지, 이를 교훈 삼아 어떻게 예방으로 이어 가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18년 9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발생한 소화설비 이산화탄소 누출사고 또한 2014년 3월 동일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그대로 방치해 노동자 사망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던 바 있다. (묘하게 이번 사건 또한 4년 만에 재현됐다!) 2014년 사고 당시 고용노동부가 삼성반도체에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를 청정약제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으나 삼성이 이를 무시했다. 2018년에는 노동부가 심사하고 확인하는 공정안전보고서(PSM)에도 이산화탄소 설비에 대해선 대비가 누락됐기 때문에 당시 삼성뿐만 아니라 노동부 관리책임 또한 여론의 심판대에 올랐던 바 있다. 그리고 올해 10월 창원 DL모터스에서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로 인해 또다시 노동자가 목숨을 잃게 되는 사건이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모든 산재 사망사고가 그렇지만 DL모터스에서 발생한 사고는 막을 수 있던 사고였음이 분명하다.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와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경남운동본부가 사고 발생 이후 현장조사 등을 통해 밝힌 내용이 이를 정확히 확인해 준다. 밀폐장소에서 사용하면 사람에게 치명적인 이산화탄소 소화설비가 노동자들이 상주하는 공간에 설치돼 있었던 점, 사고 발생 하루 전 소방설비 오작동이 확인돼 다음날 점검을 예정했던 터라 소화설비가 작동할 것이라는 알람이 켜져만 있었어도 이를 알고 작업자들이 대피할 수 있었던 점, 비상 상황 발생시 대피훈련이 없었다는 점 등이다.

이산화탄소 소화설비로 인한 노동자 사망사고는 올해 초 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관련 예방 매뉴얼을 마련할 정도로 빈번한 사고다. 해당 매뉴얼에는 앞서 밝힌 삼성반도체 사고를 포함해 사고사례를 적시하고 있다. 2011년·2012년·2014년·2015년·2018년·2020년·2021년 총 10건의 사고로 14명의 사망자, 31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음을 밝히며 안전관리에 철저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방청 또한 지난 7월 말 “소화설비용 이산화탄소 누출 등에 따른 질식사고 예방을 위해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의 화재안전기준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럼에도 관련 사고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향후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사용 자체를 엄격히 규제하거나 제한적으로만 설치를 허용하는 등 엄격한 관리대책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당장은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의 설치 현황을 파악해 점진적인 개선을 해 나가야 한다. 특히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처럼 값싼 비용을 이유로 대체재가 충분히 존재함에도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현실을 방치해서 안 된다. 누군가의 희생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또 다른 희생을 통해 확인하는 안타까움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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