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름북스
▲ 나름북스

나는 임신 9개월차를 지나고 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몸의 무게와 부피, 임신과 동시에 씌워진 생활의 규약들에 허덕이고 있다. 한편으로 곧 출산휴가를 앞두고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동시에 임신·출산 때문에 ‘남들만큼 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나. 스스로가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것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시간 가운데서 캐런 메싱의 새로운 책, <일그러진 몸>(나름북스)을 만났다. 흥미롭게도 메싱은 이 책에서 1970년대 캐나다 퀘벡의 여성노동자들에게 유급 출산휴가 법이 도입된 시점에 본인이 취했던 입장을 회고하고 있다. 당시 저자는 임신부에게 위험한 노동환경은 남성과 비임신 여성에게도 위험하며, 유급 출산휴가 같은 특별대우가 오히려 여성이 일자리에 접근하는 데 어려움을 줄 것으로 우려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고 어려운 노동환경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업무에 따라 임신은 여성을 끔찍한 결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사실, 그렇기에 임신부는 위험을 감수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음을 고백한다.

성차(sexual difference)는 일터에서 여성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할까? 많은 페미니스트 과학자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성차별을 우려하고, 생물학적 성차에 대한 강조가 고정관념을 조장하며 불평등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 메싱은 이처럼 여성과 남성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할 것을 강조하는 이들을 ‘동일성 페미니스트’로 소개하는 한편 반대편 스펙트럼을 주장하는 이들을 ‘차이 페미니스트’로 소개한다. 여성·남성의 직업과 업무배치가 생물학적 취약함에 관한 데이터에 좌우돼야 하며, 남성이나 여성은 성별에 특화된 장점에 맞게 직업과 업무에 배정돼야 한다는 것이 ‘차이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양극단의 두 주장 모두가 여성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드는 데 실질적인 어려움을 낳았다고 지적한다. 페미니스트 생물학자로서 메싱은 사회적 맥락을 잊지 않고 성차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생물학적 기전을 고민하라고 제언한다.

메싱은 지난 수십년간 페미니스트 생물학자이자 현장에 발붙인 인간공학 연구자로서 여러 노동현장에 있었다. 전기·통신, 조경업처럼 여성이 배제된 채 설계된 여성소수 일터에서는 ‘다른 몸’으로서 적절한 장비와 동료로서의 존중 없이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났다. 간병이나 청소업종에서는 ‘남성은 강한 힘이 필요한 작업에 적절하며 여성은 덜 힘든 일을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에 따라 양성 모두에서 근골격계 문제와 업무상 사고위험이 증가했음을 주목한다. 여성이 많은 대표적 직종인 식당서비스업에서 서빙업무를 수행하는 여성노동자들은 동일업무를 하는 남성노동자보다 단 10% 좁은 보폭으로 3배 넘는 거리를 걷고 있으며 발과 발목 통증을 더 많이 호소하고 있었다. 콜센터·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에서의 노동시간 통제권을 박탈당했을 때 가정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드러낸다. 즉, 같은 일터 안에서도 모든 노동자가 같은 현장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며, 여성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건강 불평등은 많은 경우 가려져 있거나 없는 것으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 여성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여러 연구자들이 해 온 연구 설계와 진행 과정을 풀어놓고 그 결과를 소개한다. 나아가 작업장에서 여성과 남성의 신체에 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책의 4부에서는 건강과 평등을 달성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연구 목록이 친절하게 작성돼 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언급된 연구들이 현장의 목소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점, 그래서 여성들 사이의 연대,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한 주제들이라는 점이다.

이 책 전반에서 메싱은 자신의 연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함께 발표된 이후의 영향을 돌아보고 있다. 용감하게도 그는 당시 본인이 했던 적절치 못했던 선택들을 담담히 고백하고, 때로는 의도와 다르게 여성노동자들의 일터 개선에 실패한 경험을 떠올린다. 그리고 과정에서 발생한 고민의 지점을 독자들에게 풀어놓는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노동 인권활동가, 노동조합원, 연구자, 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업주 등, 여성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메싱을 비롯한 여러 연구자들의 도전과 고민을 담은 이 책은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건넨다. 나는 일터가 여성노동자에게 맞춰 바뀌기를 소망하는 이들이 반드시 이 책을 펼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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